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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Nov 03. 2021

<안녕, 나의 한옥집>에서 어린 나를 만났다.  

작가님에게 처음으로 쓰는 편지


어린이 수진이와 임수진 작가님께


참 좋은 가을 아침입니다. 미국의 오늘은 어떤가요? 저는 밤호수님이 아닌 임수진 작가님의 책으로 그 한옥집과 함께 당신을 처음 만난 독자입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신간, 당연히 작가님도 처음이었어요. 그런 책이 포장되어 저희 집 앞에 있었어요. 10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평일의 매일 아침마다 행운의 글을 발행하는 언니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단어 3개를 선물해 달라고 했어요. 그날 아침 제가 보았던 하늘에서 발견한 ‘가을’을 첫 단어로 적었어요. 그러니 두 개를 더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빠져 있던 ‘작은 기쁨’과 ‘멋쟁이’라는 그냥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를  선물했어요. 대화창에 단어를 입력했더니 “단어를 선물해 준 그대에게 가을에 어울리는 선물을 보내리.”라는 답장이 돌아왔어요. 단어를 넣으면 무엇인지 모를 선물이 나오는 자판기 같은 그녀의 생각이 당신과의 인연을 불렀나 봅니다. 며칠이 흘러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카카오가 알아서 제 생일을 알려준 덕분에 정말 과분한 관심과 축하를 받았어요. 카카오의 선물하기 기능으로 많은 선물도 받았는데요, 요즘 인터넷 쇼핑을 즐기지 않아 택배 기사님이 저희 현관 앞에 오신지 꽤 되었는데 그 한 주간 택배사에서 곧 도착한다는 문자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지 못하는 얇은 비닐 택배가 하나 놓여 있었어요. 딱 보면 알지요. ‘저건 책인데, 내가 주소지를 입력한 건 아니고, yes24에서 시킨 적도 없는데…’  발신인을 보니 행운의 그녀였습니다. 생일이라고 보내준 다른 책 선물도 있었고, 읽고 있던 책도 있었으며, 읽고 싶던 책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별안간 또 책이 왔어요. 내가 알지 못하는, 처음 보는 책. <안녕, 나의 한옥집>.




잘 모르는 출판사이긴 한데 동네를 표현한 일러스트 위에 여백 가득하게 세로로 쓰인 제목이 잘 어우러져 책 표지가 너무 예뻤어요. 뒤표지에 자리한 나태주 시인님의 추천사 첫 문장이 눈길을 끓었습니다. ‘아, 이런 글이 있었던가!’ 함께 도착한 다른 택배 상자에도 나태주 시인님의 <나태주, 시간의 쉼표>라는 일력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너무도 소름 돋게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글이길래? 가슴이 벅차오르다 못해 뛰기 시작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을까? 그 극진한 시의 문장은 무엇일까?’ 작가님의 글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책을 펼쳐 나태주 시인의 ‘문장은 잔인하다’라는 글부터 해서 프롤로그인 ‘그 시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에게’를 읽었습니다. 그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멀리 떠난 이방인이 되어  유년의 환상이 펼쳐졌던 한옥집에 자신의 가장 애틋한 마음을 두고 왔다니, 이제는 작가님의 글이 아닌 한옥집이 궁금해 책을 덮을 수가 없었죠. 택배를 열자마자 대충 살펴보려 했는데 결국 나는 의자에 앉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면서도 넘겨지는 페이지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작가님의 글에  빠져들게  것은 어린 수진이에게서 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시기인  하지만 어딘가 다르고, 바다를 끼고 자란 저와는 다르게 산을 품은 내륙의 감성을 지닌 것에 차이가 있지만 몇몇 에피소드에서 소름이 돋을 만큼 찌릿했어요. 저도 우리 동네에서 새로 지은 실내 계단이 있는 양옥집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일하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셋째 딸입니다. 큰언니는 여왕벌 같았고 둘째 언니는 그에 비하면 착했지만  엉뚱했지요.  위로도 오빠인지 언니인지  길은 없지만 전해 듣기로는 배에서 유산한 오빠가 있었답니다.  또한 오줌싸배기이기도 했고  밖에 있는  뚫린 화장실이 두려워 요강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저희 엄마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태동도 다르고  모양도 여지껏과 달랐던 우량한 넷째를 낳았는데 꽃님이라는 여동생입니다. 아빠는 딸들만 있어도 좋다고 애들  먹는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다고 하셨는데 아들 없는 설움에 눈물짓던 엄마는 서른 중반에 끝내 아들을 낳고야 말았습니다.  자매였더라면  달랐겠지만  남매가 되어서  치열하고 독립적으로 자랐어요. 자라났던  시대를 공유했기에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속에 모든 사건들과 이야기는 공감으로 흘러넘쳤어요. 요즘 좋은 문장을 수집하고 있는데 작가님의 책에서 수도 없이 키보드를 두들겼습니다.   


자전거 사고를 보면서 더 뜨악했던 것은 흰 원피스를 입고 갔다가 “빨간 원피스 입은 애 맞죠?’라고 묻는 장면에서 덜컥, 저의 교통사고가 떠올랐어요. 할아버지께서 부산 큰아버지댁에 가서 텐트라는 것을 받아온다는데 그게 너무 궁금해서 버스정류장에 마중을 가던 길에 6톤인지 8톤인지 집채만 한 트럭에 흰 원피스를 입은 조그마한 제가 깔려 검은색 바퀴 자국과 피로 얼룩진 그날, 그날의 충격이 몰려들었어요. 남새밭이며, 잔칫날이고, 사랑채에 사는 어렴풋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런저런 웃음을 유발하는 세 자매의 에피소드들이 제 유년 속 뛰놀던 우리 집과 엉켜 저는 자꾸 1990년대 우리 집 앞 골목을 계속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곤 엉뚱 발랄한 수진이가 돌아다니는 부엌의 솥뚜껑 뒤켠과 장독대 곁, 젓갈이 보관된 광. 내가 가본 적 없는 글에서 본 한옥집을 마음에 그리며 그 속에서 만난 다양한 건물과 그 속에 사람들을 하나 둘 채워가면서 공주의 제민천, 한옥집, 공주 제일교회, 마리아 수예점, 벽돌집. 그런 곳들을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이 동합니다. 미국에서 오기 힘든 작가님을 대신해 내가 그 골목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끌어올랐어요. 아마 올해가 가기 전, 지난다면 겨울 방학에 저는 아마도, 꼭, 그 골목을 걷고 있을 것 같아요.


아차, 이 책을 읽으며 현재와 마주한 것도 있는데요. <까치에게 이를 남기지 못한 자의 저주_유치가 빠질 때 즈음>을 읽으며 일곱 살이 된 제 딸아이를 이해했습니다. 영구치가 뒤쪽에서 반 이상 올라왔고 유치는 흔들려서 혀로 밀어도 반 이상 넘어가는데 2주째 무섭다고 입을 다물어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딸아이. ‘살살 빼줄게’ 달래어도 보고, ‘이렇게 안 빼면 괴물니가 된다’고 겁도 줘 보고, ‘이 빼면 그토록 바라던 콩순이 코딩 컴퓨터를 사준다’고 구슬려도 보았는데 막무가내인 딸아이. 돌아오는 답은 “너무 무서워서 할 수가 없어.” 조금 세게 입을 벌리려 하면 “내가 이렇게 무섭다는데 엄마는 그렇게 강압적으로 꼭 이를 빼야 되겠어?”라며 울부짖는 딸아이. 그렇게 실랑이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던 날들을 보내다가 책에서 ‘어서 이 이를 빼내야 한다는 필살의 사명’이라는 한 문장을 보고 저는 거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 엄마의 다부진 손길에 깜짝 놀란 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 울었고, 멧돼지 잡는 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의 인생 첫 유치를 뽑았습니다. 훗날 우리 아이가 엄마가 갑자기 달려 들어서 이를 뽑았던 그때를 떠올리면 아마도 <안녕, 나의 한옥집>이란 책의 47쪽을 펼쳐 보여주려고 합니다.


암튼,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당신의 문장은 잔인했습니다. 책은 덮을 수 없었고, 나의 유년 시절과 다른 듯 닮아 있는 당신의 유년 시절의 환상과 추억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고 저는 작가님이 글을 쓴 그 마음을 온전한 나눈 독자가 되어 당신께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책을 읽고 작가님에게 이런 긴 호흡의 주절주절한 편지를 어느 누가 쓸까마는, 서평이 아닌 편지가 쓰고 싶어진 것은 왜일까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이런 글을 시간과 공을 들여서 쓰는 이유는 단연, 책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기억의 조각들이 어떻게 머나먼 그곳의 창문 너머로 다 생각이 났을까? 궁금했습니다. 그 답을 258쪽에서 찾았어요. 짧은 어린 시절, 그 땅이 주었던 충만함과 행복으로 인해 상실은 슬픔이 아닌 그리움으로 남고, 소멸은 아픔이 아닌 추억으로 존재한다고. 그 충만함과 행복이 얼마나 컸을까? 제 경험을 바탕으로 가늠해 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렸을 때 한옥집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그리움의 작가가 되신 밤호수님. 아니 임수진 작가님, 올 가을이 오기 전에 ‘밥’이라는 주제로 부모님께서 어린 시절 해주신 밥들을 떠올려 글로 풀어낸 적이 있어요. 남부 해안가의 음식과 충남 공주의 음식에는 약간의 온도 차가 있지만, 그 모든 것에서는 ‘정성’이라는 조미료가 그득했네요. 당신의 여러 문장에서 나를 생각했습니다. 이 책으로 임수진 작가님을 알게 되어 너무 반갑고, 그 따뜻한 글을 읽게 되어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머님께서 추도식이나 잔칫날에 만드신 멧돼지 족구이가 먹고 싶어지는 퇴근 후 저녁시간입니다. 이만 편지글을 마무리하고, 돌담이라는 한옥집에 가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려 합니다. 한옥집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식사 내내 미국에서 한옥집을 그리워하는 작가님 책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해요. 멀리서 좋은 가을밤 보내세요.


- 통영에서 우연한 독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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