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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공학자 이한주 Sep 05. 2023

사랑이라는 벡터

사랑의 방향성

밥 더 먹어.

그거 먹고 되겠어?

얘, 이 서방 밥 좀 더 갖다 줘라.

밥 모자라지 않아?

밥 좀 더 줄게.


식사 때마다 줄기차게 반복되는 장모님의 레퍼토리다. 그때마다 이렇게 대꾸한다. 

저 많이 먹었어요. 필요하면 제가 더 먹을게요. 배불러요. 충분해요. 아뇨, 다 먹었어요.


정신이 맑으셨을 때도 그랬다. 더 먹어, 많이 먹어. 하도 권하셔서 몇 차례 진지하게 말씀드린 적도 있었다. ‘옛날 못 먹던 시절이야 밥 많이 먹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제가 왜 사양을 합니까? 진짜 배 불러서 그래요. 좀 믿어 주세요. 요새는 과식이 건강에 더 나빠요. 제가 적당히 먹을게요. 그러니 제발 그만하세요.’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인지증이 심해지면서 식탁에서 밥 더 먹으라는 잔소리는 오히려 부쩍 늘어났다. 애들 말로 귀에서 피가 날 정도다. 아들놈은 할머니와의 식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배부르다고 해도 자꾸 더 먹으라고 하시니 남의 말을 듣지 않거나 믿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안다. 장모님의 밥 타령은 사랑 표현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방식이다. 

나도 장모님을 사랑한다. 장모님은 사랑하는 아내를 낳아 길러 주신 분이다. 우리 결혼을 허락하고 어려울 때 내 편이 되어 주셨던 고마운 분이다. 장모님의 사랑 방식이 나를 힘들게 해도 싫어할 수 없는 분이다.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난 왜 어머니의 사랑 방식이 불편할까?


사전을 찾아보면 사랑이란 ‘상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 사랑이라는 추상을 구체적으로 잘 알려주는 표현을 고린도 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모든 것을 견디'는 행동이다. 


성경 구절을 곱씹으며 나름 사랑의 의미를 정리해 본다. 사랑이란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행위가 아닐까? 그러므로 내 행동이 상대를 행복하게 만드느냐가 사랑의 핵심이다. 


물리학에는 양을 나타내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스칼라는 질량, 온도, 면적 등 크기를 나타낸다. 스칼라가 방향을 가질 때 벡터가 된다. 가속도, 중력, 자기장 등의 벡터는 시작과 끝이 있는 화살표로 표시된다. 이런 관점에서 사랑은 스칼라가 아닌 벡터값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랑의 마음(스칼라)이 상대방에게 잘 향하여(방향) 그를 기쁘고 행복하게 할 때 제대로 된 사랑이 구현된다. 


아무리 사랑의 마음으로 행해도 상대가 기뻐하지 않고 불편해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다. 방향을 잃은 삐뚤어진 사랑이다. 사랑한다면서도 상대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 때문에 스토킹, 집착, 강요하는 일들이 그 대표다.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겠지만 우리도 종종 자신에게 좋은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내가 좋으니 상대도 좋을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상대가 나와 다른 인격임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주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미성숙한 태도다. 결국, 자기만족을 위해 상대를 사랑하는 거다. 화살표가 나를 향한 빗나간 사랑이다. 가짜 사랑이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 중심으로 행해진다. 상대가 사랑받는다고 느껴야 찐사랑이다. 성숙한 사람은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상대가 기뻐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개리 채프먼은 ‘5가지 사랑의 언어’를 통해 사랑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정의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등 사람마다 사랑을 경험하는 방식은 다르다는 것이다. 새겨들을 말이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나의 사랑 방식은 봉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아내에게 전혀 사랑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이해한 후에 더 잘 사랑하게 되었다. 내게 당연한 사랑 방식을 버려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기쁘고 행복한지 알아가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장모님은 함께 하는 식탁을 기뻐하신다. 오늘 저녁 옛날 통닭 한 마리를 사 들고 가야겠다. 장모님 눈에 빈 공기가 보이지 않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먹어야겠다. 작은 그릇으로 시작하자. 배를 남겨 두었다가, 밥 좀 더 먹으라 하시면 기꺼이 한 숟갈 더 떠야겠다. 나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어머니와 함께 즐거운 식탁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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