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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달빛 Jul 18. 2017

<쇼코의 미소>

드라마 덕후로서 '1일 1 드라마'를 주장하며 실천하던 내 일상이 격변한 적이 있다. "2016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그 건조한 문장을 내 속에서 끄집어내기까지 뉴스를 보고, 또 봤다. 마치 이렇게 정성 들여 뉴스를 보면 돌아오지 않는 그들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일상을 멈추고, 뉴스에 집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허기가 느껴졌다. 뉴스는 사실을 나열하여 진실의 퍼즐을 맞추는 데 필요하지만, 차마 언어화되지 못한 고통은 누가 위로해줄까 가늠할 길이 없어 절망했다. 그때 나는 인간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직시하는 문학을 읽으며 비로소 ‘세월’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슬픔이 슬픔을 구원한다'는 말에 견주어 '문학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을 마음에 새겼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간도 누군가의 이야기, 즉 '서사'가 건네는 위로가 필요한 시절 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의미로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며 지난해 읽던 <쇼코의 미소>를 다시 읽었다. 2014년 동명의 중편 소설로 젊은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한 최은영의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에서 <비밀>에 이르기까지 일곱 편의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언어는 상처받은 자들의 위로와 연대, 기억이다. 이 책의 화자는 모두 곧 부서질 것 같은 여성이며, 사회나 가정으로부터 소외되거나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당사자다. 그런 그들이 또 다른 이들을 만나 서로의 상처를 응시하고,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애쓰다가 그러지 못해 미안해하며 지난 시절을 기억한다. 그 범위도 다양하다. 일본 아이 쇼코, 죽어가는 할아버지, 베트남 응웬 아줌마 가족, 순애 언니, 케냐 수의사 한지, 노래패 선배 미진, ‘미카엘라’의 가족들, 지민과 말자 할머니… 이런 개인들의 연대는 다시 베트남 전쟁, 인혁당 사건, 세월호라는 현대사와 만나 일본, 베트남, 케냐, 러시아 등 국경을 뛰어넘어 확장되고 공유된다.


인간은 누구나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되는 불가피한 현실 아래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과정으로서의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것에 한없이 서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봄이 되면 세월호가 어제 일처럼 아프고, 오랜 일처럼 잊고 사는 것 같아 미안하고, ‘고통’으로 기억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 버겁고 슬프다. 그럴 때 슬쩍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마치 졸졸졸 흐르는 수도원 근처 시냇물 앞 의자에 앉아 한지의 어깨에 기댄 영주처럼 그렇게 소박하지만 단단한 위로로 우리를 붙들어준다. 우리는 슬프지만 한없이 가라앉지는 않은, 고통스럽지만 불쌍하지는 않은, 약하지만 무너지지는 않은 상처 입은 위로자들의 이야기에 기꺼이 전염되어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이 이 글에 '영업'당해 읽고 그 기운을 얻길 바란다.


만약 이 책을 읽게 되면 맨 끝에 수줍게 자리한 작가의 말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최은영은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 데려가서 그 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겁이 많은데도 용기를 내줘서,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고 이야기하며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마음을 건넨다. 이 책은 이런 그의 성실하고 착한 기운 그 자체다.


<복음과상황> 2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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