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주 Sep 16. 2015

드디어 여행의 시작

[아프리카 여행 일기] Day 1-2.

Day 1. 서울 -> 아부다비 -> 나이로비 -> 몸바사

출발: 서울, 한국 (00:40). 도착: 아부다비, 아랍에미리트 (05:45)   /   에티하드항공 


드디어 나의 청산, 아프리카로 출발. 가기 전 날까지 온갖 예방주사에 비자 문제, 보험, 잡다한 준비물 문제로 해롱해롱 한 탓에 이미 한 한달 여행한 양 피곤하고 후줄근했다. 새벽 비행기라 7월 6일 출발이지만 5일에 이미 공항 도착. 이것저것 바리바리 싼 배낭이 매우 무겁다. 45L짜리 큰 배낭과 작은 배낭 하나. 그리고 일교차가 큰 아프리카의 겨울이라 겨울용 침낭까지 챙겼다. 배낭을 앞뒤로 메고 나니 걸음을 걷는 것도 다소 어려웠다. 뒤로 넘어져도, 앞으로 넘어져도 다치려야 다칠 수 없지만 옆으로 넘어지면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 함정. 그런데 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작은 배낭 위 손잡이 부분이 터져있었다. 조금 터졌지만 멜수록 무게가 실려 점점 더 터지고 있어서 나이로비 공항 도착하자마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바느질. 아니 근데 꾸역꾸역 넣은 큰 가방이 아니라 뭐 별로 들어가지도 않은 작은 까만 배낭이 터지고 있다. 쪼끄만 게 생색은.   




출발: 아부다비, 아랍에미리트 (8:30). 도착: 나이로비, 케냐   /   에티하드항공 


아부다비 공항. 아랍인들의 속눈썹은 정말 길뿐만 아니라 숱도 많다. 위 아래 속눈썹 둘다 마스카라를 한 것 마냥 컬이 살아있다. 일상을 채우는 먼지다발 때문에 속눈썹이 긴 엄마의 뱃속 태아 때부터 속눈썹이 기특하게도 저렇게 자라난 걸까. 아부다비 공항이지만 아프리카로 가는 항공편이 많아 아랍인뿐만 아니라 흑인들도 많았다. 흑인들도 아랍인 못지 않은 속눈썹을 가지고 있다. 먼지들에게 자신의 경로를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무조건 우리 동양인에게 올 것이 틀림없다. 중동이든, 아프리카든 우리네들의 짧은 속눈썹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 


비행기 옆 좌석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흑인 여성이 앉았다. 나만큼이나 창 밖 풍경을 신기해해서 창 쪽 자리인 내가 그녀의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주곤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아부다비에서 나이로비, 케냐, 아프리카 가는 길. 푸르른 초원, 광활한 대지, 드넓은 평야. 그 뻔한 관형어와 완벽한 호응을 이루는 장면을 직접 보게 됐다. 한국이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할 때, 넓은 바다는 있어도 빌딩 하나 없는 육지를 보기는 힘든데. 

아무것도 없는 날 것의 대지 위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다. 구름 그림자. 구름에 그림자가 있다. 땅에 있을 땐 구름이 해를 가렸다고 표현했는데. 그냥 뜨거운 햇빛을 잠깐, 아주 잠깐 막아준다고만 여겼는데 하늘에서 보니 구름 하나하나가 크든 작든 하나씩 자기의 분신 도장을 땅에 찍어놓은 양 보였다. 어렸을 때 구름을 양에 비유하곤 했는데 하얀 양과 까만 양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로비 공항은 작긴 했지만 있을 건 다.. 아니 와이파이가 없었다. 그것 빼고는 다 괜찮았던 것 같은데.. 어쩌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흑인이라는 사실에 정신이 팔려서 무엇이 불편한지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도. 아프리카 관련 카페에서 알게 된, 몸바사까지의 여행을  함께할 동행자 오빠를 여기에서 만났다. 


첫날 일정은 나이로비에서 몸바사로 가는 기차를 타기. Nirobi Central Station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종이에 인쇄된 금액표를 보여주며 2000실링을 요구했지만 물가를 고려했을 때 너무 비쌌다. 잠시 실랑이가 오간 뒤 1800실링에 타게 됐다. 도로는 정말 운이 웬만큼 좋지 않고서야 살아남을 수 없는 곳 같았다. 교통 무법지대. 게다가 창문을 열고 달리니 정말 시커먼 매연들이.. 택시 안에는 No Smoking이라고 써져 있었지만 간접 흡연 그 이상의 검은 매연을 마신 듯했다.      



나이로비 센트럴 시티 역은 정말 온갖 사람들의 집결지. 일단 돈을 뽑기 위해 근처 은행을 먼저 갔다. 은행까지 가는데 정말 도로에 사람과 차가 뒤엉켜서 신호등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냥 “내 목숨은 하나니까 사려야지”하며 눈치를 보면서 건너면 된다. 

은행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번호표를 뽑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 차례가 되지 않아서 확인해보니 내 앞에 대기하는 사람 48명.. 결국 창구에서의 환전을 포기하고 ATM에서 2만 실링을 뽑았다. 카드 복사가 성행하니까 처음 한 번은 일부러 비번을 틀리고, 다하고 나서 지문 안 남게 패드를 손바닥으로 문지르기.  


몸바사 가는 티켓을 사러 다시 역으로 가니 비는 그쳤지만 잠깐 내린 비는 가뜩이나 더러웠던 길을 진흙길로 만들어놨다. 한번 잘못 디뎠는데 온갖 진흙과 뭔지도 알 수 없는 덩어리가 신발에 잔뜩 붙어서 진짜 신발이 2배는 무거워졌다. 돌에다가 발을 문지르며 떼고 갈고 한 끝에 조금 복구했는데 15kg이 넘는 가방을 메고 한 쪽씩 발을 들어 돌에 문지르려니 10년은 늙은 기분.. 게다가 고무줄로 해놓은 임시 안전장치에도 불구하도 가방은 점점 더 터져서 메지도 못하고 안고 다녀야 했다. 힘들힘들..



원래 계획은 월요일 7시에 나이로비에서 몸바사를 가는 기차를 타고 목요일 7시에 몸바사에서 나이로비로  오는 것이었으나 오는 기차가 화요일하고 일요일밖에 없었다. 결국 올 땐 버스를 타기로 하고 저녁과 아침, 두 번의 식사가 포함된 1등석 티켓을 구입했다. 저녁 8시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10시쯤 도착한다고 했다. 한 14시간 정도? 가 걸리는 셈. 비행기를 타면 50여 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나는 나이로비에서 몸바사로 가는 길의 넓은 평원이 보고 싶었다. (*참고. 푸른 아프리카 2편. 아프리카 여행 일정은 "헐겁게" 짜자)


역에 바를 겸하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처음엔 화장실만 이용하려고 식당 소파 옆에 일단 짐을 내려놨다. 그런데 푹신한 소파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지 못해서 늦은 점심을 이 식당에서 먹게 됐다.ㅎ 포슬포슬 찰기는 없지만 당근 같은 야채와 간을 해서 볶은 밥, 치킨 스튜, 소고기 찜?, 야채볶음을 먹었다. 다 해서 700실링, 7달러 정도였다. 고기는 진짜 질겼다. 특히 닭고기. 고기면서 칼로도 안 잘리는 닭고기. 결국 자르지 못하고 큰 덩어리를 입에 통째로 넣어서, 정말 “질겅질겅”씹어서 겨우 삼켰다. 콜라를  마시며 기차를 기다렸다. 모기가 정말 많았다. 어디를 봐도 그냥 나의 시야 안에서 4마리 이상의 모기들이 왱왱 거리고 있었다.      



8시에 드디어 기차를 탔다. 통로는 매우 좁고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보다 5배 정도 안 좋은 느낌? 출발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그냥 역에 멈춰있던 기차에서 저녁을 먹었다. 윌리엄과 데이비드라는 두 명의 영국 신사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솔직히 완벽하진 않았는데 이 영국 친구들은 연신 “펄풱”을 외쳤다. 표현쟁이들..... 같이 셀카봉으로 단체사진도 찍으며 화기애애하게 아프리카에서의 첫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그 애증의 가방 바느질을 했다. 기차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손끝 한번 바늘에 안 찔리고 바느질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발과 얼굴만 물로 씻고, 물티슈를 적극 활용해서 씻고 나니 꽤나 개운했다. 짐 정리도 얼추 끝내고 담요를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기차는 아직도 출발하지 않았다.     



Day 2. 나이로비 -> 몸바사기차 안

일기 쓰다가 자꾸 졸아서 그냥 잤는데 2시 20분쯤 드디어! 기차가 출발했다. 근데 4시 반쯤 멈추고 6시 30분부터 다시 출발.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다. 몸바사에서의 숙소나 기타 일정을 도착해서 알아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급한 일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고 그냥 여유롭고 어떤 일에도 그냥 아프리카 자체가 이러려니.. “그냥”이라는 단어가 그냥 그 상황을 흡수하는 느낌이었다.    

  

7/7 12:30 PM 
기차에 오른 지 16시간 30분 경과. 온 거리 약 230km, 남은 거리 약 250km ㅋ
모기 8방 물림.      


창 밖 풍경은 정말 아프리카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딱 그 풍경이었다. 파란 하늘에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잎은 그다지 무성하지 않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  중간중간 흙집들이 몇 채 모여있는 마을이 나오고 아이들이 소를 데리고 있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사람 키 만한 흰개미집이 기차가 달리는 속도에 맞춰 휙휙 뒤로 스쳐갔다. 중간에 한번 비가 왔다. 기차의 왼쪽 창문으로 보면 비가 오는데 오른쪽 창문으로 보면 맑은 날씨. 신기한 경험이었다.      



선로가 불안정한지 기차는 정말 많이 흔들린다. 덜커덩덩덩. 사실 이렇게 흔들려서 재밌는데 화장실 갈 때는 정말 불편했다. 진짜 진심 화장실이 너무 더럽다. 물도 조금씩 졸졸졸 나오고, 좌변기는 너무 찝찝해서 차마 앉기도 꺼려졌다. 기차가 흔들리는 탓에 중심을 잡으면서 일을 보려니 다리에 쥐가 났다. 그리고 화장실 문이 누가 계속 치는 것처럼 덜컹거렸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불안하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기차 화장실. 자연스레 물을 의식적으로 덜 마시게 됐다.   


7/7 17:15 PM 
기차에 오른 지 21시간 15분 경과. 온 거리 약 320km, 남은 거리 약 160km ㅋ 
모기 12방 물림.     


나이로비에서 몸바사로 가는 길의 풍경은 정말 멋지다. 하지만 그걸 20시간 넘게 보고 있자니..물론 여전히 멋있지만.. 몸바사에 빨리 도착하고 싶다. 머리 감고 싶다. 




몸바사에는 결국 7월 8일 새벽 4시에 도착했다. 몸바사 이야기는 다음 편에...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리카에서 나는 시간을 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