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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달빛 Aug 16. 2016

<부산행> 정말 '여성'은 민폐인가?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당신은 이미 봤겠지만... 혹시나 해서요 :)


무서운 영화를 잘 못 본다. 그럼에도 <부산행>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그렸는지 직접 보고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또 다른 이유는 공유 감상이다(공유 슈트 입혀줘서 고마워요. 감독님).

공유는 옳아요.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영화 속 여성들을 '민폐' 캐릭터라고 비판했다. 


영화 속 여성들은 남성이 보호해줘야만 살 수 있으며 결국 그녀들을 구하려다 (남성) 주인공들이 죽었다는 이유다. 과연 그럴까?

영화를 실제로 보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을 민폐 캐릭터로 해석하는 행위야말로 감독의 의도를 야무지게 반대로 해석한 것으로 생각했다. 감독은 여성 캐릭터를 통해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되게 공들여 설정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영화 속 여성들은 석우의 딸 수안, 임산부 성경, 고등학생 진희다(할머니 두 분을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유의미한 캐릭터로 해석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여 제외했다. 이들은 오히려 세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영화에서 노인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할아버지를 내세우는 것과는 확실히 결이 다른 것 같다).


이 세 명의 여성이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분명 남성들의 방식과 다르며 수동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물리적인 힘이 필요한 순간에는 확실히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비'로 감염되어 가는 공간에서 여성들은 다른 방식, 주체적인 방식으로 그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직선으로 내닫는 좀비들의 세계에서 그녀들은 곡선으로, 둥글게 함께 싸우며 공동체를 구한다.


예를 들면, 좀비들을 피해 도망가는 순간에도 수안은 할머니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 석우는 "그럴 땐 너만 챙기라." 충고하지만 수안은 대답하지 않는다. 노숙자를 향해서 "공부 안 하면 너도 저렇게 된다"며 훈계하는 용석(이 개새끼)에게도 수안은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랬어요"라며 또박또박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노숙자를 버리고 가자는 남편을 설득하여 구하도록 한 인물도 임산부 성경이다. '좀비들의 세계관'으로 가득했던 '부산행 15번째 칸'에서 용석에게 대항하다 그 세계를 박차고 나오는 유일한 인물도 여성인 진희다. 결국, 그녀들은 물리적으로는 약한 존재들이었지만 가장 강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기적이었던 석우가 공동체적인 존재로, 서로 힘을 겨루던 석우와 상화가 협력하는 존재로 변하도록 이끌며 '좀비들의 세계'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는다. 게다가 첫 장면에서 '좀비'로 취급되었던 노숙자는 그녀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가 나중에는 숭고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감독은 왜 '여성'과 '아이'를 생존자로 설정했을까?

이 영화는 기이하게 인과를 따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좀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질문하지 않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도모하지 않는다. 오직 각자도생하여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마치 빛과 소리에만 반응하는 좀비처럼.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진짜 좀비의 존재가 아니라, 좀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부산행 15번째 칸' 사람들의 존재 그 자체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의 가장 큰 민폐는 석우와 용석이다. 나중에 밝혀진 이 바이러스의 원인은 펀드 매니저인 석우가 작전을 세워 억지로 살린 회사에서 출발했으며, 용석은 '모두를 죽여 나만 살겠다'는 극강의 이기주의를 조성한다. 용석이야 말로 민폐 중 민폐인데 그런 용석을 '민폐 남성' 캐릭터로 여기지 않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라니를 치고 "재수 없다"며 유유히 사라진 그 트럭 운전사도 민폐 캐릭터다.

이 새끼가 진짜 민폐
여성을 민폐 캐릭터로 보는 행위는 오히려 지극히 남성 중심적 시각이다. 

남성의 세계에서 여성은 성녀거나 창녀로 존재하듯, 재난 영화에서 여성은 희생자거나, 전사로 존재한다(그래야만 한다). 즉, 남성의 방식으로 싸워야 민폐에서 벗어나 비로소 사람 취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세계관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렇다면 전사로 존재하면 칭찬받을 수 있나? 그것도 아니다. <비밀은 없다>에서 연홍은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설치고, 무례하고, 독하다. '엄마'라는 이미지, '여성'이라는 남성사회의 기대를 배반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정의로운 응징을 한다. 결국, 연홍이 옳았다. 하지만 영화는 외면 당했다. 딸을 찾기 위해 기꺼이 '전사'가 된 그녀를 '민폐' 혹은 '불편한 존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 저랬으면 좋겠다, 이건 좀 아니지 않냐는 시선... 가만있어도 뭐라 하고 강하게 싸워도 지랄하는 그 편견에서 연약할지언정 자기다운 싸움을 한 여성 캐릭터를 꽤 진지하게 다뤄서 기특했다.


결국 최후의 생존자는 여성과 아이였다. 감독은 왜 이들을 생존자로 설정했을까? 한 번쯤 고민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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