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yri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ric May 15. 2020

무제

2020-05-15 금요일 16:56


오지 않는 잠을 오게 하려고 책을 붙들고 있다가 도대체가 잠은 안 오고 글은 너무도 또렷하게 잘 읽히는 바람에, 아침 6시까지 책 2권을 다 읽어버렸고 동이 다 트고 나서야 든 선잠은 추적추적 빗소리에 달아났다.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 그리고 비라는 다섯 단어는 빈틈없이 내 마음에 쏙 와 닿았고 무난하게 시작해 기괴하게 진행되다가 이렇다 할 결론 없이 끝나버리는 내용 또한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좋았다.

한국을 싫어하는 내 마음을 누군가가 적나라하게 투시해서 미주알고주알 글로 일일이 다 받아 적은 듯한 두 번째 책도 좋았다.

오래전부터 삐그덕 대던 턱은 생활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걷다가도 급작스레 빠지곤 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놀라게 하곤 했는데, 며칠 전부터 오른쪽 잇몸이 욱신욱신한 게 아파서 거울을 들여다보니 사랑니 같은 게 나는 중이다.

오랜 부정교합의 원인이 한쪽에만 나고 있는 사랑니 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원인을 아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면서도, 느껴지는 통증이나 그 성가심은 외면할 수 없었다.

누가 나를 사랑하는 건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지 이유 모를 쓸 데 없는 사랑니가 나기 시작하는 게 꽤나 거슬리고 언짢다.

이걸 빼자니 두렵고 두자니 아프고, 진퇴양난의 마음으로 조금 더 두고 봐야겠다.


저녁에 있을 일정 때문에 낮잠을 좀 자려고 두어 시간을 누워있어도 피곤함만 쌓이고 잠은 오지를 않는다.

간혹 이런 날들이 있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아도 잠으로 도피할 수 없어서 현실에 그대로 살이 베이는 것만 같은 날들.

종이에 손이 베이면 죽을 것처럼 아프진 않아도 거슬리잖아, 성가시네, 정말, 하는 날들.


비가 꽤 많이 오는 것 같다.

위쪽부터 내리는 비는 쉴 새 없이 밑으로 빠져나가는 소리를 낸다.

창을 열어두면 비가 많이 와서 들이치기까지 한다.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는 비 오는 날이 꽤 잦다.

비 오는 날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니 나쁘진 않아.

적당히 어둑하고 적당히 고요한 게, 대기나 분위기라는 게 어쩌면 사람의 기분을 조물 조물 만지고 조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떠오르는 잡념은 잠시 접어두고 나갈 채비를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거 없는 일상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