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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Jul 29. 2022

제2화 남편은 안 간 남편을 위한 여행

part1. 남편의 선택_“여보 미안하지만 나는 퇴사할 거야.”

하동 호연가와 평사리의 아침에서 깨달은 것 


우연히  장의 사진을 보았다. 바로 목향장미,  색을 어떻게 표현해야 맞을까? 내가 표현할  있을까? 병아리나 레몬색에 가까운 연하고 순수한 노란빛인데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목향 장미 넝쿨을 보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찾아보니 이곳은 하동 최참판댁 근처에 있는 화덕에 빵과 피자를 굽는 카페이면서 프랑스 자수를 배울  있는 공방이었다. 이어 하동 숙소를 검색했다. 하동에 새로 오픈한 독채 한옥 숙소를 보고 나의  신경과 마음이 부풀어 오픈 채팅방에 문의하는 수고로움을 거쳐 갑자기 취소된 일자에, 그러니까 당장   금요일에 숙소를 예약하였다. 이름마저 좋았다. 좋은 인연의 , 호연가. 남편의 생일에 맞춰 준비한 선물이었다. 하룻밤 온전히 우리의 집이 되는 한옥이라니, 솥뚜껑에 지글지글 삼겹살도 구워 먹고 남편과 악양 막걸리도   하면서  같이 장작불 피워 불멍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금요일 퇴근 후만을 기다리며  주를 보냈다.      



금요일만 목을 빼고 기다리는 한 주는 어찌도 그리 길던가, 며칠만 견디면 되는데 화요일 저녁쯤엔가 남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토라져버렸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때의 이유가 지금도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별 거 아닌 이유였음이 분명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주면 금방 풀어질 줄 알았으나 남편의 마음은 더 꼬여버렸는지, 탄 감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숙소 취소는 불가능했다. 출발 당일까지 그의 상태를 지켜보았으나 같이 갈 마음도 없거니와 같이 간다면 더 고통의 시간이 될 듯했다.      


“여보, 우리끼리 다녀올게.”     


4월 15일 오후 6시 39분. 숙소에 도착했다.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잔디와 연둣빛의 잎사귀들, 산자락 아래에 위치해서 그런지 숲에서 부는 바람과 그에 맞춰 우는 새소리가 참 많이 들렸다. 현관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서니 훤히 보이는 이 집의 서까래와 집을 지으며 여러모로 신경을 쓴 조명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침대 맡에 두 개의 포인트 조명은 이 공간 특유의 아늑함을 느끼게 하였고, 깨끗한 침구 위에 놓인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니 체크무늬 파자마 두 개에 각각 준비된 이곳의 어메니티와 주인장이 손으로 쓴 환영 편지가 들어있었다. 화병이 놓여 있는 선반으로 눈을 돌리니 주전부리 간식과 컵라면에 아이들을 위한 비눗방울 2개가 보였다. 지나칠 인연일 얼굴도 모르는 투숙객을 위해 손편지를 쓰고, 여러모로 배려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발견하며 정말 들어서자마자 나는 반해버렸다.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남편 없이도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서 끙끙 준비해 두 시간 남짓 쉬지 않고 운전해오고도 이렇게 충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밌으라고 그런지, 우여와 곡절이 많이 일어났다. 우선 주차부터 쉽지가 않았다. 마을의 골목길을 막고 있는 트럭 때문에 사장님과 첫 통화를 했고,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릴 수 없는 아이들은 차에서 내려 뛰어가 마당에서 놀았다. 내가 짐을 풀자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난리였다. 우선에 간식과 주전부리를 먹게 하고 놓칠 수 없는 정돈된 공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바비큐를 신청해 두었으므로 불을 피워야 했다. 분명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준비된 장작에 토치로 불만 붙이면 되니까, 그런데 토치가 이상했다. 부탄가스를 흔들어보니 가벼운 것이 가스가 없어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다. 처마 자락 아래에 있던 가스 불판을 열어보니 꺼내쓸 수 있는 부탄가스가 보였다. 그것을 끼워 넣고 해결된 줄 알았으나 여전히 토치는 이상했다. 아마도 고장인가 싶었다. 다시 전화를 했고, 20여 분만에 토치를 새로 사 오신 사장님께서 도착하셨다. 연신 죄송하다며 직접 불을 피워주신 사장님 덕분에 고기를 굽고 준비해 온 맥주를 까기 시작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숙소에 야외 조명이 켜지고 지글거리는 불판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있으니 다시 꿈꾸던 시간 같았다. 정신없이 고기를 먹어 치우던 아이들이 배가 찼는지 손을 씻고 싶다고 숙소로 가더니 그대로 나왔다.     

 


“엄마, 물이 안 나와.”

“거짓말, 물이 안 나오는 숙소가 어디 있어. 수도꼭지를 제대로 틀어야지.”

“아니야... 진짜 안 나와.”

울먹이는 아이 낯빛이 이상해 바비큐 공간 옆에 있는 파란 수도꼭지를 틀어보았다.

‘쫄.. 쫄.. 쫄...’

“어머, 이게 왜 이러지?”

숙소로 뛰어가 세면대, 싱크대, 화장실에 물이 나오는지 확인해보았다.

한 방울, 똑똑... 그리고는 물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선 물티슈로 닦고, 여기 고양이랑 놀아.”      

금방 다녀가신 사장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갑자기 물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나도, 그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잠시 동네 이장님께 상황을 파악한 후 다시 미안함 가득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손님, 너무 죄송합니다. 진짜, 무슨 이런 일이 있을까요? 봄 가뭄으로 동네 수도가 단수된 것 같다고 합니다. 지금 지하수를 퍼올리고 있다고 하는데, 당장 불편하시죠? 근처에 저희 부모님 가게가 있어서 생수를 사서 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곧 복구가 되는 건가요?”

“네, 아홉 시쯤이면 물이 나올 거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때까지 씻고 하시는데 많이 불편하시니까 생수를 가져다 드리도록 할게요. 너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다행히 트렁크에 2L 생수 2병이 있어요. 우선 아이들 양치랑 세수만 생수로 해결하고, 설거지는 물이 나오면 할게요. 부모님 번거로우신데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아, 그러시겠어요? 싱크대 하부 커튼을 열면 그 안에 생수들 더 있는데 그것도 쓰셔도 됩니다. 너무 죄송하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물은 안 나오는 것이고, 준비된 장작을 다 쓸 때까지 아이들과 불놀이를 했다. 음악을 듣고 별을 보고, 불이 잦아들면 또 장작을 넣고, 고양이에게 남은 고기를 챙겨주고, 박자감 있게 술을 마셨다. 남편이 없으니 흥이 조금 오르지 않고, 토치나 주차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사장님께 전화하지 않고 해결할 수 없었지만 단수의 에피소드는 그도 어쩌지 못했으리라.     


사실 아홉 시가 넘어도 단수는 해결되지 않았다. 생수로 무인도 생존 체험하듯 아이들을 씻기고 피아노 재즈 선율에 재웠다.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침대 조명만 켜 둔 채 무지개가 떠 있는 하늘을 담은 작은 노트 'Good Luck'을 열어보았다. 신혼여행을 온 부부, 아이들과 놀러 온 가족, 기념일을 맞은 달달한 연인들까지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읽으니 행복해 보였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였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11시 41분이었다. 틀어놓은 수도에서 똑똑 떨어지던 물이 양치컵을 가득 채우고 졸졸졸 흐르기 시작하던 때는. 나는 아이들보다 비교적 풍족하게 양치와 세안을 마치고 아침 샤워를 다짐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담아, ‘그럼에도 나는 행복하였네’라고 그 노트 다음 장에 연필로 글을 썼다.    

 

새소리가 잠을 깨웠다. 물을 켜보니 콸콸 흘렀고,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아이들은 포근한 침구에서 여전히 쿨쿨 잠에 빠져 있었는데 그들을 향해 비춰오는 아침 햇살이 참 다정하고 따뜻했다. 나는 주방으로 가 캡슐 커피를 내리고 창가에 앉아 조용히 풍경을 즐겼다. 미룬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먹을 아침을 준비했다.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손님, 잠은 푹 주무셨어요? 물은 나오나요?”

“네, 아침에 물 잘 나오고 따뜻한 물에 기분 좋게 샤워도 했어요.”

“너무 죄송해서 그런데, 숙소 근처에 보면 ‘평사리의 아침’이라고 화덕피자를 굽는 브런치 카페가 저희 부모님 가게이거든요. 꼭 와서 커피랑 피자 좀 드시고 가세요.”

“평사리의 아침이요? 저희가 4월에 하동으로 온 이유였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들르겠습니다.”      


맑은 오전의 호연가 곳곳을 살폈다. 마당 가득 예쁘게 가꾸어진 꽃들과 배려의 흔적을 살피고 나와 평사리의 아침으로 갔다. 평사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꿈의 정원이었다. 내가 주차를 하고 내리는 곳에 사장님은 마중을 나오셨다. 두 부모님도 내려오셔서 지난밤 걱정과 미안함을 내비치시며 제일 좋은 뷰의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하셨다. 곧 화덕피자와 커피, 아이들 마실 식혜 등을 아끼지 않고 내오셨다. 바람이 불어왔고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잠시 화장실을 가는데, 그 사진에서 보았던 넝쿨이 보였다.      

‘엇, 왜 아직 초록이지?’하고 자세히 보니, 한껏 피어나려는 꽃봉오리 상태였다.    

  

“아직 일러요. 일주일 즈음 지나야 목향장미가 활짝 피어날 거예요. 그때가 예쁘지만 사람들이 정신없이 많이 와서 지금이 더 좋을지도 몰라요.”

10년을 넘게 이 정원을 가꾸어 오신 어머님이 가까이 오셔서 하신 말씀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밖에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빛의 논 사이로 궁금한 공간이 보여 차를 세웠다. 동정호였다. 그곳에는 느린 우체통이 있었는데 남편에게 쓸까 하다가 딸아이와 나는 각각 1년 후 각자에서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었다. 내년 봄이 되면 도착할 편지에 뭐라고 썼을지, 남편 없이 떠나온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지 얼마나 오글거릴지 벌써부터 부끄럽다.     

  

지난 저녁 아이들의 영상 통화 이후 별다른 연락이 없는 남편에게 나도 보란 듯 연락하지 않았다. 호수 탐방을 마치고 집으로 출발하는 시각에 전화를 걸어 이제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      

“어, 알겠어. 조심해서 내려와~”

역시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4월에 하동으로 떠났던 그때의 우리를 떠올려 보면 삶은 꼭 그런 것 같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으로 얽힌 우리의 인생이 결국 돌고 돌아 좋은 인연이 될 수도, 똑하고 끊어질 수도 있는데 그것은 모두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글을 쓰며 남편이 토라진 게 어떤 이유였는지 너무도 궁금해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떠올려 보았으나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으니 결국 지나고 나면 이리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순간의 감정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는 과정에 그것을 잘 비워내어야 또 잘 담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 여행을 통해 나는 그 어떤 불편한 상황이 다가오더라도, 상대에 대한 다정함을 잃지 않으면 그 순간이 마음의 저장고에 선물처럼 오래오래 담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4월의 호연가와 평사리의 아침을 잊을 수 없다. 그 가족에게서 받은 환대는 나 또한 타인을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게 하였다.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닌, 몸에서 넘쳐흐르는 그런, 다정함을 가진 사람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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