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설날 아침이 되었다.
나는 전날 "몇 시에 일어날까요 어머님?"하고 질문했고, 시어머님은 8시쯤이면 된다고 하셨다. 이전, 비버씨 방이었던 공간에서(과거형이다. 지금은 창고가 된 지 오래다.) 좁디좁은 슈퍼싱글에 낑겨잔 우리. 원래도 잠자리가 바뀌면 선잠을 자는데 심지어 침대까지 좁다 보니 결국 시간마다 깨서 폰을 봤고 결국 5시쯤이 돼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눈을 떠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자 6시. 그리고 주방에서 계속 들려오는 소리. 여러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가 벽을 타고 방으로 들어오자 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가야 할까, 모른 척하고 그냥 있을까.'. 잠든 비버씨를 흔들어 깨워 어쩌지? 하고 물어보았지만 사경을 헤매는 비버씨는 답이 없었다. 약 10분간의 고민 끝에 나도 아몰랑!이라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하지만 7시가 지나서부터는 도무지 그냥 누워있을 수가 없어 부스스함을 가장한 채 방을 나왔다.
"벌써 일어났어?"
시어머님은 내 눈이 밤탱이가 된 쌩얼을 보시고 화들짝 놀라시며 도로 들어가서 자라고 하셨다. (원래도 잠을 잘 못 자면 눈이 엄청 붓는데 이 날따라 또 얼굴이 달덩이만 해졌더라지....) '아무리 그래도 어머님 혼자 어떻게 하세요'라고 말하며 나는 방으로 밀려들어왔고 잠깐 침대에 누워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생각하다 8시가 지나서야 슬금슬금 밖으로 나왔다.
세수를 한 후 방에서 옷도 갈아입고 화장. 이윽고 9시가 넘어 비버씨네 시작은 아빠 가족들이 집에 와서야 음식을 상으로 나르는 것 정도를 했지, 대부분의 일은 도련님과 비버씨, 시고모님과 시어머님이 하셨다. 나는 겨우 숟가락을 차리는 정도였다. 식사가 끝난 뒤 설거지 역시 남편의 몫이었다. 도련님은 뒤에서 커피를 내렸고, 이후 우리는 젊은이들끼리 커피를 마시러 또 도망쳤다. (무릇 명절에 부모와 동행한 20대 젊은이들은 누구라도 도망치고 싶은, 다 같은 마음이 아니겠는가.)
돌아온 집에는 저녁상이 한창이었고 점심과 동일한 패턴으로 식사가 끝났다.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 후식 과일 깎기 시간이 돌아왔을 때, 어쩐 일로 귤이나 포도 따위의 손수 껍질을 까먹는 과일만 있어 나는 또 칼을 들 일이 없었다. 어쩌면 시어머님은 아쉬워하셨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며느리의 칼솜씨를 보고 싶으셨을 수도 있지 않는가.
늦은 저녁을 먹고 일어서기까지 보낸 약 1박 2일.
아니 그보단 조금 더 긴 하루.
남은 밤은 남편 집에서 자겠다며 시댁을 나오는 우리를 바라본 시부모님 눈에는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으나 우리는 그 골목을 나오자마자 박수를 치며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줬다. 비버씨와 나는 늦은 자유를 만끽하며 이태원을 싸돌아다녔고 닭꼬치를 사 먹었으며 밤거리를 싸돌아다니고 그다음 날 나 홀로 G시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시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오래 같이 있지 못해 아쉽다는 말에 웃음으로 대답해드렸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모든 숙제를 끝낸 듯한 기분으로, 시부모님과의 전화를 마친 뒤 그대로 침대에 널브러진 채 잠들었다. 곰두나의 길고 긴 첫 명절이 마침내 끝남을 축하하며- 스스로의 부담감에 잠 못 이룬 밤을 만회하듯이 깊이, 깊이 잠들었다.
+
글을 쓰며 이때가 생각나 비버씨에게 물었다.
나 : "어머님은 나의 저런(음식 만들 때 빠져나가기/눈새 짓 하기 등) 처세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비버씨 : "어떻게 생각하긴, 그냥 우리 며느리는 이런 걸 잘 안 하는구나~ 하시지."
나 : "어... 음... 그래도 돈은 잘 쓰잖아?"
비버씨 : "그래서 그러려니 하시는 듯.
어차피 개념치 말라, 처가에 가면 네가 모든 일을 다 한다고 말했다.
욕을 해도 내 욕을 하시겠지..."
오늘도 현명하고 바람직한 남편상인 비버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