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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Feb 06. 2022

마시지도 않을 차를 우린다

'나는 학생 시절에 어떤 카페에서 포도주를 사 본 일이 있다. 주문을 해 놓고는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술값을 치르고 나오려니까 여급이 쫓아 나오면서 왜 술을 안 마시고 그냥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말이 없어서 그 술빛을 보느라고 샀던 거라고 하였다.' - 피천득, 인연 중


와인을 마시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 위해 사는 사람이 있을까?

최근 어떤 영화를 보다가 '마시지도 않을 차를 우린다'라는 표현을 듣고 문득 피천득의 이 문장이 생각났다.

마시지도 않을 차를 우리는 것은 차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기 위해서, 향을 맡고 따뜻함을 느끼고 우리는 행위 자체를 위해서 하는 것일 것이다.

와인 역시 꼭 마셔서 취하지 않아도, 그 색깔과 음악과 사람들 속에서 분위기에 취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인생이 꼭 어떤 목적이 있고 기능이 있고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본연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원래의 기능이 아니더라도, 내게 맞는 역할이 아니더라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냥 그렇게 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인생의 1순위 목적과 가치가 가장 중요하며, 그것을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과 선택과 집중을 하며 그 외의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날이 많다.

그것이 입시일 수도 있고, 취업일 수도 있고, 창업과 채용, 투자 유치, 퇴사와 출간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시도하고 모든 것을 달성해 보았을 때, 그리고 모든 것을 경험하고 모든 것을 실패해 보았을 때, 인간은 어떻게 될까? 그 다음 목표 그 다음 가치 그 다음 욕심을 더 부릴까, 아니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는 좀 내려놓고 쉬어야 할까.


나는 내 인생의 목적과 소명에 맞게 잘 살고 있을까? 아님 그런 거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살아지는 걸까?

소명과 다르다고 해서 내 인생이 잘못된걸까, 되는대로 살아도 된다면 인간의 의지는 어디까지 필요한걸까.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에서 정치철학이 발전한 이유는, 철학은 먹고살 걱정 없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노예와 서민들이 열심히 노동을 하면, 할 일 없는 귀족과 엘리트들이 주구장창 정치와 철학을 논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같은 고전이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쓸데 없는 질문을 자꾸 던지는 것을 보니 별로 인생의 거창한 고민 없이, 그야말로 마시지도 않을 차를 우리고 있구나.

그런데 가끔은 차 맛을 몰라도 향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때가 있다.

따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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