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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두나 Jul 09. 2019

#15. 며느리, 그 이름 아래의 당신과 나.

'며느리'란 이름 아래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당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랬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고 자란 세상이 그랬으며 나의 엄마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다른 세상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두 번의 명절을 보내며(한 번은 얌체처럼 넘어갔지만) 생각을 고쳐먹기로 다짐했다. 모든 것에는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 


우리 시어머니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다르지 않은 길을 살아오셨을 것이다. 결혼 전, 우리 집에서 보낸 유기그릇을 받으시곤 "여기에 언제 두나가 해주는 밥을 먹으려나~" 하고 얘기하셨지만(물론 이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날이 오기만을 노리고 계실 수도 있다.) 시어머님은 결혼 8개월 차가 지난 아직까지도 내가 시댁을 방문하면 고기반찬을 준비하시고, 손수 밥을 떠다 주신다. 


날 것을 가리고 육고기를 좋아하는 편협한 입맛을 가진 며느리를 위해 내가 갈 때면 소불고기에 갈비 등을 한 솥 가득 준비하신다. 이 얼마나 사랑인가. (심지어 우리 집에서는 집밥을 보기가 어려운데(부모님이 자영업자이심) 이 나이에 남의 집에 가서 손수 준비한 밥상을 받자니 여간 감동이 밀려오는 게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더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쉽게 돌파하지 못해 그 마음을 삼키는 날이 더 많다. 미안하고 죄송하나 또 시어머니란 존재는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나 나 역시도 이 관계를 꽁(?)으로 먹고 있지는 않다. 


시부모님을 만나는 주말이면 일요일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한 뒤 돌아온다. 가톨릭 신자가 교회를 언제 가봤겠으며 그 예배 분위기가 익숙할 리가 있겠는가. 심지어 이 교회는 예배시간도 길다. 평균이 1시간 반. 그럼에도 나는 '며느리'라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함께 기도문을 외우고 노래를 부른다. 교회분들의 인사에도 웃으며 대답한다. "오랜만에 뵙죠~?" 왜 더 자주 오지 않냐는 말에는 웃고 넘어간다. 저도 먹고는 살아야죠, 라는 말은 삼킨다.


또한 때에 맞춰 일, 이주에 한 번씩 전화를 드린다. 사실 안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웃어른에게 안부인사를 드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할 말도 없거니와 '언제 오니?'라는 말에 대답할 변명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부담스럽다는 것을 '며느리'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초반에는 안부인사를 카톡으로 보냈더니 대답을 안 하셔서 나중에 물어보니 원래 카톡엔 대답을 안 하신단다. 허허. 결국 남은 연락수단은 전화. 내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 그 연락들이 성에 차지 않으신지 시댁에서는 비버씨만 보면 매번 내 안부를 묻곤 하신단다. "얘는 왜 연락이 없냐?"라는 말이 시작이다.


저런 말을 들을 때면 단전 깊은 곳부터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으나, 별다른 방법은 없다. 인내하고 참아내서 이겨내는 수밖에.


그 외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시부모님이 원하시는 그림은 아마도 근처에 살며 평일이고 주말이고 살갑게 만나 같이 교회도 가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는 게 꿈이 아니시겠냐만, 나는 부모님 하고도 그럴 시간이 없는 게 현실. 따라서 나는 3개월치 일정을 미리 세워 계획하고, 그 계획에 맞춰 시댁을 방문 시에 맛있는 외식, 필요한 선물들을 드리는 것으로 나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물론 이건 내가 직장인이고 돈을 벌고 있다는 조건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곰두나'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맞춰드리기 위해 노력한다. 더불어 이것들은 굳이 따지자면 '며느리'로서의 행동이 아닌 '자식'된 도리로 하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정말 명절, 또는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 며느리가 갖춰야 할 도리가 따로 있는 걸까?


'며느리'가 아닌 '자식'이기에 갖춰야 할 도리와 마음이 필요할 뿐. 며느리라고 해서 별 달리 갖춰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없다. 생각해보라, 세상 어디에 '사위'로서의 도리를 따지는 글과 이야기가 있던가. 사실 모든 관계는 피를 통하지 않은 이상 '남'과 다름없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붙이면 '남'이 되는 세상이다. 나도 비버씨와 결혼하여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가족이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남일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비즈니스적 관계'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것을 비즈니스, 일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진다. 시어머님은 나의 상사이고, 나는 그 밑의 부하직원. 상사님이 말씀하는 것에 할 수 있는 것은 노력을 하되 불가능한 것은 거절한다. 종종 아부도 떨고 귀여운 짓도 하며 옆에서 촐랑촐랑거리다 상사님이 하사하시는 포상에 기뻐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일에 '마음'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가 될 것이다. 부담감을 빼고 좀 더 편하게 상대를 받아들이면 더 좋다는 말씀. 


단, 모든 일에는 중도가 중요하고 거리감 역시 중요하다. '딸 같은 며느리'는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렇기에 나를 비롯하여 당신 또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부모님과 마주하면 좋겠다. (특히나 이건 나 스스로에게도 되뇌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에게, 이심전심 파이팅을 외치며 부디 당신의 고부관계 비즈니스도 성공적으로 지속되길 기도하겠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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