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나에게 청산 같은 곳이다
아프리카는 나에게 청산 같은 곳이다.
청산별곡(靑山別曲)에서 '청산에 살어리랏다'라는 구절에서 나오는 청산. 왠지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라는 울림소리 가득한 콧노래 비스무리한 그런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올 것 같은 그곳. 조금은 다른 사람들이 의아해할 수 있는 나의 이상향.
어렸을 때, 잠들기 전 엄마가 읽어주는 어린왕자를 들으며 바오밥나무를 언젠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막연했던 그 바람은 바오밥나무는 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다는 걸 알 정도의 나이가 되어가면서 아프리카를 가야겠다, 가고야 말겠다라는 막연한 꿈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막연한 꿈은 점차 인생 계획표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갔다. 고등학교 2학년 3반 23번이었던 내가 세웠던 인생 계획표에 따르면 대학교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아프리카에 가야 했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1학년 2학기 때 들어간 학내 언론사에서 수습기자, 부기자, 정기자 여기까지는 필수 임기. 그런데 어라 부장? 얼씨구 국장? 까지 하게 되면서 5학기를 고스란히 보내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언론들이 몇 년 전부터 Bold체로 제시해준, 아프리카=□라는 등식의 네모 칸에 써야 할 것만 같은 단어, '에볼라' 덕택에 이상향을 향한 나의 발걸음은 첫 발자국을 떼기는커녕 제자리에서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꼼지락을 넘은 스물셋
만약 계속 꼼지락거리고만 있었다면 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2015년 7월부터 8월. 이십 대에서 처음으로 시옷이 들어가는 스물셋. 23살이 되어 드디어 가장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바오밥나무를 원 없이 보고 왔다. 너무 오랫동안 꿈꿔왔던 아프리카라 꿈꿨던 만큼 준비해서 제대로 갔다 오고 싶었던 아프리카. 아는 만큼 보고, 듣고, 느끼게 될 것이라 믿으며 틈틈이 각종 책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한국외대 용인캠에서 아프리카학부 수업을 청강하기 위해 왕복 5시간 넘게 버스를 타면서도 힘든 줄 모르게, 마냥 나를 설레게 해줬던 아프리카.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침대에 누워 잠을 설쳐가며 아프리카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려 해도 그릴 수 없었는데 이젠 미소 지으며 회상도 할 수 있다.
모래 씹히는 우갈리정도는 손으로 흘리지 않고 먹게 됐고 불빛 하나 없는 샤워실에서 랜턴에 의지해 찬물 샤워도 할 수 있게 됐다. 텐트에서, 가방에서, 침낭에서 온갖 벌레가 나와도 그냥 그러려니 무뎌졌고 텐트 치는 법과 매트리스를 무게 실어서 작게 만드는 법, 펑크 난 타이어 가는 법도 알게 됐다. 맨날 바가지 쓰던 내가 마지막엔 185달러짜리를 55달러로 깎는 기염을 토했고 이제 간단한 인사 정도는 스와힐리, 지체와, 얀자, 츠와나, 숀나, 줄루어로 할 수 있게 됐다. 제대로 못 씻고 맨날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꼬질꼬질하고 로션 하나 못 바른 나를 웃으면서 아껴주는 소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아프리카를 나누고자 주섬주섬
이번이 내 인생 마지막 아프리카 여행이 아니지만, 다음에 가게 될 아프리카가 이번만큼이나 좋을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로 너무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그 행복을 나누고 싶어서.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아프리카’라는 단어에 대해, 그 자체에 대해 한 번쯤 생각했으면 해서. 나의 청산, 아프리카를 가기 전부터 차례대로 하나씩 주섬주섬 꺼내보려 한다.
내가 간다 유후 with Local Kids
@ Lake Malaw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