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1985년 8월 22일
김, 태어남과 동시에 죽다
바다 밑에서 땅 위로
땅 위에서 하늘 아래로
하늘 아래에서 이슬 사이로
(묵념)
- 깨진 채 발견된 노트의 한 조각
2015년 8월 22일 김의 일기
언제나 계절의 소품처럼 매달려있던 태양이
유난히 상기된 어느 오후에 김을 마주쳤다
맨처음 잊혀질 시간들로 들끓던 광장
얕은 잠들이 서성이며 백야를 기다리던 계단
암막으로 짠 검소하고 긴 드레스에
온 우주가 깃든 얼굴을 하고
김은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세계를 향해
혹은 세계의 다른 이름을 향해
- 폐허에서 핀 낙엽 한 귀퉁이
2015년 8월 22일 김의 일기
사람들이 각자의 표징을 등지고 전진하는 동안
김은 범람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끌어안고 뒤로 걸었다
신기루 속으로 퇴화해가는 김의 순간과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이지러지는 사람들의 영원
그 모든 한 폭의 과거
-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 뒷면
2015년 8월 22일
심연의 차가운 정도
이슬 사이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묵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