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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Aug 01. 2022

제3화 5월의 태풍이 올 것을 나는 알고 있었네

part1. 남편의 선택_“여보 미안하지만 나는 퇴사할 거야.”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었다. 정신없이 날리던 머리카락은 내 뺨을 수도 없이 쳐대며 엉킨 채로 사납고 날카롭게 흔들렸다. 입고 있던 검은색 긴 원피스에 바람이 들어가 부풀어 펄럭이다가 이내 몸체가 훤히 드러나도록 들러붙기를 반복했다. 이 매서운 바람에 걷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우리 지역이 태풍의 영향권이라고 뉴스에서 계속 보도했으나 일기예보는 자주 틀리기 일쑤라 여긴 나는 무심했다. 강수확률이 높았던 어제도 비는 오지 않았고 오늘 아침에도 수분을 가득 머금은 기분 나쁜 바람이 불긴 했으나 파란 하늘도 언뜻 보였다. 나는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았다. 가까이 몸을 피할 건물이나 지붕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나는 해안도로 산책로 한복판이었다. 이 순간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기에 주차해둔 차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갔으나 몸은 이미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가끔은 타인의 아픔이 내 슬픔이 되기도 하고 또 타인의 행복이 우리의 기쁨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과 마음에 한 축을 크게 차지하는 부부 한 쌍이 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는 큰아이의 조리원 동기로 당시에는 별다른 교류가 없었는데, 운명처럼 아이 돌잔치 장소가 같아 연락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 부부로 사는 동안 서로에게 의지가 된 소중한 인연이다. 형부는 언니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데 그 차이만큼이나 자존과 지혜가 깊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끔은 선비 같기도 하고, 그들과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보통의 주말이나 주중의 저녁에도 자주 함께 하곤 한다. 그들은 남편과 같은 직종에서 일하여 직장 내 분위기와 관심사, 고민 등이 비슷하여 서로에게 공감하는지라 만나면 언제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이어진다. 여느 때와 같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가득 받은 힘든 하루를 보낸 5월의 휴일 전 저녁이었다. 퇴근 무렵 전라도에서 오신 손맛 좋은 사장님의 파김치와 푹 익은 묵은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단골이 된 동네 고깃집에서 만나자 연락이 왔다. 각자 퇴근하고 아이들을 챙겨 불판 앞에 마주 앉았다. 다음날이 휴일이라 그런지 삼겹살에 소맥을 말아 마셨는데 식사를 마치고도 한 2%가 부족해 아니 10% 이상 바로 집으로 가기에 아쉬워서 우리 넷은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근처 호프로 향했다.

     

“나는 학교를 옮기고 커피 마시는 게 너무 스트레스인 거예요. 손가락 안에 셀 수 있는 사람들과 지내다가 갑자기 너무 큰 중앙 교무실로 환경이 바뀌니까, 이게 같이 마실 사람도, 같이 마실 방법을 찾는 것도 어려웠어요. 갓 내린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은 포기할 수 없는데...”

“그럼 거기 원래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마셨던 거예요?”

“각자 자기가 마시는 차를 따로 갖고 있으시고, 공용으로 믹스커피가 있긴 하던데 어떻게 그게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원두 드시고 싶은 분은 개인적으로 드립백을 준비해서 드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저도 드립백 커피를 마셨는데 매일같이 아침에 갓 그라인딩 한 원두로 내려 마시다가  그걸 마시니... 그래도 한 때는 몇 분들이 같이 티타임을 하셨는지 그라인더랑 드리퍼, 드립 포트, 서버 다 갖춰져 있어서 곧 멤버들을 모았어요. 서로 맞는 공강 시간이나 점심 먹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제일 소중해요. 너무 힐링이에요.”

“우리는 티타임이라 할 시간이 없는데... 난 그냥 밥 먹고 자판기 커피 한 잔 하는 게 끝인데. 그리고 그렇게 같이 모여서 마시고 싶지도 않아.”

“우리도 똑같이 살벌해요, 서로 으쌰 으쌰 힘을 모아 협력해야 하지만 알고 보면 결국 개인 실적을 내야 하는 경쟁 관계에 있는 사이라 저도 늘 신경이 쓰이고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형수님 회사는 젊은 직원들끼리 마음이 잘 맞아서 회식도 자주 하고 즐거워 보이는데요.”

“우리 오빠는 요즘 전체 회식을 해도 밥만 먹고 빨리 오더라고. 코로나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술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예전하고 비교해 보면 정말 술자리에 안 간 지 오래됐어요.”

“굳이... 가기 싫으니까 그렇지, 술도 즐거워야 마시지. 회식도 업무의 일환이고 답답해. 진짜 일요일 밤쯤 되면 개학 전 날에 방학 숙제 다 안 한 학생 같은 심경이 되는 것 같다니까.”

“직장이라는 게 결국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는 곳이어서 사람들한테 스트레스를 받으면 너무 힘들죠. 그럴수록 더 차분하고 침착하게, 동생~ 차분하고 침착하게 알지?”     

   

대화 레퍼토리는 늘 비슷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형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넘쳤다. 남자의 사회생활에는 어느 정도 상대에 대한 배려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술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그는 전날 몇 시까지 마셨든 상관없이 다음날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새벽 네 시 반에는 눈을 뜨고, 아침 조깅을 한 후에 여섯 시도 채 되지 않아 직장으로 출근하는 근면 성실한 과장님이었다. 그는 어쩜 저렇게 매일같이 알코올을 부어도 얼굴색도 좋고 숙취도 없이 간이 튼튼할까 싶은 연구 대상인데 관찰 결과 매일 같이 규칙적인 음주와 운동의 병행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듯 했다. 형부는 술을 먹건 밥을 먹건 남편을 다독이며 모범 답안 같은 슬기로운 회사 생활을 제시하곤 하는데 같은 금융권의 선배로서 아끼는 마음에 일러주는 것들이 남편에게는 잘 먹혀들지 않는 위로 같아 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남편이 먼저 술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얼굴이 일본원숭이처럼 바뀌고 한 시간 이내에 스르르 잠이 드는 것은 그의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가 잠들고 한참을 더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는 남편을 깨워 이제 집으로 가야 된다며 씩씩하게 걸어 집으로 갔던 것으로 그날의 기억은 끝났다.

     

다음날은 어린이날이었다. 속은 마구 좋지 않았다. 얼굴 상태도 속만큼이나 나빴다. 시댁 가족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위아래로 급속 배출을 하였음에도 온몸이 퉁퉁 부었다. 그렇지 않은 듯 단장하고 립스틱을 바르고 뾰족구두를 신었다.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한적한 교외의 한우촌으로 갈 때만 해도 속이 계속 울렁거리더니 살짝 구워진 소고기가 내 앞에 놓이니 잘도 넘어갔다. 전날의 과음이 티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속과 함께 정신도 좀 채워지고 내 상태가 괜찮아지자 어제 함께했던 언니가 걱정되어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속 괜찮아? 나 오후 2시까지 잤어... 어린이날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할 뻔했다는... 언니는 어때?」

「헐... 그럼 일어나서 바로 챙겨 나간 거야? 우린 괜찮아. 아침 일찍 애 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 수행하러 다니고 있다가 지금 뻗었어.」

「언니 체력도 진짜 대단해. 우린 이제 밥 먹고 차 마시고 집으로 넘어가는 중이야.」

「그런데, 너 최근에 힘든 일 있었던 거 아니지? 어제 너의 눈물에 내가 다 울컥했어.」


고기를 먹을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신 탓인지 그간의 누적된 기분 탓인지 셋이서  참을  이야기하던 중에 내가 우리 남편이 안쓰럽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필름 속에 삭제된 기억이기에 ‘그럴 리가하면서도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가  순간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아마도 나는 마음속으로는 무언가를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한계에 다 달았구나. 정말 힘들구나. 회사에서 일하는 게 어쩌면 고통일지 모르겠다.’ 곧 다가올 태풍주의보가 발동하기 전에 나는 미리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총 맞은 것처럼, 예고도 없이 남편이 퇴사했다고 생각했으나 조금 멀리서 5월의 나를 떠올려본다. 마치 일기예보의 태풍주의보와 태풍 경보와도 같았던 남편이 보내온 여러 가지의 시그널을 보고 들었던 나는 분명 이후에 펼쳐질 상황을 알았음에도, 지금 당장의 내 앞의 맑은 하늘만 보고 다른 나라나 먼 훗날의 이야기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학교의 아이들이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사계절 중에 어떤 계절을 제일 좋아하세요?”

... 나는 초여름, 너무 더운  여름 말고  지금 같은 푸릇푸릇한 초여름. 피어나는 꽃들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말고, 꽃잎이  떨어지고 처연해지는 시기 지나 돋아난  잎이 연두색에서 조금  색이 진해지는  지금,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

“아...”

“그런 거 있잖아. 딱 대만 로코보면 나오는 파아란 하늘에 초록색 잎들이 한들거리는 그런 청춘의 계절.”

     


그렇게 나는 초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분명히 말했으나 어떻게 인생에 좋아하는 계절만 있으랴. 내가 좋아하는 계절과 그러하지 않은 날들이 모두 지나야 한 해가 간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또한 피하고 싶은 두려운 태풍이 지나면 오염된 세상의 일부는 비바람에 씻겨 맑아짐을. 그리하여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오도카니 바라볼 수 있음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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