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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 May 15. 2016

안녕을 배운 곳, 탄자니아 잔지바르

[아프리카 여행 일기] Day 14. 탄자니아 잔지바르(2) 능귀 비치

저는 한 달 동안 케냐 - 탄자니아 - 말라위 - 잠비아 - 보츠와나 - 짐바브웨 - 남아공을 '자유여행(케냐, 짐바브웨, 남아공) + 트럭킹(*Southern Discoverer)'으로 다녀왔습니다.

*This trip begins in Nairobi, Kenya and travels south through Tanzania, Malawi, Zambia and Botswana, before ending in Victoria Falls, Zimbabwe.

관련 글 : 나의 청산, 푸른 아프리카
관련 매거진 : [푸른 아프리카]

[이전 글] Day12. 도로 위 다르에스살람

           Day13. 화장을 했던 곳, 탄자니아 잔지바르 - (1) 스톤타운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


스톤타운에서 능귀 비치로

스톤타운 숙소는 침대도 있었고, 모기장도 있었으며,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왔다. 텐트에서 먼지가 푹푹 나는 매트리스에서 자던 지금까지의 밤에 비교하면 상당히 호사스러운 하룻밤이었다. 겨우 하룻밤 머물렀을 뿐인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건 인간적인 정이 들어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느껴본 인공적인 바람과 등 아래에 까는 것과 배를 덮는 것과 머리에 괴는 것이 모두 갖춰져 있는 완벽함에서 오는 소박한 문명의 유혹 때문이었던 듯하다.      


아침 일찍 우리 일행은 봉고차를 타고 능귀 비치로 향했다. 섬이라는 특성상 잔지바르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 북부에 있는 능귀 비치와 켄트와 비치, 남동부의 파제 비치가 대표적인데 북부 해변은 고급 휴양지를 찾는 사람들이, 남동부 해변은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나는 나 홀로 한국을 떠나 온, 가진 것 없는 배낭여행자였지만 탄자니아는 트럭킹 일정에 포함되어 일행들과 같이 다녔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약간의 사치를 부리게 되었다.

      

능귀 비치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메뉴판에서 메뉴를 고르듯 설렘을 안고 능귀 비치에서 할 액티비티를 선택했다. 능귀 비치에서 이틀 동안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에 2-3개 정도의 액티비티가 적절할 듯했다. 스노클링, 돌고래 투어, 선셋크루즈, 스쿠버다이빙 등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들 사이에서 고민하다 첫날 오전에는 돌고래 투어, 다음 날 오전에는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다.     

      


Swimming with Dolphins. 아니 그냥 보트 투어

일반적으로 돌고래 투어라고 하지만, 당시 우리의 설렘을 자극했던, 가이드가 말해준 정확한 영어식 명칭은 Swimming with Dolphins이었다. 돌고래와 함께하는 수영이라니. 그냥 Dolphin Tour라고 하면 뭔가 멀리서 돌고래의 등을 보며, 그 등에 반사되는 햇빛의 반짝거림에 눈을 가릴 뿐인, 약간 수동적인 활동의 느낌이 드는 데 반해 Swimming with Dolphin은 돌고래 친구 바로 옆에서 “너는 지느러미, 나는 팔” 이러면서 함께 인도양을 헤엄쳐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돌고래의 콧잔등을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천진난만한 의문에서부터 펼쳐진 상상의 나래는 접힐 줄 몰랐고 우리는 돌고래와의 교감을 기대했다.


투어는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돌고래를 찾다가 발견하면 그 지점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드는 방식이었다. 가이드는 그냥 인도양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돌고래들을 보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 언제, 얼마나 많은 돌고래를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껏 돌고래를 못 만나고 배를 돌려 돌아온 적은 없다고 했다.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우리가 정말 운이 안 좋았든가, 가이드가 거짓말을 했든가. 우리는 돌고래와 교감은커녕, 돌고래의 등도 보지 못한 채 바닷바람에 등 떠밀리듯이 돌아왔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돌고래가 보이지 않자 스노클링 장비를 갖춘 김에 수영이나 하라는 느낌으로 가이드가 바다 한가운데 배를 세웠다.


나는 초등학교 때 스포츠센터에서 6개월 남짓 수영을 배웠을 뿐이다. 잔지바르에 오기 전, 다르에스살람 해변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바다에서 수영을 해봤다.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책이 아닌 혀로 느낀, 그것도 아프리카 바다에서 느낀 역사적인 날. 사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기억 저편에 있는 손과 발의 파닥거림을 내가 과연 꺼내올 수 있을지 걱정을 하긴 했다. 자박자박 모래사장을 걸어 들어간 나를 바다는 해치지 않고 잘 맞아 주었고 나는 친구들에게 수영장보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게 더 쉬운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 속이 텅 빈 너스레에 불과했었다는 걸 바다 한가운데 떨궈진 상태에서 여실히 깨달았다. 수영을 잘하는 친구들도 조금 벅차할 만큼 파도가 많이 치는 곳이었고 생전 처음 껴본 스노클링 마스크는 나랑 잘 맞는 크기를 고르지 못했는지 물이 쑥쑥 들어왔다. 얕은 바다에서 바닥에 발을 딛고 찰박찰박 물장구를 치던 정도의 수영 실력으로 돌고래와의 교감을 논했던 좀 전까지의 내가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것인지 새삼 깨달으며 바다에 들어간 지 1분도 안 되어 보트에 힘겹게 기어 올라왔다. 결국 바닷바람만 실컷 맞으며 돌고래 투어 아니 보트 투어를 하고 돌아왔다.      


돌고래를 보지 못해 시무룩해 있던 우리에게 다른 여행자가 거북 투어에 대해 알려주었다. 바닷물이 고여있는 옴팡한 좁은 공간에 거북이가 몇십 마리나 있어 돌고래와 달리 무조건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다고 했다. 보트 투어에 만족할 수 없었던 다른 친구들은 오후에 거북 투어를 하기로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했고, 나는 인생의 쓴맛, 아니 짠맛을 너무 많이 본지라 휴식이 필요해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친구들이 찍어온 Swimming with Turtles, 정말 말 그대로 거북이와 함께한 사진들을 보고 그 투어가 얼마나 멋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도 푹신한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가, 깔끔한 화장대에서 화장을 하고, 바다가 보이는 바에서 생과일주스도 마시며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에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해변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스노클링, 채도가 낮은 퍼런 기억

다음 날 아침, 다시 인생의 짠맛을 들이킬 준비가 되어 있던 나는 친구들과 스노클링을 하러 갔다. 학습을 통해 발전하는 인간으로서, 어제의 경험을 교훈 삼아 오늘 스노클링 장비를 고를 때는 신중을 기했다.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든 어제와는 달리 모두 전신다이빙슈트를 입었다. 슈트 자체가 폭신해서 이것만 입어도 물에 잘 뜰 것 같긴 했지만, 나의 불안한 눈빛을 읽은 것인지 장비를 챙겨주시는 분이 구명조끼도 따로 챙겨주셨다.

드디어 배가 바다 한가운데 멈추고 다들 한 명씩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도 짜고 파란 세계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는데 마치 바다가 나를 거부하는 양 바닷속에 풍덩 들어가자마자 쑤욱 솟구쳐 올랐다. 나는 조용히 구명조끼를 벗어 보트 위로 던졌다. 비로소 나는 바닷물에 적당히 적셔질 수 있었다.      


바닷속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색색의 산호초들 사이를 헤엄치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 스노클링 장비에 적응이 되고 나자 좀 더 편안하게 바닷속에 펼쳐진 광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가이드는 종종 깊이 잠수해 특이한 해양 생물을 톡 건드려 우리에게 보여주곤 했다.


스노클링을 끝내고 보트에 올라와 차파티와 망고, 수박을 먹었다. 즐거운 스노클링 후에 먹는 맛있는 음식. 피크닉 같은 상큼함을 상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힘든 노동 후에 먹는 새참 느낌이었다. 우리들의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바닷물은 마치 땀방울 같았고, 우리들의 호흡은 방금까지 밭을 메다 온 사람의 그것처럼 가빴다. 투어 시간 동안 두 곳의 다이빙 지점에서 배를 멈추는데 나는 그냥 한 번만 바다에 내려갔다. 내가 한 것이라곤 가이드가 끄는 튜브 줄을 붙잡고 둥둥 떠다닌 것밖에 없는데 왜 이리 피곤한지. 그리고 몇 명은 뱃멀미를 했다. 스노클링 자체는 분명 즐거웠는데 그 즐거움만큼 피곤함도 느꼈다. 바다색은 더없이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었지만 그 빛에 피곤함과 뱃멀미가 덮여서 다소 채도가 낮은 퍼런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해가 지는 것을 보기로 했다

오늘은 해변 모래사장 위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보기로 했다. 잔지바르에서, 아프리카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라는 이곳, 능귀(Nungwi). ‘가장’이라는 단어는 깔때기처럼 말려들어 우리의 아쉬움을 콕콕 찔러댔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을 되새기며, 어떻게 마지막 순간까지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을까, 다소 조급하게 굴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는 능귀에 이틀밖에 머물지 않았기에 어제는 첫날이니 소중하고,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소중하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잔지바르에서의 마지막 하루도 지고, 파란 바다 너머 붉은 해도 지고.

구름이 해를 가려 해가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점점 스러지는 빛으로 오늘 우리의 해도 스러졌겠거니 짐작했을 뿐이다. 그 짐작 너머에는 아쉬움과는 조금 다른 몽글한 감정이 남았다. 일몰을 보기 위해 모래 위 앉을 자리를 보던 우리를 채웠던 것은 조급함이었다. 눈부신 바다와 좋은 시설들과 시원한 칵테일이 있는 멋진 휴양지였지만, 우리는 돌고래 없는 돌고래 투어를 했고, 뱃멀미와 함께하는 스노클링을 했다. 그리고 구름에 가려 기대했던 석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석양을 보는 게 좋아요. 함께 해지는 광경을 보러 가요”
“그렇지만 우린 기다려야 해”
“기다린다니, 뭘 기다려요?”
“해질 무렵까지 기다려야 해”
처음에는 나의 말에 몹시 놀라는 눈치였다.

.
어린왕자가 사는 작은 별에서는 의자만 몇 발자국 옮기면 언제든 석양과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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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지만, 사람들은 슬플 때 석양 보는 것을 좋아하죠”     『어린왕자』中


어린왕자는 슬플 때 석양을 본다고 했다. 오늘 하루가 지나가듯 나의 슬픔도 지나갔으면 해서 봤던 걸까. 아니면 그냥 오롯이 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슬픔을 애써 부정하지 않고 담담히 마음속에 담아내려 했던 걸까. 자신의 작은 별에서와는 달리, 기다려서 보는 석양은 어린왕자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우리는 조급할 때 석양을 봤다. 그 조급함을 아름다운 석양이 좀 채워줬으면 해서. 구름에 가려진 해는 채워주지 않고 몽글한 감정을 남겨줬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 우리의 손으로 해를 가린 구름을 슥슥 걷어낼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어떤 하루를 보냈건 그 하루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해가 지듯 자연스럽게 하루는 진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였을 때 그 감정은 더 몽글몽글해져 톡 터져버렸다. 터져서 없어져 버리니까 이제 안녕이라고 할 수 있게 됐다. 능귀 비치 안녕. 잔지바르 안녕. 조금 삐걱댔던 오늘 하루도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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