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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 Jan 19. 2016

입김이 호호 나왔던 밤

[아프리카 여행 일기] Day8. 2박3일 응고롱고로-세렝게티 투어 첫날

저는 한 달 동안 케냐 - 탄자니아 - 말라위 - 잠비아 - 보츠와나 - 짐바브웨 - 남아공을 '자유여행(케냐, 짐바브웨, 남아공) + 트럭킹(*Southern Discoverer)'으로 다녀왔습니다. 

*This trip begins in Nairobi, Kenya and travels south through Tanzania, Malawi, Zambia and Botswana, before ending in Victoria Falls, Zimbabwe.

관련 글 : 나의 청산, 푸른 아프리카
관련 매거진 : [푸른 아프리카]

[이전 글] Day7. 트럭킹의 시작


Day 8. 아루샤 -> 카라투

세렝게티 가기 전 몸 뉘일 곳, 카라투

이번 트럭킹 일정 중 가장 기대한 곳 중에 하나인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 사실 아프리카를 꿈꾸다 보면 으레 떠오르는 장면이지 않을까? 광활한 초원 위에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온갖 동물들이 어슬렁대는 야생적인 평화로움. 여기서 왠지 “하지만!!”이 나오며 반전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ㅎㅎ 실제로도 저런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TV에서 봤던, 혹은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이미지였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모래바람”을 담아내진 못하였다. 모래는 열려있는 모든 구멍으로 들어와 모든 것을 덮고 모든 색의 채도를 낮춰버렸다...     


일정표 상으론 2박 3일로 나와있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루샤에서 카라투로 이동 후 카라투 캠핑장에서 하룻밤, 아침 일찍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로 출발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닌 후 세렝게티 초원에서 하룻밤, 다음날 세렝게티 좀 더 보다가 아루샤로 이동. 즉,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에 머문 시간은 정확히 따지면 온전한 하루하고 한나절 정도였다.      


카라투 캠핑장에서 생긴 일 (부제 : Thanks, My life savers)

이제 트럭이 아닌 작은 지프차 4대로 나눠 가기 때문에 큰 배낭은 아루샤에 두고 2박 3일 치 짐만 작은 배낭에 간단히 싸서 카라투로 떠났다. 침낭과 옷가지 정도만 챙기면 되고 지대가 높아 많이 춥다고 하길래 한국에서 쟁여온 핫팩과 수면양말도 챙겼다. 그리고 후회했다. 왜 핫팩을 하나만 가져왔을까. 한 서너 개 가져와서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잘 걸. 어쨌든 짐을 싸던 당시에는 한 치 앞의 미래도 생각하지 못하고 핫팩 하나 넣은 작은 배낭과 침낭을 들고, 몸도 마음도 가볍게, 그렇게 지프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 지프차에는 앞으로 2박 3일 간 우리를 안내해줄 운전기사 애니스트, 대스 윈, 쉄너커, 딕 할아버지, 폴 할아버지, 데니스 할머니, 스티브와 레베카가 탔다. 도착한 카라투 캠핑장은 아루샤 캠핑장과는 달리 잔디밭이었다. 풀썩풀썩 흙먼지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려 와이파이가 터지는 Bar가 있었다. 도착하고 저녁 먹기 전 자유 시간, 모든 사람들이 Bar로 가서 수박주스 한잔 혹은 맥주 한 병씩 앞에 놓고 핸드폰으로 문명과 접촉하는 시간을 보냈다. 페이스북은 너무 즐거워~~ ^0^     


드디어 문명과 접촉하는 친구들^^. 역사적 순간이니까 흑백


처음으로 제대로 된 쌀밥이 나왔다. 쌀알을 씹을 수 있는 식사라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그간 아프리카에서 먹었던 여느 밥과는 다르게 찰기도 어느 정도 있어서 행복했다. 배가 불러도, 반찬이 없어도 여전히 맛있었으니 그냥 밥 자체가 맛있었던 게 틀림없다. 식사를 마치고는 다 같이 Bar로 마사이족 전통 공연을 보러 갔다. 어떤 춤이었는지 최소한 이름이라도 여기 쓰고 싶지만 몰라서 쓸 수 없다.      

사실 나는 샤워실에 갇혀있다가 공연이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쯤 겨우 탈출해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즉, 내가 샤워실에서 아등바등하고 있을 때, 간략한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나는 아직까지도 왜 내가 샤워실에 갇혔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샤워실 안팎에는 모두 열쇠 구멍이 있었고, 양쪽에서 열쇠만 있으면 열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열쇠가 있었다. 열쇠 구멍도 있고 열쇠도 있었지만 나는 문을 열 수 없었다! 10분 정도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하다가 이러다간 모두 공연을 보러 떠나고 나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여기 갇혀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문득 걱정이 몰려왔다. 그냥 밖에 누구 없냐고 소리쳐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고 민망해서 망설여졌다. 아, 다행히... 아니 물론 옷은 다 입고 있었다. (아무리 샤워실이 좁더라도 항상 입을 옷을 모두 챙겨서 들어갔던 나의 목욕습관에 치얼스~) 그냥 문을 부숴볼까.. 그렇게 또 고민하면서 5분 정도 밍기적대다가 점점 다른 샤워실에서 들리는 샤워소리가 뜸해지고 사람들이 떠나는 느낌이 나서 다급해진 마음에 결국 외쳤다. 거기 밖에 누구 없나요? 저 갇혔어요... 도와주세요...썸바디 헲미...     


결론은, 샤워를 마치고 나가려던 딕 할아버지와 대스 윈이 나의 우렁찬 구조요청 소리를 들었고, 내가 밖으로 던진 열쇠를 돌리며 동시에 문을 어깨로 열심히 밀어서 열어주셨다. 문에 열쇠 구멍이 있으면 애초에 열쇠로 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열쇠를 돌리는 동시에 또 어깨로 문을 부실 듯이 밀어야 하죠? 아무튼 결국 난 나왔고 셋 다 이 상황에 함께 어이없어했다. Thanks, My life savers....     


마사이족 전통공연 (부제 : Thanks, Mnubi) 

밤이 되니 쌀쌀해져 옷을 단단히 입고 마사이족 전통 공연을 보러 갔다. 젬베랑 나무로 만든 실로폰?으로 연주하는 신나는 비트에 격렬한 춤 동작이 인상적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 사다리를 만든다든지, 불을 먹는 등 서커스, 기예에 가까워졌다. 한층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다 같이 둥글게 서서 함께 춤을 췄다. 나는 춤보다는 악기에 좀 더 관심이 가서 공연 내내 유심히 봤더니 연주를 하던 마사이족 친구 한 명이 공연 끝나고 연주하는 법을 따로 가르쳐주었다. 친구 이름은 Mnubi. 우리네 실로폰이랑 똑같은 원리인 듯한데 '시' 음만 조금 달랐고, 나무로 만들어서 그런지 소리가 오동동해서 듣기 좋았다. 함께 사진도 찍었는데 Mnubi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순간 어떻게 보내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잠시 기다리라고 하곤 구석에 놓여있던 가방을 뒤지더니 2G 폰도 아닌 "스마트폰"을 꺼내 내 이메일 주소를 따가 페이스북 친구 추가를 했다. 아주 빠른 손놀림이었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상황에 당황해 그 손놀림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물론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특정계층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방금 마사이족 전통 공연을 마친 사람 가방 속에서 나오니 매우 당황스러웠다. 어쨌든 덕분에 페이스북 메시지로 사진도 받아서 이렇게 글에 첨부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겠지. Thank you, Mnubi 

 

밤에 찍어서 그런지 제대로 나온 공연사진이 없어 Mnubi가 보내준 사진으로 대체. 



춥디 추운 밤. 춥다. (부제 : Thanks, My sleeping bag)

공연이 끝나고 캠핑장 난로 옆에 옹기종기 서서 불을 잠시 쬐었다. 추웠다. 정말 너무 추웠다. 아까 낮에만 해도 반팔 입고 돌아다녔던, 따사롭고 평화롭던 캠핑장이 밤이 되니 정말 "춥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 그 생각만이 입으로 튀어나오는 아주 춥디 추운 곳이 되었다. 추워, 추워, 추워.... 하도 내가 "추워, 추워"거리니까 친구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고, 우리 트럭킹 식구들에게 내가 가장 먼저 가르쳐준 한국어는 "추워"가 되었다. 스티브는 "추워"의 어감 자체도 춥다고 했다. 응? 아무튼 자고로 말이란 입 밖에 내는 순간 씨가 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라 모두 모여서 "추워, 추워"하니 더 추워진 것 같았다. 응? 


이제 하나 둘 각자 텐트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하지만 텐트 안도 너무 추웠다. 텐트 안에서도 입김이 호호 나왔다. 정말 살인적인 일교차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걸까? 불과 몇 시간 전, 정말 더웠던 그 날씨에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나는 기모 후드티에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스카프를 두르고, 수면양말을 신고, 핫팩까지 등 언저리에 하나 붙이고 겨울용 침낭에 폭 들어간 것임에도 너무 추웠다. 나도 이러했으니 3계절용 침낭을 가져온 Sabine은 오죽했을까. 나는 나의 담요를 Sabine에게 빌려주었다. 솔직히 내 겨울용 침낭만 아니었으면 나는 그 추운 밤, 포근하고 따뜻한 나의 담요를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그러한 관용을 베풀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건 다 나의 겨울용 침낭 덕분이다. Thanks, My sleeping bag


이제 진짜 내일은 드디어 세렝게티

2박 3일 응고롱고로-세렝게티 투어 첫째 날


그래도 명색이 2박 3일 응고롱고로-세렝게티 투어 첫째 날인데 정작 응고롱고로-세렝게티 이야기도, 사진도 하나도 없다.. 둘째 날부터는 정말 많아요.. 미리보기로 몇 장 첨부하고 갑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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