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100일이 지났다. 연애할 때도 아니고 100일을 챙긴다는 건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결혼식을 했던 웨딩홀에서 100일 선물을 보내준다고 연락이 와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뭐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아무튼, 그 덕에 거의 잊고 있었던 결혼식날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사실 결혼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주위에 결혼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결혼식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신랑 신부 입장에서 결혼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사실 플래너가 다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다). 정말 '무지'했다. 그렇다고 결혼식을 시험 준비하듯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준비하기에는 너무 귀찮았다. 알아보는 것도 귀찮고 비교하는 건 더욱 귀찮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 대충 하자!
결혼은 하기로 했고 대략적인 결혼식 날짜도 정했는데 막상 결혼식 준비를 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막막했다. 발만 동동 구르(는 척)고 있던 그때, 당시 룸메였던 친구가 얘기했다. "친한 언니가 잠실 아펠가모에서 결혼했는데 뷔페 존맛, 개존맛." 그간 몇 번의 결혼식에 참석해본 결과 결혼식은 곧 뷔페였으니 식사가 제일 중요했던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잠실 아펠가모로 확정. 그렇게 결혼식장은 해결했고, 플래너는 어디서 구하나 고민하(는 척)고 있을 때 또 다른 친구가 얘기했다. "우리 팀장님 결혼했는데 한번 물어볼까?"
네, 예상을 빗나가지 않죠. 일면식도 없는, 친구의 회사 팀장님께 플래너를 소개받았고 일단(아무것도 모르니까) 물어나 볼까 하고 전화를 걸었을 땐 이미 플래너도 확정. 그다음부터는 플래너가 제시하는 선택지에서 고르기만 하면 됐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플래너가 도와주는 건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까지였다. 웨딩 밴드와 청첩장은 물론 결혼식 진행도 전적으로 우리 몫. BGM도, 성혼선언문도, 혼인서약서도 신랑 신부가 준비해야 했다. 플래너가 우리 결혼식의 PM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PM이네? 정말 일을 쳐내듯 하나하나 해치워나갔다. 별거 없다고 생각한 결혼식에 식순은 왜 이렇게 다양한지, BGM 고르는 것도 일이고 성혼선언문과 혼인서약서가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심지어 시국이 시국인지라 결혼식을 연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결혼식을 위한 '준비'일뿐 아직 결혼식은 시작도 안 했다고요.
그리고 다가온 결혼식 날. 저녁에 결혼식을 했더라면 늦게 일어나도 되니 좋지 않았을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집을 나왔다.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오늘이 내 결혼식 날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그저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가 무사히,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모든 프로젝트들이 그러하듯 모든 게 내 마음처럼 잘 될 리가 없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예민함은 극에 달했고 문제 아닌 문제가 생길 때면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내 안의 '화'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드레스가 밟힐까 싶어(드레스를 입고 로비에 서서 하객맞이를 했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식장 직원들은 뭘 그렇게도 확인해달라는 게 많은지 몸이 자유로운 신랑한테 물어보시라고요, 제발. 그렇게 흥분과 반가움이 뒤섞인 혼돈의 시간이 지나가고 신랑과 함께 입장하기 위해 문 앞에 섰을 때, 그제야 모든 게 실감이 나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준비한 음악이 짧지는 않을까, 중간에 넘어지지는 않을까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긴장과 설렘으로 머릿속이 새하얘 질 때쯤 문이 열리고 음악(Il Mondo)이 흘러나왔다.
준비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결혼식은 금세 끝이 났다. 아쉬움은 조금 남았지만(마음 수련을 더 했어야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담백한 결혼식이었다. 이 30분 남짓한 의식을 1년 동안이나 준비했다니 조금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결혼식이 더 길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