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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실생활자 김편집 May 08. 2022

[두 번째 편지]“인간은 신뢰할 만한 존재일까요”

k 선배에게 ②

k 선배에게,


언젠가 대화 중에 선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내 세계관과 맞지 않아요.” 

그 순간 불쑥 부러운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선배의 가슴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을 그 어떤 잣대와 견해가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그런 확고하고 단단한 '내' 것이라니. 사실 주야장천 항상 ‘불안’을 껴안고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런 확고하고 단단한 '내' 것이 가장 부러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늘 삶이 사상누각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모래밭 위에 부질없이 무언가를 쓰고, 짓는다는 느낌은 항상 불안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명징해 보이는 그 무언가를 자꾸만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그런 불안은 자신에 대한 신뢰나 믿음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인간은 신뢰할 만한 존재일까요?” 

언젠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한 번도 인간을 신뢰하거나 믿을 만한 존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악하다거나 선하다거나 하는 차원은 아니고 ‘약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자기 수준에서 보고 듣고 느낀다고 하지요. 사상누각으로 표현되는 저 자신에 대한 부실함을 보편적인 인간의 부실함으로 치부해버리는 실수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훌륭하고 고귀한 일들은 아주 특별한 의외의 변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그다지 단단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십 년, 오십 년을 살아도 자신만의 가치나 잣대를 갖기도 쉽지 않고요. 게다가 그렇게 가진 것을 지킨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엔 시스템 구축을 무엇보다 갈구했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나약하고 그 누구도 영원한 믿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더, 더 철저한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 같습니다. 내게 가능한 것은 저 사람도 가능한 것이고, 저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은 내게도 불가능한 것이라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 잘 갖춰져 있는 세상에서 피곤하지 않게 살고 싶다고 늘 바랬습니다. 나도, 우리도 절대 그냥 훌륭해지지는 못할 것 같아서요. 


어떤 불합리한 일이나 검은 유혹 앞에서 당장 나부터 얼마나 버틸 수 있고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얼마든지 비겁하고 사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내가 절대 그런 마음을 먹지 않도록 견고한 시스템이라도 있어서 나를 통제하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부조리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그런데 선배, 지금은 또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런 시스템이란 불가능하겠지요. 당연히 해결책도 될 수 없을 테고요. 시스템이 강력해질수록 깊은 불신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 결국 ‘자연’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에 가까운 존재가 되면 최소한 지금처럼 불안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인간에게서 신뢰나 믿음을 따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짐작도 해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인간은 자연에서 어긋나 떨어져 나오며 "본능이 파괴된 존재"라고 말하는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라는 책 때문입니다. 동물은 가지고 있는 그 정상적인 본능을 우리 인간은 잃어버렸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파괴된 본능을 보완하려고 허겁지겁 ‘환상’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그 공동 환상을 유지하려는 필요에 의해 인간은 국가를, 사회를, 가정, 가족, 문화, 문명 등 그 모든 제도를  만들었다는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이 세상의 소란스러움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필요성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라면 삐거덕대고 문제가 발생하고 시끄러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동물은 진짜 ‘현실’을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문득 ‘자연에 가까운 존재’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해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선배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결론이 닿으려고 합니다. 인간이 신뢰할 만한 존재인가, 라는 곱씹어 보는 물음에 ‘자연’을 생각하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뜻밖입니다. 저의 허술한 생각의 연결 끝에 불쑥 튀어나온 ‘자연에 가까운 존재’란 것에 대해 언젠가 선배와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요. 


깊은 봄밤입니다. 

오늘의 주절거림을 이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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