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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Nov 06. 2024

꿈의 대화

사람들과 말하고 들으며 꾸는 꿈 


나는 사람들과 말하고 듣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은 가볍고 재밌는 이야기로 별 의미 없이, 가끔은 깊고 묵직한 주제로 밀도 높은 대화를 즐긴다. 달콤한 쿠키에 갓 내린 커피와 함께여도 좋고, 맥주든 소주든 말랑말랑하게 풀어질 수 있는 술자리도 좋다. 맑고 푸른 날 살랑살랑 바람 불어오는 나무 그늘 아래여도 좋고, 전구색 빛이 감도는 아늑한 카페에 앉아 촉촉하게 내리는 비를 볼 수 있는 날이어도 좋다. 그날의 날씨와 분위기, 마주한 상대와 이야깃거리에 따라서 대화는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살아 숨 쉰다. 어떤 날의 대화는 적당한 시간을 거쳐 서서히 나아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들쑥날쑥 널을 뛰다가 하늘하늘 춤을 추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분명 귀 기울여도 상대가 하는 말의 숨은 뜻을 알지 못할 때도,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공감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경제와 과학 분야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날이면 나는 꿀 먹은 듯 조용해진다. 말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대화의 경험이 쌓이고 대화 주제가 다양해지면서 나는 점점 경청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더 좋은 대화를 위해 다양한 책들을 성실하게 읽고 그 속에서 만난 명문장들을 잘 기억하고 싶어 열심히 쓰기도 한다.      


요즘은《알쓸신잡》이나 《대화의 희열》같이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대세다.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앉아 하나의 사건이나 책, 영화와 같은 공통의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나눈다. 프로그램에 섭외된 비연예인 출연자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듯 대화를 이어가는 상대에게 고도로 집중한다. 정말 대화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품격이 넘친다.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나아가 타인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방구석 1열의 나는 ‘경청’의 방식으로 그 대화에 함께 참여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갸우뚱하기도 한다.      


직간접적으로 나눈 여러 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은 대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라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잘 알아듣기 위해서 나는 모국어로 나누는 대화를 영어 듣기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선택된 단어와 구현된 문장에 집중했다. 다양한 세대 많은 사람의 인생 경험과 감정 변화의 데이터가 내게 축적되고 있다. 대화에서는 생각이 정돈된 문장이 아닌 살아있는 날 것의 말들이 오고 간다. 유쾌한 이야기에서부터 가슴 저린 사연, 공감되는 불안과 걱정,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날의 풍경, 숨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밀려드는 후회까지 모두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려오는 것은 다양했다. 마음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볼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이 없다면 당연히 들리지도 않는다. 유유히 흐르는 대화가 내 인생에 무언가 파동을 주거나 의미로 와닿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듣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무엇을 묻느냐?’이다. 즉, 좋은 질문은 좋은 대화를 만드는 초석이 된다. 질문은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하게 한다. 상대에게 질문한다는 것은 곧 관심의 표현이자 좋은 자극, 넛지가 된다. 좋은 질문은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더 매끄럽고 풍성하게 만들며, 사고를 확장시키기도 하고, 마음 깊숙한 구석을 후벼놓기도 한다.      


말하기는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잘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매일의 말하기가 성공일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에 품고 있던 내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 상대로부터 공감의 눈빛을 받게 되면 말하기가 즐거워지고 가슴이 벅찰 때도 있다. 말하고 들으면 사물과 세상을 보는 내 관점과 다른 타인의 생각과 태도를 만나게 되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고의 틀이 넓어지고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통해 일종의 치유와 발전을 경험한다. 내겐 그러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 바로 교무실 옆 원탁 테이블이다.     


최근에 나는 여러 대화의 주제 속에서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혹시 선생님의 꿈은 뭐예요?”

“꿈이 뭐냐니요?”

“그냥 꿈이요. 막연해도 좋고 구체적이어도 좋고 그냥 하고 싶은 것, 마음에 품어둔 꿈같은 거 말이에요.” 

대다수의 반응은 이러했다. 

‘당황스럽다. 이 나이에 무슨 꿈이야. 학창 시절, 청춘을 다 지나왔는데, 그런데 이거 꿈이 뭐냐고 누군가 물으니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다. 목표나 계획이 아닌, 그냥 꿈, 나이가 들어도 삶에는 그런 것이 꼭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아, 나의 꿈은 무엇일까?’      


봄날의 원탁 대화는 갑자기 나의 꿈 발표회가 되었다. 시간을 달리하여 같은 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 모두는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로망을 꺼내어 들려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뚜렷하고 분명한 목표를 향해 성큼성큼 달려가고 있고, 또 누군가는 안온한 지금의 삶이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또 누군가는 뚱딴지같은 이 질문 때문에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났다. 그들이 다양하게 꿈꾸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으며 이내 곧 그들의 꿈이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 또 한편 내 꿈속에 그들의 꿈도 깃들기 시작해서 내 마음은 부풀기 시작했다. ‘꿈 부자’가 된 것이다. 그 후 나는 이따금 생각에 잠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해내고 싶은지, 무엇과 닮고 싶은지. 내 꿈은 무엇인지.      



8년을 몸담았던 그 학교의 원탁을 떠나 나는 새로운 학교로 이동했다. 인생에 많은 변수가 찾아왔고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의 금요일 오후였다. 지역 명사로 초청된 김영하 작가님을 보기 위해 나는 퇴근을 서둘렀다. 시간 맞춰 도착한 강연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문학과 예술에 대한 정서가 맞는 서로에 대한 반가움과 강연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내 ‘소통과 공감 그리고 이야기’라는 주제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의 아까운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가능한 한 다 메모했다. 메모장에 마지막 문장을 쓰고 시간을 보았다. 예정대로 딱 90분이 흐른 후였다. ‘사람이 어떻게 수많은 청중과 밀고 당기며 저리도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 나는 한참이나 메모를 매만져 내가 들었던 그의 이야기를 다듬었다.      



책 읽기는 마음의 진폭이 크다. 독서가는 책 속에서 모험을 즐긴다. 읽다 보면 책은 스스로 말을 걸어오고 변화를 요구하고 개인주의적으로 생각을 바꾸기에 독서는 고독하고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재밌는 것이다.      

완벽한 발명품인 종이책은 아날로그적이기에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 읽을 수 있고 그렇게 습득한 정보는 강렬한 경험이 되어 더 오래 기억으로 남는다. 시간에 의해 기억은 사라지지만 경험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따라서 인생에 예상치 못한 문제 상황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간 책 속의 다양한 경험으로 이것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한 인물로, 자신은 복잡한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소설은 인간이 복잡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타인이 처한 저마다의 상황과 다양한 동기로 다양한 행동을 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복잡한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는다.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고, 복잡한 (어쩌면 미친)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 또한 드러내지 못하고 쌓여간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등장인물의 필터를 통해 대면하고 그때의 회피하고 싶은 자기 모습을 만난다. 이때 우리는 좋은 소설가가 쓴 용감한 문장에서 자기 내면과 감정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다양한 면을 적극 수용하여 과거의 나와 통합하여야 한다.      


결국 소설(이야기)을 읽는다는 것은 스스로와 마주하는 과정이고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공감은 ‘능력’이라는 점이다. 공감 능력은 지폐와도 같아서 일정량을 소모하면 바닥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장 먼저 자신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보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관계인 상대에게 이 능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필요한 상황에 불충분하지 않도록 남용에 주의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책을 통해서든 삶을 통해서든 고유의 경험이 쌓인다. 인간은 각자가 경험해 만든 지식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신이 읽은 얼마 되지 않은 책과 실질적 경험으로 벽을 세우고 자기만의 방을 만들 때 우리는 이 공간에 갇히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대화는 중요하다. 바람과 햇살이 통하는 창과 드나듦이 가능한 문도 필요하다. 강연이 끝나고 내 가슴에는 무언가 가득 채워졌다.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로 시공간을 가득 채우고, 훗날 꼭 이 숲에서 더 울창해진 우리가 되어 다시 만나자 약속한 김영하 작가님께 있는 힘껏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도, 남의 말을 들을 때에도 어떻게 하면 더 깊이 온 감각을 동원해 느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는데 소통에 대해 한참을 말씀하신 작가님이 질문할 기회를 주시지 않다니 아쉬움의 파도가 몰아쳤다. 그럼에도 생각의 결이 같다면 그저 듣기만 해도 깊은 대화를 나눈 것처럼 서로 통하고, 편한 숨을 쉬듯 좋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시간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날 오후는 나의 카이로스였고 숨구멍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나는 학교 탕비실에 떨어져 가는 원두를 사러 길을 나섰다. 이틀 전에 마셨던 핸드드립의 여운이 아직도 입가를 맴돌았고, 갑자기 내린 비로 쌀랑해진 날씨에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로스터리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머리 위에 두 손을 가리고 몇 걸음 뛰기에 충분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카페의 전구색을 보고 툭툭 뛰어가 문을 열려는 찰나, 급히 써서 문에 붙인 쪽지가 보였다.      


‘금일 개인 사정으로 영업을 쉽니다.’        


갓 볶은 고소한 원두 향이 골목 가득 퍼지는 가운데 사장님께서 골똘히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쉰다면서 가게에 있잖아?’      

“사장님, 원두 사러 왔는데, 혹시 원두 구매도 안 되나요?”

“아, 원두는 구매 가능하세요. 오늘 두 가지 있는데 향 맡아보시고 더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세요.” 

“ 아, 저는 왼쪽 원두 향이 더 좋아요. 이걸로 할게요. 그런데, 사장님 이렇게 나와서 일하시는데 오늘 왜 커피가 안 되는 거예요?”

“아, 그게... 저 서울에 정말 유명한 로스터리 카페가 있거든요. 일주일에 딱 하루, 그것도 한 시간만 여는 곳이에요. 제가 커피 공부하고 싶어서 그 집 오픈 시간보다 분명 일찍 갔는데도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 기다렸어요.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을 마셨는데 그 풍미에 깜짝 놀랐어요. ‘제가 로스팅한 원두가 아직 부족하구나. 나 아직 멀었다.’그런 생각이 들어서 통영에 내려오자마자 매장에 나와서 그때부터 계속 원두를 볶았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아침 7 시인 거예요. 그래서 오늘 하루 쉬었어요.”

“어머, 저는 수요일에 마셨던 커피 맛이 생각나서 집에 가려다가 카페에 들른걸요. 이렇게 연구하시면 결국 여기도 일주일에 하루 딱 두 시간만 여는 카페가 되는 거 아니에요?” 

“아유... 무슨... 그렇게 되려면 한참 멀었어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오늘 혹시 커피 하셨어요? 저희 매장에서 원두 구매하시면 제가 서비스로 커피 한 잔 내려드리는데, 괜찮으세요?” 

“어머, 비 내리는데 지금 커피 한 모금 마시면 너무 좋죠.” 

“그럼, 구매하신 원두 말고 다른 걸로 제가 맛있게 내려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렇게 사장님이 새로 밤새 연구한 원두로 내려주시는 커피를 기다리게 되었다. 사장님의 드립 포트에서 일정하게 흐르는 물줄기가 원두에 닿자 풍성한 거품이 부풀며 진한 향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생겼다. 

“사장님, 질문 하나 해도 돼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사장님의 숨구멍이 뭐예요?”

“네? 숨구멍이 뭐예요? 그런 질문은 처음 들어서요.”  

“저도 어디선가 들었는데요. 사는 게 숨이 찰 때가 있잖아요. 그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서 하면 재밌고, 시간도 빨리 가는 그런 일이 하나씩 있어야 한 대요. 그게 영혼의 숨구멍이라던데, 사장님의 숨구멍이 뭘까 하고요.” 

사장님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시다가 답을 주셨다.  

“저한테 숨구멍은 커피 내리는 거예요. 커피 할 때 제가 제일 편안하고 좋거든요.”

“어머나, 저 지금 하는 일과 숨구멍이 다 같은 분께서 내려주시는 커피를 마시는 건가요? 너무 영광입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손님. 저 아직 너무 부족하고 배울 것이 한참 많이 남았어요.”

“이렇게 겸손함까지 갖추시다니...”

나는 사장님께서 건네는 커피를 받자마자 한 모금 마셨다. 종이컵에 담겨 있어도 정성껏 갓 내린 커피가 주는 커피의 위안은 대단했다.

“사장님, 제가 커피를 깊이 잘 모르지만 이 커피도 제겐 충분히 훌륭하고 대단해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서울 다녀오고 좀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너무 힘이 됐어요.” 

“아, 실례지만 사장님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요즘은 나이가 자꾸 헷갈리는데... 저 스물일곱이요. 스물일곱이 맞아요.”

사장님의 나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서 내심 놀랐다. 지난 20대의 내 모습이 떠오르며 그처럼 내가 하는 일에 사랑하고 열정이 가득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그의 젊음과 낙천과 패기와 열정이 부러웠다. 일을 대하는 그의 멋진 태도에 반한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엄지를 척하고 들어 올렸다.  


“지금도 충분하시지만 이렇게 하시면 10년이고 20년이고 제가 더 맛있어지는 커피를 계속 마실 수 있잖아요. 우리 동네에 사장님 카페가 있어서 너무 좋네요. 제가 자주 올 테니까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말고 여기서 쭉 커피 내려주세요. 이 커피도 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구매한 원두 1kg을 챙겨 문을 나서려던 순간 사장님께서 나를 붙잡으시더니 다시 1kg 같아 보이는 다른 원두를 하나 더 챙겨주셨다. 

“이거 제가 밤새 실험한 원두인데 한번 맛보세요.” 

“이것도 파는 거 아니에요? 저를 주시면 어떻게 해요?”

“아니에요. 이것도 꼭 내려 드셔 보시고 다음에 오실 때 어떠셨는지 말씀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렇게 원두 팔아 남는 것도 없겠지만 덕분에 너무 행복한 밤이에요.”  

             

일면식만 있을 뿐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사장님과 이렇게 서로가 부풀 수 있는 말을 주고받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비가 내리는데도 눈앞에 무지개가 펼쳐진 것 같았다. 그날 밤 우리의 대화는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고, 떠올리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나눌수록 커지는 꿈의 대화였다.  


 

읽고 쓰는 것은 결국 자기 것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말하고 듣기는 상대에게 집중하고 서로를 돌보는 과정이 아닐까? 말 한마디는 참 쉽고 또 참 어렵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잘 돌볼 수 있는 편안한 대화가 필요하다. 나는 서로에게‘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좋은 대화의 상대가 되고 힘든 일상의 숨구멍이 되고 싶다. 원탁의 대화에서부터 다시 탐색하기 시작한 나의 꿈은 이제 분명해졌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질문을 하고, 상대의 반짝이는 답을 내 목소리로 다시 들려주며 이런 무지갯빛의 대화를 유유히 흐르게 하고 싶다. 나는 계속해서 주변의 사람들과 꿈의 대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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