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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 Aug 14. 2020

카톡을 지웠습니다.

그래도 난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요.

Photo by visuals on Unsplash


카톡을 지웠다. 한 시간에 한 번씩 확인했던 인스타그램도, 페이스북도 지워버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남편부터 친구들까지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며 걱정스러운 투로 연락을 해왔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항상 'ON'인 상태로 지내는 것에 지쳤다고 해야 할까. SNS로 시작해서 SNS로 끝나는 하루는 내 생각보다 더 큰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소모되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더 이상의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해 사방으로 뻗어있는 레이더를 끄고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SNS에서 벗어난 지 어느덧 한 달 반이 지났다. 카톡 대신 문자를 쓰고 인스타그램 대신 네이버나 다음에 올라오는 글을 둘러본다. 단지 SNS를 끊었을 뿐인데 점점 내 존재감이 옅어져 간다.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은 확연히 줄어들었고 내 근황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한 친구는 내 상황을 '잠수'라고 표현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모든 연락을 다 끊어버리고 어딘가로 사라진 것도 아닌데 잠수라니. SNS를 하지 않는 게 비정상적인 걸까. 


지금 상황에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Yes. 계속 유지할 거냐고 묻는다면, 글쎄. 내 위주로만 생각한다면 사실 내가 다시 일을 하게 되지 않는 이상 지금처럼 지내고 싶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겪는 불편함을 무시할 수 없다. 연락을 하기 위해선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문자를 써야 했고 단톡을 확인하지 않으니 모임을 정할 때는 나한테 따로 연락해서 물어봐야 했다. 다 함께 만났을 때면 내가 놓쳤던 소식들을 알려주기 바빴다. 이 수고스러움을 그들에게 계속 강요해도 될까.  


아무런 계기도 없이 카톡을 지웠던 것처럼 또 어느 순간 다시 카톡을 설치하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여왔던 피로가 풀리고 다시 핑퐁을 주고받을 에너지가 생기면 말이다. 그 전까진 지금처럼 단순하게 살려고 한다. 불필요한 것들에 마음 뺏기지 않으면서 스마트폰도, 관계도 미니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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