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여기는 보츠와나. 저기는 잠비아.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신기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걸어서 국경 넘기. 바다를 건너야 다른 나라를 갈 수 있는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그냥 똑같이 생긴 땅인데 "여기는 보츠와나고 저기는 잠비아다"라는 가이드의 말이 너무 낯설었다. 7개국을 다니면서 총 7번의 (보츠와나를 두 번 거쳤다) 국경넘나들이를 했다. 국경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글로라도 최대한 생생하게 그때의 현장을 살려봐야지.
저는 한 달 동안 케냐 - 탄자니아 - 말라위 - 잠비아 - 보츠와나 - 짐바브웨 - 남아공을 '자유여행(케냐, 짐바브웨, 남아공) + 트럭킹(*Southern Discoverer)'으로 다녀왔습니다.
*This trip begins in Nairobi, Kenya and travels south through Tanzania, Malawi, Zambia and Botswana, before ending in Victoria Falls, Zimbab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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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에서 비자 받기
국경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당연히 입출국 심사. 대부분의 나라는 국경에서 비자비용을 내고 곧바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간 7개국 (케냐, 탄자니아, 말라위, 잠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남아공) 중 보츠와나와 남아공만 빼고는 비자를 받기위해 모두 적지 않은 돈을 냈다. 케냐는 US$50, 탄자니아 $50, 말라위 $70, 잠비아 $30, 짐바브웨 $50. 나(=사우스코리안)는 거의 항상 가장 많은 돈을 냈다. 반면 일행 중 말레이시아인 친구는 한 번도 돈을 내지 않았다. 누구는 안 내는데 나만 내는 느낌이라 숙소비나 식비와는 다르게 괜스레 아까운 마음이 들곤 했다.
여권번호, 해당 나라에서 머물 숙소, 머물 기간 등을 적는 서류를 작성해 여권과 함께 국경 사무소 직원에게 내밀면 몇 마디 물어본 후 바로 도장을 찍어준다. 사실 그 과정 자체는 간단하기 그지 없는데 일처리가 그다지 빠르지 못하여서.. (한국의 "빨리 빨리"가 통하지 않는 곳) 예상치 못하게 트럭 일정에 차질이 생기곤 했다. 심지어 점심시간도 아닌데 직원들이 밥을 먹으러 가버려서 그냥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총 7번의 (보츠와나를 두 번 거쳤다) 국경넘나들이 중 2번, 나는 같은 트럭킹 일행에게 의도치 않은 민폐를 끼쳤다. 말라위 국경에서 한번, 남아공 국경에서 한 번.
에피소드 #2 말라위 비자 받기. (부제: 한국에서부터 말라위 국경에서까지 고생하기)
내가 거쳐간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경비자였다. 국경을 넘으면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말라위는 사전 비자. 즉, 근처 국가에서 받거나 한국에서 미리 받아가야 했다. 자유여행기간에 케냐에서 받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트럭킹 일정 시작 전에 받지 못할까 봐 한국에서 받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 말라위 대사관이 없다는 것. 아프리카 여행 준비를 하면서 수많은 블로그와 카페를 들락날락 거렸는데 가장 많이 찾아본 게 바로 이 "말라위 비자 획득" 관련 포스팅이었다. 그런데 워낙 관련 정책이 많이 바뀐 탓에 매년 포스팅 내용이 다 달랐을뿐더러 2015년 최신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외교부 영사 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짧은 통화 후 결국 결론은 "일본에 있는 말라위 대사관을 통하거나, 짐바브웨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친절히 짐바브웨 현지에 있는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셨다..ㅎㅎ 국제전화..ㅎㅎ 정녕 이 방법 밖에 없는 건가, 내 생애 첫 국제전화가 짐바브웨인가 싶어서 또 여기저기 알아보다 보니 말라위 비자 사무소에서 비자승인서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라위 비자 사무소 (* malawi_korea@naver.com)에 문의 후 메일로 비자신청서와 여행 일정표, 여권 스캔본을 제출했고 약 10일 후 일본에서 온 듯한 비자승인서를 받을 수 있었다. 수수료는 무려 11만 원!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고 말라위에 도착해서 여권과 US$70 달러를 또 내야 한다고 했다. 나라 하나 가는데 20만 원이 들다니..ㅠ
국경에서도 쉽지 않았다. 나는 비자승인서와 여권을 내면 바로 통과가 될 줄 알았는데 작은 사무실로 불려 들어갔다. 취조를 당하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보스에게 확인을 해봐야 한다면서 나를 계속 붙잡아두었다. 처음에는 나만 여기 말라위 못 들어가고 우리 트럭킹에서 낙오되는 건가 싶어 걱정 근심이 가득 솟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별일 없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여유가 조금씩 생겨나 애써 그 걱정을 밀어냈다. 사실 마음이 편해진 데는 국경 사무소 직원들의 힘이 컸다. 마냥 기다리기 심심해서 사무소 직원들에게 말라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치체와(chichewa)'를 물어물어 조금 익혔다. 나도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서로의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 보니 금세 친해져서 페이스북 친구까지 맺게 되었다. 내가 말라위 비자 너무 비싸고 오래 걸린다고 투덜대니까 다음 번에 올 때는 그냥 프리패스로 해줄테니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시간 같았던 몇십 분의 기다림이 끝나고 드디어 나는 말라위 도장을 나의 여권에 쾅 찍을 수 있었다. 사무소 직원 친구들과 안녕하고 우리 트럭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니 다들 수고했다며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나 때문에 국경에서 몇십 분이나 기다렸는데도 잘 통과해서 다행이라며 날 토닥여주던 우리 트럭 식구들..ㅠ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겨우 말라위에 입성!
*말라위는 사전 비자를 받아가야 하는 국가이긴 한데 국경에서 받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또 아니라고 한다. US$100 정도 내고받기도 한다고.. 그런데 사실 정책이 좀 많이 자주 바뀌는 듯해 말라위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여행 준비할 때 한번 더 확실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내가 갔을 때는 나를 제외한 모든 트럭킹 친구들은 비자비용을 낼 필요가 없었다. 이후 곧 바뀔 예정이었던, 딱 우리가 도착한 주까지만 적용되던 비자 정책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우스 코리안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상대적 불행이 더 증가했다.) 다른 건 몰라도 말라위 비자만큼은 최신 정보를 꼭 찾아보고 가자.
에피소드 #3 남아공 국경에서 정체성 찾기 (부제: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무비자로 통과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문제가 생기려야 생길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나의 여권을 내밀었다. 아니 그런데 갑자기 코리안은 비자가 필요하다며 확인해봐야 하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말라위에서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며 걱정은커녕 별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남아공 국경 넘나들이 시간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 여권에 모두 도장을 찍어준 뒤에야 국경 사무소 직원은 나를 데리고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러 그의 보스를 찾아갔다. (보스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국경 사무소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라고 추측을..) 사실 매우 긴장했다. 여행 준비를 할 때 혹여 내가 잠시 눈이 흐릿해져서 사전 비자라는 글자를 무비자로 본 것이 아날까. 이렇게 나는 남아공 국경에서 버려지는 것인가. 여기 택시는 있나. 아니 일단 들어가질 못하는데 택시고 뭐고 뭔 소용이지. 비행기가 당장 내일 뜨는데 놓치면 어찌하나. 나의 잔고는 비행기 티켓을 다시 살 정도로 여유가 있나.
정말 그 보스가 있는 사무실로 걸어가는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보스는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직원이 나의 여권을 그에게 보여주자마자 그는 하던 전화통화를 끊지도 않은 체 "전혀 문제없어. 여기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라고 쓰여있잖아? South Korea라는 거야. North Korea면 문제가 되는데 바로 통과시켜도 돼"
.... 그럼 나는 지금 저 직원이 Republic of Korea가 South Korea라는 걸 몰랐기 때문에, 할 필요도 없었던 걱정들로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가던 중이라는 뜻? 허허.. 물론 당시엔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트럭 식구들은 직원의 오해로 잠시 북한 사람이 되었던 나를 또 토닥토닥해줬다. 휴.
몇몇 나라의 비자가 조금 속을 썩이지만 대부분 큰 어려움 없이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 animal product이 반입이 안된다고 해서 남아있던 초콜릿, 요거트, 육포 등등을 국경에 걸어가며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도, 별 생각 없이 국경 넘어 화장실을 가려고 했다가 유료화장실이었는데 이전 국가 화폐밖에 없어서 난감했던 기억도, 모두 다 국경을 뚜벅뚜벅 걸어서 넘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추억이었다.
여기부터는 탄자니아입니다. 여기부터는 말라위입니다. 여기부터는 보츠와나입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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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부터는 아프리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