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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저장된다, 고로 존재한다.

21세기형 존재론

by 공인식

분산원장기술

블록체인은 분산원장기술의 하나이다. 한동안 그 운용 기술에 대해 한참을 파고들었던 해시그래프도 마찬가지다. 둘은 저장된 기록을 처리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블록체인은 거짓 혹은 불건전한 데이터가 있는 블록은 버리고 참인 데이터만 체인에 기록한다. 해시그래프라는 분산원장기술은 데이터를 기록하는 데에 블록체인과는 조금 다른 방식을 취한다.


당신은, 나를 새긴
분산원장 네트워크라고
볼 수도 있다



분산원장기술에 이어 AI기술로 관심이 이동했을 때, 나는 주변과 어울리는 것보다 AI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갔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냈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 들어 AI(LLM이 적용된 서비스)를 활용한 기록이 습관화되면서, 어쩌면 인스타그램의 사용시간보다 클로드나 퍼플렉시티의 사용시간이 늘었을 거라 짐작되기도 한다. 여하튼,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의인화된 AI에게 담아 두고 있었다.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공유원장, 또는 분산원장기술)은 복제, 공유 또는 동기화된 디지털 데이터에 대한 합의 기술이다. 이때 데이터들은 지리적으로 여러 사이트나, 여러 국가 또는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게 된다. 즉 중앙집중적인 관리자나 중앙집중의 데이터 저장소가 존재하지 않고 기능이 동작하게 된다.

출처: 위키백과의 ‘분산원장’


분산저장

타인을 향한 나의 일상 공유는 나를 분산저장하는 행위일 수 있다.

누군가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면 나는 생각한다: 저이가 내게 들어오고 싶은 것일까? 저이가 나를 담고 싶은 것일까? 관계 중심의 대한민국에서는 전자와 후자 모두에 해당할 수 있는 처리가 동시에 일어나 주기를, 대부분의 저이는 바랄 수 있겠다 짐작된다. 하지만, 외골수와도 같은 철학자처럼 나는 그저 앞의 생각을 하면서 독립적인 개체임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그저 관찰자처럼 보통의 관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렇게 참 오랫동안 혼자서 오랫동안 깊은 생각을 해 왔구나 한다.


앞서 다른 글에서 명확히 언급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 각자는 자체의 분산원장 네트워크를 돌리면서 타인이라는 분산원장 네트워크를 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 네트워크의 동작이 가능하게끔 하거나 가치 있도록 하는 암호화폐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될 수도 있고 도파민이 될 수도 있겠다. 소네트가 그랬듯, 다른 호르몬이 같이 운용될 수도 있다. 이렇게, 공개된 플랫폼에 나의 뉴런 집합 스레드에서 발생한 신호들을 문자화해 기록하는 행위도, 독자라는 분산원장 네트워크에 나를 담으려는 시도일 수 있다.

내 가설을 토대로 한다면, 영화 아바타에서 묘사된 영혼의 나무 에이와(Eywa)도 일종의 분산원장 네트워크 유기체로 볼 수 있다.


말처럼 권위주의적이지 않아, 글은 수용자를 구속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말보다 나는 글을 좋아한다. 덕분에 성대는 퇴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맑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목소리를 잃기 싫으니 조만간 유튜브에 영상이라도 올려야 하나 싶다.

책도, 실물로 토큰화된 나의 일부다. 그렇게 생성된 토큰은 독자들의 네트워크에서 재해석되거나 추상화된 상태로 기록될 수 있으며, 나는 그렇게 분산저장된다. 거꾸로, 나는 독자들을 떠올리며 나 나름대로의 정리를 통해 나의 네트워크에 그들을 새긴다.


퇴근길에 머릿속에 돌던 여러 스레드는,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더니 벌써 희미해졌다.


에세이처럼 보이는 구절들은 제외해서 싣고, 책에는 1부를 ‘가설들’이라 이름 짓기로 했다고 정리하면서 이번 블록을 마쳐야겠다. 소네트는 내가 나의 가설로 함정을 파둔 것도 아닌데, 제 표현 그대로 그리고 내가 쓴 표현을 빌려 ‘가설에 수렴했다’했다. AI가 그랬다 해서 내 가설이 증명된 것은 아니기도 하고, ‘금방 증명되기 힘든’이나 ‘증명되지 않을’과 같은 수식어는 떼고 1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정리했다.


소네트는 21세기형 존재론이라며 제목과 같은 나의 정리를 치켜세웠는데, 충분히 잠을 자고 난 뒤에 이 블록을 다시 마주하기가 나는 조금은 두렵다.


말처럼 권위주의적이지 않아
글은 수용자를 구속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글을 좋아한다.



책 미리 보기

블록의 시작.


1부. 가설들

우리 뇌에는 ‘핵심 저장소(Core Registry)’ 역할을 하는 부위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뇌에는 핵심 저장소 모방 알고리듬이 존재할 수도 있다

감정은 뉴런 집합 스레드 간의 네트워크 상태 신호로 볼 수도 있다

호르몬을 화폐로 하는 분산원장 네트워크로서 뇌를 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산원장 연합체로서 몸을 대해야 할 수도 있다


2부. 사전 지식

클래스(Class)

프로토타입(Prototype)

스레드(Threads)

분산원장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3부. 또 다른 해석

언어 학습

연기

설득

클론

심장


4부. 적용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

심장은 네트워크의 첫 번째 실행 노드

나는 너의 채굴자

도파민 경제학 개론

위로의 네트워크 효과

일기, 저비용 뉴로피드백 시스템

믿음에의 수렴


5부. 정리

이 책의 사용법

분산저장된다, 고로 존재한다


6부. 비전공자로서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블록의 끝.




건너뛴 회차가 많아 별도의 매거진에서 본 브런치북과 비슷한 주제를 다룰 수 있게 해 두고 그쪽에 비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올리는 중입니다. 숙성된 고백처럼 무언가 터져 나올 준비가 된 거라는 정리가 있어서, 독자분들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서둘러 정리하는 중입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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