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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서C Oct 31. 2018

마음을 담은 인터뷰를 읽다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 이진순 / 문학동네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용 중 국어과에 '면담하기'가 있다. 학생들이 직접 면담자를 선택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 발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학생들은 면담 대상자를 자신의 기호와 흥미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한다. 어떤 아이들은 우체국에 가서 집배원과 면담하기도 하고 경찰서에서 경찰관을 만나기도 하고, 아파트 안 경비원과 이야기하는가 하면 면담하기 편리하게 학교 교장선생님을 찾기도 한다. 학생들이 직접 면담자가 되어 과제를 수행하러 출발할 때마다 난 그들을 불러 세워 인터뷰의 목적과 면담자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강조하곤 한다.


"좋은 인터뷰는 우선 무엇을 물을 것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묻는 내용이 면담 대상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어야 하며 묻는 내용에 대한 대답을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정확히 묻고 면담 대상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정확히 기록하는 것 좋은 인터뷰의 정석이다. 그런데 '더 좋은' 인터뷰가 있는데 그것은 면담 대상자를 공감할 때 이루어진다. 면담 자체가 편안해야 면담 대상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마음껏 할 것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몸과 마음으로 공감해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충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명확히 또박또박 물어보고 정확히 받아 적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에 빠져 듣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는 것이 면담의 더 중요한 목적이라고 여겼다.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 이진순

그렇다면 '더 좋은' 인터뷰어(interviewer)는 어떻게 인터뷰이(interviewee)를 바라볼까. 인터뷰어 이진순의 인터뷰에 그 답이 있다. 이진순은 122명의 인터뷰이를 만나 인터뷰를 했고 그중에서 12명을 간추려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에서 이진순은 뛰어난 인터뷰어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술한 내용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이진순은 인터뷰이에게 공감하고 같이 이해하고 마음으로 인터뷰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의 말은 인터뷰이의 감정을 건드리고 그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그가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민감성은 '좋은' 인터뷰를 '더 좋은' 인터뷰로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책의 대부분의 인터뷰이는 권력의 정점이 아닌 그 변두리에게 혹은 권력과 상관없는 평범하지만 어느 순간 비범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평소에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람이었지만 순간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 혹은 걸어 들어간 사람들이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좌절을 겪으면서도 삶의 희망을 놓지않고 어느 순간 반짝거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필자는 '당신의 반짝이던 순간'이라는 제목을 썼으리라.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삶을 선택한 사람들 이야기를 '1부-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라'에 펼쳐놓는다.  '2부-상처의 자리를 끌어안다'에서는 소외되어 힘든 자들에게 다가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3부-회의하고 거부하며 선택한 삶'에서는 주어진 삶을 박차고 나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무수한 장애물을 넘거나 부딪히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 속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시간에서 저마다의 공간에서 반짝거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진솔한 인터뷰는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난 때로는 12명의 인터뷰를 이성적으로 읽다가 어느 순간 감성적 영역으로 옮기기도 하였고 인터뷰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인터뷰를 읽어가며 울컥거리기도 하였다. 세월호 참사 속의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인터뷰 속의 먹먹함을 읽을 때도 그랬고, 이국종 교수의 인터뷰에서 분노와 좌절을 느낄 때도 그랬다. 비록 다시 올라섰지만 한 때 나락으로 추락하던 노태강의 인터뷰에서 서글픔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의 이야기와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시 환기하기도 하였다.


인터뷰어 이진순은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썼다. "세상을 밝히는 건, 위대한 영웅들이 높이 치켜든 불멸의 횃불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처럼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고 난 믿는다. 좌절과 상처와 굴욕이 상존하는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광채를 발화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담고 싶었다." 그의 의도대로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은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순간을 잘 포착해 낸 대담집이었다. 그리고 그 좋은 인터뷰를 읽으며 나 역시 잠깐이나마 같이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인터뷰이의 감정을 공유하고 인터뷰어의 따뜻한 시선을 읽으며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학생들이 '타인에 대한 민감성'이 풍부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아픔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배제와 혐오가 곳곳에 드리워진 사회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의 더 반짝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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