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Nov 08. 2023

스페인에서 K pop 공연을 보다

아이돌 oneus 공연을 보며

말로만 들어보고 영상으로만 보던 케이팝의 열기.
원어스 Oneus의 월드 투어공연 통역 기회를 얻어 두 눈과 온몸으로 생생히 체험했습니다. 피아노 콘서트, 오페라, 합창 등 클래식에만 익숙한 저에게 이번 공연은 문화 충격이자 체험 그 자체였어요.


1. 하나의 공연, 수십 명의 스탭

공연 시작은 밤 9시부 터지만 준비는 아침 10시 반부터 시작했습니다. 저를 포함 세 명의 통역사, 한국과 영국, 스페인에서 온 공연 관계자들. 줄잡아 삼사십은 되었죠.

고막 터지는 건 기본이고, 장까지 스피커 볼륨에 두들겨 맞으며 소화되고, 의자에 앉으니 진동 마사지받는 느낌. 리허설의 충격이 이 정도입니다.

공연장이 그리 크지 않은데도 이 정도면, 귀에 익은 아티스트의 공연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길이 들어가는 걸까요. 콘서트에서 내뿜는 에너지와 열기는 얼마나 어마무시한 걸까요. 무얼 상상해도 그 이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실감했습니다.

완성도 높은 공연은 그 하나로 작품이 되지요.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수많은 품이 들어가고, 동일한 목표를 위해 같이 뛰었기에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2. 충성도 높은 팬들의 무한 사랑

공연 시작은 밤 9시, 오픈은 오후 7시부터. 리허설 공연은 오후 5시였습니다. 사실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끼니도 거른 채.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영상 2도였습니다. 하루아침에 10도 이상 뚝 떨어졌어요) 아랑곳 않고 공연장으로 달려와 서로 멤버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오페라를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7시 시작을 앞두고 오후 3시부터 가본 적이 없어요. 제가 과연 클래식 마니아라 할 자격이 있는가, 반성합니다.

20분 남짓 VIP 리허설 시간만으로도 이들은 좋아서 쓰러집니다. 계단에서 뛰어내려오다 넘어지고 자빠져도 아랑곳 않고 오직 옵하 하나만 보고 달려갑니다.

짧은 리허설 후 다시 공연 시작까지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해도 이들에겐 3분에 불과합니다. 공연 전부터 이들은 흥분과 기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어요.

여자친구를 사랑해 아내로 만났고, 아내를 사랑해 아이를 셋이나 가졌지만, 글쎄요, 왜 가족에게 미안해지는 걸까요. 피 끓는 열정은 사라졌어도 군불 지피는 꾸준함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피 끓는 열정의 사랑이 무엇인지부터 해봐야 됩니다. 아이고, 전 양심의 가책받아 더는 못 쓰겠네요.


3. 떼창, 우리도 합니다!

떼창은 음주가무에 능한 우리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웬걸요. 여기 친구들도 전부 부릅니다. 공연 시작도 전에 자막도 없는데 노래 가사를 죄다 외워서 목청 높여 부릅니다. 여긴 분명 마드릿이고 스페인인데, 한국어 떼창을 듣다니요. K 아재인 제가 다 뿌듯해지고 울컥할 정도예요.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하길래 우리말을 다 외워서 부르는 걸까. 신나서 소리 지르는 저들의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관심이고 애정이죠. 미치도록 사랑해서 낳은 결실인 겁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들을 두고 누가 철딱서니 없는 학생들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요.

이들에게 공연의 시작은 9시가 아니었습니다.
월드투어 공연 광고만 있는 영상 앞에서 다 같이 떼창을 부를 때부터였습니다.
아니, 공연 시작 4시간 전부터 가진 리허설을 보려고 몰려들었을 때부터 터였어요.
아니 아니, 아침 추위에 오그라드는 양손 잠바에 푹 찔러 넣고 기다리고 있었을 때부터 시작한 거였습니다.

아이돌 공연이라면 철부지 학생들만의 전유물로 알았어요. 면면을 보니 학생의 부모님, 10대 때부터 엑소며 샤이니를 꾸준히 좋아해서 30대가 된 지금까지 그때 친구들과 같이 온 회사원들, 젊음을 느끼고 싶어 온 호호백발의 여사님까지. 엄청난 세대를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태어나 처음 와 본 케이팝 콘서트에서 사랑의 의미를 재정의합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해 보셨나요, 미치도록 말이죠. 함부로 차지 말아야 할 건 연탄재만이 아니었어요. 시간, 마음, 물질 다 쏟아서 사랑한 적이 얼마나 있었나 돌아봅니다.


모두가 난리난 앵콜 공연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 미슐랭 식당 체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