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쿠니히로, 《재미난 일을 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
2016년 여름,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를 통해 “‘우리가 재미있어야 독자도 재미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희대의 날고 긴다는 기획을 실행해 온” 출판사, 미시마샤! 기억하십니까.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어?” 하는 괴짜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독특한 행보에 일본에서도 파란을 일으켰지만 한국에서도 꽤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2016년 당시 “작지만 강한 출판사 미시마샤의 5년간의 성장기”라는 부제를 달고 미시마샤 대표 미시마 쿠니히로 씨의 이야기가 한국에 소개됐는데요, 뭔가 북적북적, 명랑하게 책을 탄생시키고 있는 거 같아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괜히 그들의 이야기에 함께 신나면서도 저런 명랑함이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내심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17년 책임편집했던 《책과 책방의 미래》에 후쿠오카의 북스큐브릭 대표 오이 미노루 씨와 미시마샤 대표 미시마 쿠니히로 씨가 ‘동네 서점의 이상적인 미래상’에 관해 이야기 나눈 내용으로 그의 이야기를 만났던 터라 더 반가웠습니다.
미시마샤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후쿠오카 느티나무길 북스큐브릭스 서점 앞에서 선 그의 모습은 몹시 단단해 보였습니다.
그랬던, 그 출판사 미시마샤. 지금도 여전히 ‘재미’를 잃지 않고 ‘일’하고 있을까요? 교정지를 받고 든 생각은 “오, 여기! 용케… 아니 역시나 살아있구만!”
“한 권의 책에 혼을 담는다”던 미시마샤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계속 잘나갔나? 혼을 담다 지치진 않았나? 어렵게 버텼나? 지금은 사정이 어떠할까? 개인적인 궁금증이 만만치 않게 일었습니다. 《재미난 일을 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2006년 1인 출판사로 시작해 어느덧 18년 차가 된 이 작지만 강한 출판사의 대표가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이야기 이후 재미난 일을 지속가능하게 일하기 위해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문제와 직면하며 어떤 가치를 점검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입니다.
일본의 작은 출판사가 어떻게 ‘굴러왔나’도 알 수 있지만 저자의 말처럼 “작은 조직과 회사를 앞으로 어떻게 꾸려 갈 것인가 하는 물음을 가슴에 품고 있는” 많은 분들께도 도움이 될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재미를 계속 추구하기 위해’ 어떤 변화의 방식을 채택하고 어떤 운영 방식을 선택해왔는가에 관한 끊임없는 실험과 멈추지 않는 생각의 흔적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재미를 계속 추구’하고 싶다는 방향이 명확하니 이래저래 방식이 흔들려도 굳건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책의 2장에는 매월 이 출판사를 응원하는 서포터즈에게 썼던 2018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의 편지가 실려 있습니다. 출판사 대표가 손으로 직접 썼던 미시마샤 통신과 독자엽서라고나 할까요. 어떤 호의 말미에는 따로 박스 처리되어 덧붙여진 글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과거의 편지 말미에 책의 원고를 쓰던 현재에 와서 달라진 근황이나 변화, 의견 등을 덧붙여 놓은 글입니다. 이제와 보니 소식지 제목이 비슷한 것이 많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는 넋두리나 그가 구축했던 출판 유통 시스템의 변천 과정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내용 들입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말의 풍성함(혹은 빈곤함)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말은 당연히 사람의 사고나 행동까지 좌우하기도 하지요”라는 출판인으로서의 사명과 고민도 엿볼 수 있고요. 한 출판사를 응원하고 애정해 주는 독자 팬덤이 있고, 그 독자들에게 “여기서만 말하는 건데...” 하며 손으로 쓴 엽서를 보내는 출판사 대표가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조금 비현실적인, 드라마 같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현실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세상에 건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상과 우리에 관한 고민이기도 한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는 속 깊은 친구의 편지를 함께 읽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한국어판을 낸 유유 출판사 또한 그동안 '유유당' '유유 계절학기' '뉴스레터 보름유유' 등을 통해 유유 출판사를 사랑하는 독자와 책으로 만나는 별별 방법을 다 강구해(?) 꾸준히 만나고 있는 것을 보면 '비현실적'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1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중략) 신기하게도 딱 이 타이밍에 나카지마 다케시 선생의 <뜻밖의 이타>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중략) 즉 자신의 의지를 떠나서 새어 나오고 흘러넘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이죠.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적어도 미시마샤는요.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재미있는 원고가 계속 들어와서 책을 출간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게 갈수록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150~151쪽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아마 “방식은 흔들려도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일 것입니다. 다수가 지금 재미있어하는, 누구나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재미가 아니라 만드는 사람까지도 놀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미지의 ‘재미’를 물건으로 만들어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이 출판사의 ‘흔들리지 않는’ 방향은 산뜻하고 뚜렷합니다.
‘재미’를 형태로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 이것은 우리 일의 핵심이자 생명입니다.
-34쪽
조직이 이렇게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방식은 좌충우돌하더라도 방향은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듭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분명 이 책을 읽는 독자께도 신선한 아이디어를 선사할 것 같습니다. ‘매출이 오르는 상태에서의 축소’ 라거나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 되는 다양하고 특별한 선택 이야기를 통해 사고의 전환이라는 경험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요.
어느 연예인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즐기는 자가 살아남는다”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마 그 연예인도 자신의 일을 즐기는 한,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미시마샤 대표님, 좋겠다. 재미있는 것이 있어서. 뭐가 재밌는지 알아서.'
그러니 내가 무엇을 재미있어하는가를 알아야 하고 나의 방향성은 그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분명한 방향을 갖는 것. 그것이 내 삶에도 반드시 가져야 할 것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세월을 뛰어넘어 몇 년 만에 만난 이 작은 회사가 이제껏, 또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도록 어떻게든 굴러가는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미시마샤가 어떤 우연의 가능성을 두드리고 그 문을 열어젖히는 출판사가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248쪽
덩달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 앞날을 상상하고 응원하고 싶은 출판사'들'이 있는 한 명의 독자로서, 생업으로 얽혀있는 한 명의 출판노동자로서, 교정 본 원고를 책임편집자에게 넘기며 생각했습니다. “흐, 재밌어!”
이 책의 책임편집자는 유유의 인수 편집자인데요, 이 책의 작업을 의뢰하며 "미시마샤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니 지금까지 일하신 것을 회고하는 책"이라며 "대표님이 원체 재미있으셔서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내시니 원고가 재미있다"고 이 책의 원고를 소개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래저래 '재미'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