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함, 수줍음
관계를 정의할 수 없어 혼란스러운 한 여자가 있었다. 남자와의 만남이 반복되고 나누는 이야기가 많아지고 신경이 쓰이면 쓰일수록 여자는 그 관계가 불편했다. 불편했지만 딱히 어떤 조처를 할 수 없었던 것은 그 관계에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는 모호함은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많은 것들을 함께할 수 있는 구실이 되기도 했고, 많은 것들을 함께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더 이상 함께 하는 것도 어색해지고, 함께 하지 않는 것도 어색해질 무렵 남자와 여자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들의 관계가 자꾸 혼란스럽기만 하고 진전이 되지 않았던 까닭은 서로에게 또 자신에게 비겁했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으려고, 먼저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려고, 감추고 또 감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상은 심각해진다. 어느새 자신의 상처도 올곧게 못 볼 만큼 비겁해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