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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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쫓기는 상황에 놓였을 때 공포를 느낀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고, 힘껏 도망가야 하는 상황을 무서워해서 어릴 때 '얼음땡' 놀이를 하면 늘 '얼음'이었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가 <부산행>을 보며 깨달았다. 그래서 <부산행>이 나에겐 '부산헬'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터널>은 어떨까?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부산행이 '쫓기는' 영화라면 <터널>은 '갇히는' 영화다. 쫓기는 게 무서울까, 갇히는 게 무서울까? 둘 다 너무 공포스럽지만 영화를 보며 갇히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해버렸다. 물론, 이 영화가 갇힌 상황을 극한으로 몰고 가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부산행>과 <터널>의 또 다른 면은 '외부'의 존재다. <부산행> 공간 자체는 기차에서 기차역, 기차역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 속도감 있게 바뀌지만 어디든 '좀비의 세계'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관객은 화면에 갇혀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을 고스란히 함께 겪을 수밖에 없다. 반면 <터널>은 비록 갇힌 세계를 보여주지만 터널 밖 세상, 점점 넓어지는 활동 공간 등을 보여주며 외부자의 시선을 유지하도록 틈을 준다. 그러므로 내 눈에는 <부산행>이 오히려 '사람을 가두는 영화'로 보였다. 이런 차이는 <터널>이 <부산행>보다는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진 영화이기에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떠올렸다'라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떠올렸든 이 영화로 '세월호'를 소환하기에는 현실이 더 '지옥'이며 영화는 오히려 '낭만'에 가깝다. 영화 속 국가(사회)는 비록 무능했지만 악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신속하게 대책 본부를 꾸려 구조 활동을 벌였고, 소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언론과 정부의 행태는 한심했지만 모든 사회가 가진 속성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정우의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된 이후 인근 터널 공사 재개를 두고 전개된 상황은 우리 중 누구라도 "나는 그런 선택을 지지하지 않을 거야"라고 자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저 안에 사람이 있다"는 명제는 눈앞의 현실에 늘 배반을 당하는 법이고, 기적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터널>은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조금 뒷심이 딸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를 떠올리기에는 부족한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정수(하정우)의 생환의 의미에 비해 또 다른 생존자였던 미나(남지현)의 죽음은 휘발되고, 무능한 사회를 감각적으로 꼬집기는 했지만 덜 아팠다. 그리고 다소 낭만적인 결말은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만큼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무했다.
그럼에도 영화 곳곳에서 말하고 있는 '시스템'에 관한 냉소는 꽤 의미 있었다. 이를테면 정우가 첫 신고를 하던 장면이나, 구조대원이 '매뉴얼'을 펼치니 '1. 붕괴란 무엇인가?'가 적혀있는 장면이나(이 부분에서 혼자 빵 터졌다), 설계도와 현실이 다른 장면 등은 시스템이 엉망인 사회에서는 우리는 결국 느닷없이 매몰되거나 꼼짝없이 죽고, 우연히 살아남을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시스템이 붕괴된 무능한 사회에서 정우가 생환할 수 있었던 이유가 결정을 어겨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한 사람,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경적을 울린 당사자였다는 사실은 희망이 아니라 차라리 진정한 붕괴의 징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