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재모 Dec 24. 2023

세로 화면비율에 관한 이론적 고찰(1/2)

세로 화면 증후군(Vertical Video Syndrome; VVS)

숏폼 콘텐츠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만큼, 그에 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국내 연구들은 주로 경제학적 관점이나 시장 현황, 광고효과 분석, 만족도 등의 주제로 집중되어 있고, 영상학 관점에서 콘텐츠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는 많지 않은 편이다.


숏폼 콘텐츠의 형식적 특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영상의 화면비율이 기존의 가로 화면비율이 아니라 세로 화면비율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숏폼 콘텐츠를 주로 시청하는 단말기가 세로 화면비율의 스마트폰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 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개인용 휴대전화이다.  전화기는 통화를 할 때 귀에서 입까지 연결하도록 긴 모양이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휴대폰은 세로 방향이었다.  

인간의 신체에서 손은 세로 형태를 쉽게 쥘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물컵, TV리모컨, 라이터 등 많은 일상생활의 많은 물건들은 세로로 잡기 편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세로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전체 시간 중, 세로로 잡고 있는 시간의 비중이 94%라고 한다(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2018)  


인간의 시각기관은 가로 방향으로 시야 범위가 넓고, 기존의 시각적 미디어가 모두 가로방향으로 넓은 화면이기 때문에 사람은 수평의 가로 화면비율에 익숙하다.  

최초의 영화가 등장한 이후, 극장용 영화와 텔레비전의 화면비율은 가로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사람들은 기억하는 범위까지 어린 시절부터 이런 가로 화면비율에 길들여져 왔다.  

또한 HDTV와 UHDTV 개발 연구에서, 수평 시야 범위를 넓힐수록 몰입감이 증가한다는 인지심리학적인 실험연구 결과를 본다면(Sugawara 외, 2008; 구재모, 2022), 세로 화면비율은 전혀 인체공학적이지 않은 이상한 화면비율이다.  

전통적인 영상제작 교육을 받았거나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세로 화면비율은 이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일이 일상생활이 되면서 모순이 발생한다.  

작은 스마트폰에서 영상을 전체 화면으로 크게 보려면 스마트폰을 옆으로 돌려야 하는데, 사람들이 이 행동을 꺼려한다는 것이다.  

화면을 90도 옆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짧은 동영상의 앞부분 몇 초를 놓치게 되고, 때로는 화면의 세로방향 잠금을 풀고 동영상을 다시 처음부터 재생하게 해야 하는 것이 성가신 일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볼 때만큼은 세로방향 그대로 보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고, 실제로 세로방향 영상의 조회수와 끝까지 시청하는 충성률이 가로방향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이유와 조사 결과를 근거로 스마트폰의 앱, 모바일 웹페이지, 모바일 광고 영상 등은 거의 모두 세로 화면비율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온라인에서 이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세로 화면 증후군(Vertical Video Syndrome; VVS)’이라는 용어로 풍자·비판하는 동영상이 게시되면서 찬반양론으로 대립하기도 했다.


VVS에 관한 풍자(비판) 동영상의 장면


인형극 유튜브 채널 ‘글러브 앤 부츠(Glove and Boots)’는 2012년 세로로 촬영하는 경향을 ‘세로 화면 증후군(Vertical Video Syndrome; VVS)’이라는 용어로 풍자·비판하는 동영상을 게시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이 게시물의 댓글에서 많은 사람들은 세로 화면비율의 영상을 조롱했고, 세로로 촬영하는 것은 ‘아마추어의 실수’이고, 심지어 “세로 동영상 촬영을 중단하라(STOP RECORDING VERTICAL VIDEOS)”, “세로로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끔찍한 세상을 만들고 있으며, 반드시 멈춰야 한다!(MUST. BE. STOPPED!)”라는 댓글도 있었다.  


그리고 이 논쟁은 세로 화면비율에 관한 해외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Ulenius, 2018; Menotti, 2019).  하지만 국내에서 이 논쟁 사례를 언급하는 선행 연구들은 없었다.  그만큼 국내 미디어 업계나 학계에서는 어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했을 때, (VR이나 메타버스에서 처럼) 어떤 의구심이나 비판적 고찰 또는 심층 연구 없이, 그저 그것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에만 무비판적인 관심만 가져온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볼 필요도 있다.


VVS 논쟁은 세로 화면비율을 사용화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그룹과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그룹 간의 대립하는 의견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이 새로운 포맷을 대할 때 어떤 시각과 태도를 취할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문제를 되돌아보게 해 준 계기가 되었고, 숏폼 영상 콘텐츠의 적절한 제작방법론을 도출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1. 부르디외의 담론을 통한 차별화

먼저 VVS 논쟁을 야기했던 그룹은, 세로 화면은 가로 시야각이 제한되어 있어서 풍경이나 여러 명의 사람을 담는데 제약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극장 스크린, TV, 컴퓨터 모니터 같은 기존 미디어의 디바이스들은 가로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영상을 세로 화면에 담기 위해서는 위아래를 잘라 내거나 또는 좌우측에 화면의 2/3 가량을 검은색으로 덮어야만 한다.  그래서 가로 화면비율이 인간의 시각 경험 체계에 부합하고, 세로 화면비율은 ‘틀린 것’이며 그저 ‘아마추어들이 찍는 형식’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TV 뉴스 제작 분야의 전현직 종사자 15명들과의 심층면접을 통한 질적 연구를 했던 Canella(2018)의 연구에서 이러한 시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연구는 전문가들이 세로형 비디오를 ‘아마추어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면서 자신의 작업(또는 직업)을 전문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 어떤 담론을 펼치는지에 대한 질적 연구이다.  


Canella(2018)는 ‘보는 것’과 ‘지식’을 통해서 ‘사회적 자본’이 형성된다고 한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의 이론적 개념을 적용해서, 인터뷰 대상자들(뉴스 제작 업계의 전현직 종사자들)이 자신들 직업의 전문성과 지식을 드러내는 점을 지적했다.  그들은 구도, 조명, 미적 완결성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상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지위를 부여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세로 방향의 영상을 만드는(영상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아마추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전현직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프로페셔널’ 한 것으로 보고, 일반인들의 세로형 비디오를 ‘아마추어’스러운 것으로 규정하기 위해서 미적 원리에 대한 자신들의 학습된 지식, 훈련, 업무 경험을 강조한다고 했다.  

또한 Macek(2013)을 인용하면서, 일반인(아마추어)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동영상 기능과 숏폼 콘텐츠 플랫폼 앱들은 미적 원칙, 저널리즘의 윤리 등을 무시하는 습관을 만들어낸다고 하면서,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와이드 스크린 디스플레이를 방송 업계의 표준으로 옹호한다고 했다.  

즉 종사자들은 (부르디외가 말한) 학습된 예술적 코드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스마트폰과 모바일 앱으로 만든 영상으로 새로운 외부의 압력을 행사하며 전문 분야를 위협한다고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Canella(2018)는 (VVS 논쟁을 촉발한) 그런 시각을 잘 드러내는 주요 인터뷰들을 다음과 같이 발췌했다.


“나는 오랜 경험을 가진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나 뒷마당에서 강아지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촬영할 때에도 가로로 촬영한다.”

“세로 비디오는 일반인들이 쓰는 스타일이다.  건망증이 있거나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면 전문가들은 세로로 촬영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촬영하고 있다고 지적해 준다.”

“세로로 촬영하는 친구들을 교정해 준 적이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어떻게 잡는지에 따라 영상 제작 경험과 지식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

“블로거나 인터넷 신문 기자들이 세로로 촬영하는 것을 보면 ‘음, 저 사람들은 진짜 촬영기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추어라는걸 바로 알 수 있다.”

“세로로 만든 영상을 보면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촬영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다면 (스마트폰으로 찍더라도) 항상 옆으로 돌려서 가로로 촬영한다.”

“스마트폰은 두 손으로 잡는 것보다 (한 손으로) 세로로 잡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세로로 촬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게으른 사람들이 촬영하는 방식이다.”

“세로 영상을 TV용으로 만들려면 프레임을 자르거나 배경을 흐리게 처리하는 것과 같은 추가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더 소비하게 된다.  그냥 가로로 찍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특정 시청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세로 영상을 촬영하게 된다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다.  그날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말 기분이 나쁠 것 같다(웃음).”

“회사가 디지털 전략을 추구하겠지만, 여전히 방송 뉴스가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보다는 황금 시간대 TV 광고에 투자한다.”


이러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Canella(2018)의 연구는 전현직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프로페셔널로 구분함과 동시에 세로 비디오를 아마추어로 분류하기 위해 사용하는 담론을 살펴보았고, 그 결과로 종사자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현업에서 강화된 지식으로 ‘개인과 집단의 관행’을 유지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것을 브루디외는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ment of taste)』(1984)에서 ‘하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2. 세로 영화 선언문(Vertical Cinema Manifesto)

VVS의 풍자와 조롱에 대한 반발로, 세로  화면비율의 영상 방식을 옹호하는 그룹도 생겨났다.  

그들은, 영화 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가로 비율의 영상이 인간의 시각 형식과 일치하기 때문에 자연스럽다는 주장의 대부분은 무시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 Ulenius (2018)는 영상 기술의 개발과 발전 과정을 미디어 고고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세로 화면비율의 영상 방식에 대한 역사적인 억압이 있어왔다고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근거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Menotti(2019)의 연구에서는 세로 비율의 동영상 제작 애호가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살펴볼 사례로, 크리스토프 가이젤(Christoph Geiseler, 1981~) 감독은 ‘즉흥성: 세로형 동영상은 iPad 사용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라는 제목의 칼럼과 함께 인도에서의 개인 여행기로 가장해 만든 다큐멘터리 <커리 파워(Curry Power)>(2012)를 공개했다.  이 세로 화면비율의 영화는 iPad 사용자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며, 세로 형식이 일상을 기록하는데 어떻게 잘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활용됐다.(Improvisation: Vertical Videos offer iPad Users a Unique Experience. Huffpost, 25 May 2012.; online available at https://url.kr/es25nb)


세로 영화 선언문(Vertical Cinema Manifesto, 2013)의 장면들


미리암 로스(Miriam Ross) 교수와 매디 글렌(Maddy Glen) 교수는 2013년에 (학술 연구의 일환으로) VVS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세로 영화 선언문(Vertical Cinema Manifesto)’이라는 비디오를 제작했다.

그들은 가로 화면비율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억압에 비유하면서, ‘이제는 새로운 수직 혁명이 필요할 때(It's time for a new vertical revolution)’ 라고 선언했다.  이어서 그들은 세 편의 내러티브 단편영화를 발표하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과 세로 화면의 역사적 배경을 다룬 저널 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단순히 세로 영상의 미적 특성을 연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탐구를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세로 영상제작 애호가들이 모인 비메오(Vimeo) 그룹 ‘긴 스크린(Tallscreen)’ 같은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비메오에 업로드하는 동영상은 화면비율에 관계없이 원래의 형식으로 다른 곳에 임베드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했다.  또한 세로 형식의 영상을 ‘비디오 촬영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하면서 DSLR 카메라 사용법이나 세로 영상 제작에 관한 모범 사례와 지침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그와 같은 기존 영상 제작 표준을 전복하고자 하는 운동은 ‘미학적 혁신(aesthetic innovation)’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오래된 표준은 새로운 표준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대안적인 영상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같은 해인 2013년에 예술가 아람 바르톨(Aram Bartholl, 1972~)은 베를린에서 ‘버티컬 시네마’ 상영을 기획했다.  이 행사에서는 VVS의 조롱에 대한 응답으로 와이드스크린 모니터를 옆으로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연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로 화면비울 영상을 옹호하는 예술가·학자 그룹에서는 세로 영상이 단순히 자연스럽고 편리하다는 주장을 넘어서, 세로 영상을 기존 사회의 제도적 질서와 관념적 권위 체제에 저항하기 위한 예술적 운동의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이와 같은 해외의 사례는 세로 화면비율의 숏폼 콘텐츠가 단순히 자연발생적으로 태동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와 예술적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밝혀준다는 데서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다음 글에서 계속)



[참고문헌]

Canella, G. (2018). Video goes vertical: Local news videographers discuss the problems and potential of vertical video. Electronic News, 12(2), 75-93.

Menotti, G. (2019). Discourses around vertical videos: An archaeology of “wrong” aspect ratios. ARS (São Paulo), 17, 147-165.

Sugawara, M., Masaoka, K., Emoto, M., Matsuo, Y., Nojiri, Y. (2008). Research on Human Factors in Ultrahigh-Definition Television to Determine its Specifications. SMPTE MOTION IMAGING JOURNAL, 117:23-29.

Ulenius, M. (2018). Tall Tales: Ancestry and Artistry of Vertical Video. Stockholm University.

한국전파통신진흥원. (2018). 새로운 영상 포맷으로 주목받고 있는 세로 동영상. 트렌드리포트, 02(3).

작가의 이전글 가상현실 실감미디어에 대한 비판론과 회의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