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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Apr 07. 2022

잠들지 못하는 자들의 시간과 공간의 방

(3)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두 달 후, 늦가을로 들어가는 주말 새벽이었다. 우리 동 한 층은 15개의 집이 복도로 전부 연결되어 있는데, 현관문을 살며시 닫지 않으면 층 전체가 쿵하고 울렸다. 현관문 옆의 배전함 문에 달린 자석끼리 닫히는 소리조차도 철컥 소리를 내며 복도를 울리는데, 옆집 초인종 소리라고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새벽 초인종 소리만으로도 화들짝 놀라 일어났는데, 초인종 소리가 끝이 없었다. 그러다 노크 소리와 낮은 웅얼거림이 이어졌다.

사람이 없는데 온 건가? 나는 연이어 나는 소리들에 나는 당장 불을 켜고 시린 눈을 감은 채로 주변을 더듬거리며 안경을 찾아 썼다. 옆집 문을 노크하는 소리, 그러다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는 사람인가? 그러면 전화를 할 일이지 왜 저러고 있는지 이상한 일이었다. 공동 출입 비밀번호를 모르고서는 새벽에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쉽지 않은데 문 좀 열어주지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현관문은 완전히 막혀 있어 밖을 볼 수 있는 도어 뷰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폰을 통해 밖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경비실에 연락을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사이, 갑자기 발로 옆집 현관문을 위협적으로 세게 차는 소리가 벽 전체를 울렸다. 인터폰으로 바깥을 보았다. 화가 난 남자가 우리 집 앞을 지나쳐 구둣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싸움 한번 요란하게 하네. 나는 소리가 사라지자 오만상을 쓰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었던 것을 잊어버렸다. 그다음 날 자정, 그리고 또 그다음 날까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늦은 밤, 커피를 마시며, 얼마 남지 않은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미각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소설을 써나가고 있는 중에 복도 가까이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장난치지 말고 문 열어줘.”

옆집에 찾아온 소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제, 혹은 엊그제의 그 남자인가? 노크 소리와 초인종 소리가 번갈아 울렸다. 처음에 인터폰의 화면에 화를 내고 있는 남자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남자가 서성이면서 화면에 그의 모습이 일부 잡혔다. 엊그제나 어제의 남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체형이었다. 재킷을 입은 남자는 키가 작고 다부져 보였다.   

“저기요, 나라니까?”

치정인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막장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남자는 애가 타는 듯 어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옆집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여전히 없었고, 그 상태로 10분쯤 지나자 남자의 낮은 욕설이 이어졌다. 남자의 낮은 음성에서는 분노가 쌓이고 있었다. 나를 찾아온 것도 아닌데, 그 욕설을 듣고 있는 마음이 쪼그라들고 퍼석하게 부서지는 것이 느껴졌다. 포기하지 않는 남자의 기색에 나는 초조해져서 폭신한 슬리퍼를 신은 채로 두 평 남짓한 방 안의 공간에서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 하며 바깥을 향해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어차피 밖에서는 내 모습 같은 것은 보이지 않을 텐데 슬리퍼 끄는 소리도 내지 않으려 발을 조심히 위로 들어서 걸었다. 용기를 내어 문 앞에 다가가 귀를 댔다.

“야, 장난하냐!”

갑자기 남자가 버럭 하는 소리에 놀라, 신발장 앞에 걸어놓은 맥주 캔이 담긴 분리수거 주머니를 건드리고 말았다. 소리가 나지 않게 주머니를 잡고 숨을 찾았다. 왜 저렇게 문을 안 열어주고 버티는 것일까. 설마 데이트 폭력인가? 주변을 시끄럽게 해서 얻을 이득이 없으니 성매매 일리는 없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을 끊은 것은 아파트 경비원들과 경찰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아는 사람 집이라니까요?”

다부져 보이는 남자는 기가 막힌 듯 억울해하며 경찰에게 호소했다.

“선생님, 민원이 들어와서요.”

“그러니까 누가요. 누가 신고했냐고요. 설마 이 여자가 했어요? 아 씨, 진짜 미친놈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신발 소리들이 점차 커졌다.  

“좀 조용히 좀 해주세요. 며칠째 시끄럽게 하잖아요. 살 수가 있어야지.”

같은 층의 누군가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야, 당신이 신고했어? 나 오늘 처음 왔거든?”

“아는 사람이라면서요?”

“아, 씨 X, 나와, 나와 보라고.”

남자가 다시 옆집 현관문을 두드렸고, 경찰이 저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용만 들어서는 짐작이 어려웠다. 경찰과 경비원 외에도 여러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는지 문 열리는 소리와 발소리가 이어졌다. 인터폰을 켜자 복도에 사람들이 모여든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문을 열고, 그 틈바구니에 끼어들었다. 결국 경찰이 벨을 누르며 옆집 여자를 재촉했다.

“잠시 나와 보세요. 경찰입니다.”

놀랍게도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래도 문을 좀 열어주세요. 확인 좀 하겠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집 주소를 알려줘서 왔다니까요. 여기 메시지 받았다니깐요.”

경찰이 와서 인지 여자의 목소리도 커졌다.

“제가 안 보냈어요.. 요새 계속 모르는 남자들이 집에 찾아와요.”

화가 난 남자가 욕을 하며 벽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불렀잖아, 이 X발 X 같은 X이.. 현관문 비번까지 알려주고 이제 와서 나랑 장난해?”

“선생님, 좀 진정하시고요.”

“네가 하자며, 이 미친 X이..”

순간 조용해졌다. 옆집 문이 열린 모양이었다. 마스크를 낀 사람들 사이에 마스크를 낀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위축돼 있었다. 눈 밖에 얼핏 보이지 않았지만 불안함이 전해졌다. 여자를 보자 남자는 잠시 여자를 훑어보았다. 아니, 모두가 그 여자를 훑어보았다. 약간 통통하고, 부스스한 곱슬 머리카락 사이로 새치가 살짝 보였다. 무릎이 늘어진 수면 바지와 약간 늘어난 긴팔티를 입고 있었다. 마스크 안의 외모가 몹시 뛰어날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아, X발..”

남자는 여자를 보자마자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속았네. 사기야.”

남자가 핸드폰 화면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다들 그 사진을 보고 싶어서 어깨가 들썩이는 게 보였다.

“이게 뭔데요..?”

경찰에게 남자가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하고 집주소를 보냈어요. 저한테. 809호 맞잖아요!”

경찰이 무표정하게 사진과 여자를 번갈아봤다. 나는 사진은 볼 수 없었지만, 경찰 역시 미묘하게 여자를 훑어보는 것이 느껴졌다. 여자가 대답했다.

“이거, 저 아니에요. 보낸 적도 없고요.”

 남자가 옆집 여자에게 다그쳤다.

“당신 핸드폰 가져와봐. 방금 전까지 메시지 주고받았잖아?”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여자에게 핸드폰을 요구했다. 여자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 사이에 지운 거 아니야?”

“저 그런 어플 안 해요!”

어플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기가 찬 듯 여기저기서 짧은 한숨을 쉬었다. 어플에서 먼저 유혹했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고 일을 크게 만든 것은 저 여자 탓이라고, 이런 거지 같은 장난질에 당했다며 남자는 한참이나 옆집 여자를 저주했다.

옆집 여자는 그 남자가 연행되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주택 침입을 한 것도 아니고 실제 위해를 가한 것이 아니라며 경찰은 약간의 중재로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다. 경찰은 걱정하는 여자에게 내일 정식으로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넣으라고 했고, 이 남자에게 약간의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라, 두 사람 다 피해자, 더 나아가서는 피해자를 돕는 증언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지자 씩씩대던 남자도 다소 누그러져 태도를 바꾸었다. 그 남자는 결국 경찰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결국 그 자리에서 누가 왜 그 남자를 불러들여 모두를 잠 못 들게 했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마무리되었다. 긴 복도에 늘어진 문 속으로 모두가 금세 사라졌다. 그런데 또 그 여자의 집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누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돌이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옆집 여자에게 묻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핸드폰을 꼭 붙잡고 울지 않으려 버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등을 돌릴 수가 없어서였다.

“저기….”

옆집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차 한잔 하실래요?”

옆집 여자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어….”

뭔가 말을 찾으려 고민하는 순간, 내 곤란함을 읽었는지 그 여자의 눈동자에서 뭔가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몸을 돌려 현관문을 향해 서는 모습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느릿하게 느껴졌다. 옆집 여자를 향해 뒤늦게 몸을 틀었다.

“저희 집에서 주무실래요?”

여자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을 연 상태로 잠시 몇 초 더 옆집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다시 옆집 문이 열리고 여자가 겉옷과 차키를 든 상태로 나왔다. 여자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여자가 문을 닫고 꼼짝없이 서 있는 내게 말했다.

“제가 익숙한 곳이 아니면 잘 못 자서요. 들어가세요.”

여자는 내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복도의 불이 꺼지자 문을 닫았다. 위층도 아래층도 옆집에서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상하고, 드문 밤이었다. 마치가 모두가 잠들지 않은 것처럼.     

*     

그 일 이후 또 빠르게 두 달 정도가 흘렀다, 옆집에 누군가가 더 찾아오는 일은 없었지만, 옆집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일도 없었다. 종종 보이던 옆집 현관문 앞의 택배도 자취를 감췄다. 아랫집에서 내게 혹시 민원을 제기할까 걱정도 했지만,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하지만 아파트 내에서 복도를 울리는 문 닫히는 소리, 배전함 닫히는 소리, 복도 창호 설치하는 소음, 발 도장 소리, 물건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들은 끊이지 않았고 여전히 층간 소음으로 인한 아파트 방송도 끊이지 않았다.

억지로 잠을 자려 맥주를 찾는 대신,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켜 키보드를 두드렸다. 원고를 쓰는 동안에는 모든 것에 분리된 것처럼 느껴졌다.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원고를 보내기만을 기다렸는데, 막상 보내고 나자 또 잠이 오질 않았다. 낮도 밤도 잠이 쉽게 들지 않는 날들, 어딘가 항상 깨어있는 불안한 기분이었다. 불안하기 때문에 깨어있는 것인지 계속 깨어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늘 아침,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놀라지는 않았다. 2시간 전쯤 오늘 경비원이 아파트를 돌면서 복도식 창문 창호 설치 동의서를 받으러 다닐 거라고 방송이 나왔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야 할 때는 항상 방송이 나왔다. 이곳에서 예기치 않았을 때 문이 열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던 옆집 남자가 또 생각이 났다. 내가 문을 열자, 경비원은 이미 몇 집을 건너 벨을 누르려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 서명 좀.”

마스크를 쓴 경비원이 펜을 내밀었다. 서명 목록을 빠르게 스캔했다. 옆집 여자도 서명을 했을까. 801, 802, 803...

“여기에 하세요.”

경비원이 짚어준 자리를 따라 서명을 하면서도 809호 칸에 눈이 멈췄다. 서명하는 칸에 줄이 그어져 있었다. 공실 표시였다. 대체 언제 이사를 나간 걸까.

“809호 이사 갔나 봐요..?”

“아, 모르세요?”

“층간소음 때문에 이사 갔잖아요.”

“층간소음이요?”

“그 누가 새벽에 찾아오고 그랬던 거 모르세요?”

“그건 알죠.”

“아래층에서 층간소음 때문에 장난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랬구나. 수고하세요.”

아저씨가 대답도 없이 뒤를 돌아 터벅터벅 걸어갔다. 얼마 전에 층간소음에 앙심을 품은 아랫집 남자가 윗집 여자의 집 주소를 채팅 앱에 공유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그 기사가 먼저였는지, 그 사건이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문을 닫고 들어와 새로 단 보조 잠금장치들을 눌렀다. 면 슬리퍼의 솜 충전재가 납작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주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그녀는 여기를 탈출한 걸까. 더 좋은 곳으로 갔을까. 그녀는 거기서도 없는 사람처럼 지내는 법을 배우고 있을까. 그녀는 거기서도 잘 잠들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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