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 집은 낡아가고 아이들은 커 간다. 둘 다 아쉽다.
“이번 여름 장마에 천장에 곰팡이가 쓸어가 벽지가 보도 몬하게 됐다.”
주말에 친정을 찾았다. 데크에 나무가 삭아서 발이 푹 들어간다고 엄마가 걱정이 많았다. 추석 앞두고 아는 목수분께서 새 나무로 꺼진 부분을 바꾸어 수리해 주셨는데 기존 데크에 색이 달라 조금 거슬렸다. 다시 칠을 해야겠다. 집으로 들어서니 은은한 주광 빛의 천장에 피어난 곰팡이가 흉물스러웠다. 올여름 무던히도 자주 내리던 비 때문에 지붕과 벽면을 연결하는 실리콘이 살짝 떨어져서 그 틈 사이로 빗물이 샌 모양이다. 추석 때 집에 온 남동생이 지붕 위로 올라가 다시 실리콘 작업을 하고 며칠이 지나 남편이 다시 살펴보았다. 비가 왔는데도 축축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이 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천장을 살펴보던 남편은 다시 셀프로 도배를 해야 할지 도배업체를 불러야 할지 한참 고민을 했다. 그러고는 천장에 곰팡이 제거제와 락스를 뿌려두고 곰팡이 자국이 지워지는지 우선 해보자고 했다. 오래된 낡은 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지었는데, 5~6년이 지나니 하나 둘 말썽이 생긴다. 집도 나이가 드는구나. 둘째랑 같은 해 태어난 녀석이 벌써부터 여기저기 다치고 아픈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좀처럼 꺼내어 켜지 않는 노트북을 켰다. 학교에서 쓰는 업무용 노트북이 편해서 무거운 그것을 챙겨서 작업했다. 5년째 쓰다 보니 이제 폐기될 시기에 이르렀는데 학교를 떠날 때 받아 가고 싶을 정도다. 개인 노트북 D드라이브에 저장해 둔 한글 파일을 찾던 중 그 옆에 아이들 더 어릴 때 사진이 보였다. 엄마 집을 새로 짓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고양이 풍요와 우리 아이들이 2층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귀여웠다. 2016년 봄이었나 보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한참 보고 있으니 밤낚시를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내일 출근인데 늦게 들어왔으면 그냥 씻고 잘 것이지 그는 갑자기 텔레비전을 켰다.
“오빠, 안 잘 거야? 내일 또 늦잠 자고 허둥지둥하려고 그러지?”
“아니 오늘 토트넘이랑 아스널 경긴데 손흥민 골 넣는 것 보고 잘라고. 니나 먼저 자라. 12시 넘었는데 니는 안 자고 뭐하노?”
“내일 출근 안 할거야?”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라.”
“그러면 이거 한 번 봐. 애들 너무 귀엽다.”
“맞네, 이럴 때가 있었는데...”
“오빠도 팩 붙여 줄까? 나도 경기 좀 봐야겠다.”
갑자기 마음이 동해 남편 얼굴에도 팩 하나 얹어 주고 소파에 앉아 나란히 경기를 봤다. 전반전이 끝났다. 3:0이었다. ‘그냥 잘 걸 괜히 봤다’며 씩씩거리다가 각자의 길로 갔다. 아이들은 안방에 우리 침대에 먼저 자고 있었고 하는 수 없이 남편은 그 아래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짧아도 깊은 숙면을 하겠다며 그들이 없는 큰아이 방 침대에 가서 혼자 잠을 청했다.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한 캐논을 자장가로 선곡하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엄마”
"..."
“엄마...”
꿈인 것 같은데 딸아이가 나를 계속 불렀다.
“엄마, 일어나서 나 좀 봐.”
“으응..?”
“지금 내가 오줌을 좀 쌌는데... 팬티랑 바지 좀 갖다 주면 안 될까?”
눈이 안 떠졌다. 보드라운 맨다리의 살결이 느껴지는 걸 보니 꿈은 아니었고, 일어나 서랍에서 옷을 가져다주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도 떠지지 않고.
“씻었어?”
“응, 내가 씻고, 옷도 씻었어.”
‘스스로 씻었다니?’ 놀라웠는데 그 말에 안심이 되어 그런지 그때 다시 수면에 빠져버린 듯했다. 내 옆에 온 아이는 그렇게 반쯤은 헐벗은 채로 나와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띠리리릭~”
시끄러운 알림이 귓속을 파고들며 울렸다. 5시 30분이다.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무겁다. 자던 중 의식이 잠시 깼던 새벽에 일어난 것도 아니면서, 옆을 보니 딸아이가 자유롭게 잠을 자고 있다. 조금만 더 자야지 해서 30여 분을 더 눈을 감고 계속 울려대는 알람과 사투를 벌였다. 아침 독서도 해야 되는데 이런 상태라면, 글도 눈에 안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더 늦으면 서로 짜증과 고성이 오갈 수 있는 나름의 한계 시간이 되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씻고 아이들 등원할 도시락과 물통, 내 도시락을 챙겼다. 딸아이가 일어날 시간이라 침대로 가서 깨워야 했다. 아마도 부끄러운 마음이 있을 것 같아서 괜스레 입으로 배에다가 푸푸 거리며 입방구를 불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보조개가 살짝 들어가게 상큼하게 웃었다. 꼭 끌어안았다. 아이를 깨우고 씻겼다. 남편이 이어받아 옷을 갈아입히자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단장하기 위해 화장대 앞에 섰다. 그런데 화장대 위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남편은 거실 욕실에서 씻었고 나는 씻고 수건걸이에 올려두었는데 이 축축한 수건은 무엇이람?’ 수건을 살짝 열어보았다. 쿰쿰한 냄새나지 않고 비누 같은 좋은 냄새가 났다. 아이 팬티랑 바지가 손으로 짠 모양으로 그대로 들어있었다.
“오빠, 여보가 이거 씻었어?”
“아니, 왜? 뭔데?”
“윤서 오줌 싸고 팬티랑 바지 누가 씻어놨는데?”
“엄마, 그거 내가 했어. 엄마가 하는 것처럼 세면대에 옷 넣고 울샴푸 넣어서 조물조물하고 물에 헹궜어. 손으로 짜서 수건에 싸놨어.”
“윤서가 했다고? 우와, 대단한데 왜 이렇게 했는데?”
“엄마한테 혼날까 봐.”
그제야 일어난 큰아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마 어제 새벽에 윤서랑 왜 일어났어?”
“안 일어났는데?”
“아닌데 나 엄마랑 윤서랑 말하는 거 들었는데?”
“새벽에? 윤서가 일어났는데 엄마가 잠결에 말만 하고 못 일어났거든.”
“내가 3시에 오줌 누고 싶어서 일어났거든. 근데 딱, 오늘 숙제 내야 하는데 일기를 안 쓴 게 생각나서 책상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었거든. 근데 윤서가 갑자기 엄마한테 가더라고.”
“그래서 일기를 다 썼어?”
“응, 엄마 이것 봐. 나 썼어.”
새우
오늘 가족들과 새우를 먹으러 갔다.
나는 새우를 안 먹는데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새우를 까서 동생한테 줘따.
그런데 갑자기 새우가 확 뛰어나왔다.
깜롤했다.
갑자기 새우가 빨개졌다. 너무 불쌍했따.
나는 집에 와서 김치에 밥을 머겄다.’
<주말 일기 : 7줄 이상 하루 중 인상적이었던 일을 선택하여 생각과 감정이 드러나게 쓸 것>
틀린 글자와 엉망인 필체가 마음에 걸렸지만 자다가 갑자기 숙제 생각이 나서 새벽 3시에 차분히 앉아 글을 썼다니. 감동에 감동이었다. 오줌 싸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엄마한테 미안하고 무서워서 옷을 직접 빨아 놓다니 그것도 감동에 감동이었다. 사실 토요일 낮부터 두 아이가 미친 듯이 싸워대서 말리던 끝에 도저히 답이 없어 매를 들었다. 손바닥을 한 대씩 때렸다.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큰아이는 죄송해하고 작은 아이는 씩씩거리며 달려들 기세였다. ‘도대체 이 녀석들은 언제 커서 엄마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새벽 3시에도 무럭무럭 자라나던 아이들을 보니 잠시 성장을 멈추고 이대로였으면 싶기도 했다. 번듯했던 새집은 세심한 관심이 없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조금씩 낡아가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살뜰한 관심을 쏟지 않아도 매일 성큼성큼 자라나고 있다. 사랑스럽고 하루가 아쉽다. 그리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