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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공학자 이한주 Aug 14. 2023

난 거기 무얼 두고 왔는가

열흘 간의 몽골 여행

  새벽 세 시, 꽉 찬 방광이 잠을 깨웠다. 낮은 나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걸터 앉았다. 보이지 않지만 세 평 짜리 천막 안이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20kg들이 캐리어, 기둥과 난로를 피해 5미터를 건너가야 했다. 

고로롱 고로롱 아내의 숨소리가 골랐다. 발끝으로 슬리퍼를 찾아 더듬다가 포기하고 발바닥으로 바닥을 쓸어가며 문으로 향했다. 허우적대는 손에 덜그럭 금속 문고리가 걸렸다. 잔뜩 머리를 숙이고 미닫이를 밀어 방을 나섰다.  


  갑자기 대막이다. 캐시미어같이 가볍고 따뜻한 질감의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맞아주었다. 자갈밭을 몇 발짝 지나 자리를 잡았다. 바람을 등진다. 지퍼를 내리고 꾹꾹 눌러 놓았던 체액을 방출했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땅바닥에 구멍 뚫는 소리를 냈다. 배설의 쾌감으로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바지춤을 추스르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은 검고 푸르렀다. 늦게까지 밖에서 술 마시고 떠들던 여행객들도 자기들만의 게르 둥지로 뽀로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리고 별. 


  딱히 고개를 들지 않아도 별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고개를 젖혀 머리 위에서만 보았던 별들이 360도 사방으로 거칠 것 없이 널려 있었다. 자기 전에는 머리 꼭대기에 있던 북두칠성이 지평선으로 내려와 앉아 있었다. 고대 철학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다른 천체들은 천구에 박힌 채로 지구를 돌고 있다고 세상을 설명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감각적 진실이 아닌가. 

몽골의 밤, 사진 by 이영산 작가


  몽골에서의 세 번째 밤이었다. 나는 왜 서울에서 4,000km 떨어진 여기 고비(고비란 몽골 말로 거친 땅, 즉 사막이란 뜻이다)에서 오줌을 누고 있었나? 알 수 없었다. 굳이 이유를 붙여본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코치로 전업해서 10년 동안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일 수도 있었고, 그저 일하기 싫어 잠깐 도망쳐 나온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되었든 이미 사막에 온 이상 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목이 마르면 갈증을 느끼고, 더우면 뜨겁구나 했다. 지나가는 한 줄 바람의 시원함을 즐겼다. 그저 거기서 감각에 충실한 삶을 경험하면 됐다. 


  사막에서의 삶, 여행자의 길은 불편했다. 먹는 것은 시원찮고, 침대 시트에는 바퀴벌레들이 새카맸다. 쌀 곳은 마땅치 않고, 어디나 덥거나 추웠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몸에 쌓인 때를 닦아 낼 샤워는 사치였다. 졸졸 흐르는 알뜰한 수량(水量)에 감지덕지했다. 이런 불편을 돈 주고 사다니 세상에 바보가 따로 없다. 

대신 고비에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듯 천지 사방 어디를 봐도 끝이 없었다. 이쪽 끝에서 해가 뜨고 반대편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허공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게르 캠프에서의 일출


  그런데 이 거대한 無 안에 생명이 있었다. 황량한 사막이지만 듬성듬성 거친 풀이 자라고 그것을 뜯어먹는 말, 염소, 양, 낙타가 무리 지어 살았다. 심지어 우물도 있었다. 어린 왕자가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라고 했던 그 샘이 있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염소 떼와 나누어 마셨다. 이디야 복숭아 아이스티보다 달고 시원했다. 그리고 이 동물을 치는 사람이 있었다. 가족이 살았다. 희박한 만남 탓에 손님을 환대하는 것이 이 사람들의 전통이었다. 이동 중에 초원에서 만난 아주머니로부터 치즈를 한가득 선물 받았고, 운전기사 처가 게르에서는 마유주를 배 터지게 얻어 마셨다. 우리 사는 곳에서는 사람이 제일 무서웠지만, 이곳에서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반가움을 나누었다.  


대초원에서 만난 몽골 가족. 아기 엉덩이와 등에 몽골 반점이 가득 시퍼렇다.




  몽골에서 열흘 동안 사막과 초원과 알타이산맥을 거쳐 2,700km를 주유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천 공항에서부터 홍제동까지 이동하는 내내 비가 내렸다. 습기로 꾸덕했다. 몽골에서는 그렇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쉬웠는데, 서울에 오니 사막 그늘에서의 건조한 바람이 그립다. 참 간사하다. 그래서 배운다. 현재 여기서 누리는 것에 감사하라고. 


  세상에서 가장 큰 화장실, 두 발 걸으면 한 발 빠지는 사막산의 모래 능선, 눈에 좋다고 바른 바위 구멍 속 고인 찬 물, 울퉁불퉁 길 아닌 길, 간간히 모래 씹히는 양고기,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기 위해 손에 땀이 나도록 잡았던 낙타의 물컹한 혹, 스치기만 해도 살갗이 따갑게 부어오르는 할가이 풀, 그리고 초원 언덕 아무데나 피어 있던 하얀 에델바이스까지 그곳의 경험으로 남아있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사막 모래 속에서도 쉽게 딱정벌레를 만날 수 있었다. 


  새벽 세 시 방광이 꽉 차서 화장실로 향한다. 자동 센서등이 길을 밝혀준다. 양변기에 앉아서 일을 보고 물을 내린다. 세면대 수전을 올리니 물이 콸콸 쏟아진다. 이 아까운 물이 조금씩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미조정한다. 몽골을 떠난 지 열흘, 삶을 뒤집는 강렬한 체험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불편한 곳의 경험이 정리되지 않은 감정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마치 무언가를 거기다 두고 온 것처럼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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