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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l 15. 2023

비뚤어진 수저가 더 좋아




오늘 아침에 인스타그램에 세 장의 사진을 올리면서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마지막 사진은 안 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은 정돈되게 잘 나온 반면 

세 번째 콩국수를 찍은 사진은 수저가 비뚤어지고 물을 흘린 흔적도 있어서다.

인스타그램 같은 데 올릴 목적 없이 찍은 거라 그랬다.


'뭐야, 이 사람 사진 못 찍네.'

'식탁에 물 좀 닦고 수저라도 바로 놓고 찍지, 센스 좀 없네.'


팔로워들이 마지막 콩국수 사진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텐데...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잠시 고민 후, 나는 에라이 세 장 모두 올렸다.



첫 번째 사진_ 내가 내린 커피


두 번째 사진_ 엄마가 잘라준 망고


세 번째 사진_ 엄마표 콩국수



잠시 후 이런 댓글이 달렸다.


"콩국수 사진에서 수저 삐뚤어진 거 오히려 친근해요 ㅎㅎ"


이 댓글을 본 순간 아차 싶었다.


'그래 맞아, 완벽하지 않은 게 꼭 나쁜 건 아닌데,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져서 정이 갈 수 있고, 완벽하지 않았을 때 예상하지 못한 새 매력도 발생하는 건데, 나는 지금까지 완벽한 것들만 보여주려고 참 오래 애쓰고 살았구나.'


정말 그랬다.

돌아보면, 기자 생활 10년을 하면서도 오타가 있을까봐 여러 번 쓴 글을 확인하고(물론 필요한 일이었지만), 

책을 만들 때도 당연히 그랬고, 

브런치나 SNS에 뭐 하나 올릴 때도, 말을 할 때도, 웃을 때도 언제나 내 기준에서

최대한 완벽하고 정돈된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는 뿌듯해했다. 틀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완벽주의 성향이 나를 서서히 단단한 틀에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맨 것 같다.

'틀리지 않는 것'에 너무 오랫동안 초점을 맞추고 살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쉽게 시도해 보는 능력이 떨어졌다.

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안 해본 것에 쓱쓱 도전하는 정신이 약해졌다. 

표정도 예전보다 딱딱해지고 차가워졌다. 늘 긴장하고 사니까.


지금 쓰는 이 브런치스토리만 해도 그렇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브런치를 시작하고 9년 만에 오늘 처음으로 줄바꿈을 해서 글을 써보고 있다.

사소하지만 새로운 시도인데,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이런 시도조차 지금까지 못 했던 거다.

소재 역시 거의 처음으로 일상적 소재로 글을 써보고 있다.


얼마 전엔 유튜브도 시작했다.

편집기술을 어느 정도 배우지 않고서는 시작하지 못할 거란 생각을 버리고

숏츠 형태로 짧게 찍어서 올려보고 인스타그램에 릴스로도 올려 보고 여러 실험들을 해보고 있다. 

완벽과 전혀 거리가 멀다.

아는 사람이 볼까봐 두렵지만 그래도 해보고 있다.


이렇게 나를 바꿔가고 싶었다.

이상해도, 어설퍼도, 퀄리티가 낮아도, 조악해 보여도.

겁 없이 덤벼보는 광기를 장착하고 살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완벽을 추구하며 살 때보다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사실 예전에도 유튜브를 몇 번 찍어봤는데

뒤에 배경으로 나올 책장 정리를 싹 하고, 지저분해 보일 물건도 치우고

각 잡고 정돈을 해서 찍었다. 

하지만 이번엔 뒤에 침대가 나오는 배경으로 그냥 편하게 일상적인 모습 그대로 찍었다. 

베개가 보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내 말투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예전에 찍은 걸 보면 무슨 TV 쇼 진행하듯이 아나운서 말투였는데

'대충 해보자' 마인드로 바꾸고 찍으니까 뜻밖에도 말과 표정, 몸짓에 

리듬과 생기가 돌았다. 명랑해 보이고 더 의욕 있어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나씩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행동들을 의도적으로 해나가면서 

나는 해방감을 맛보고 있다. 

우산을 접고 빗속으로 첨벙 뛰어든 것 같달까.


가수 이적이 이런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 있다. 



완벽하게 소매 끝 하나 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살 때는 몰랐던 자유.

그걸 좀 더 느껴보려 한다. 그리고 진짜 자유로워지려 한다. 

빗물에 바지 밑단, 등짝, 신발... 하나씩 내어줘 볼 생각이다.

건조했던 내 삶도 조금씩 촉촉해지지 않을까. 

촉촉을 넘어 축축이 되고 홀딱 젖어도 뭐, 상관없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젖는 기분'이 뭔지 경험할 수 있게 될 테니.

그것 역시 새 자산이니까 말이다.


발이 꼬이면 그게 탱고고, 

많은 목숨을 살린 페니실린도 실수로 열어둔 배양접시에서 푸른곰팡이가 생기면서 발견한 거라고 하지 않나.

완벽하면 실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실수를 하기 위해서 완벽함을 버리려 한다.

실수 때문에 새로운 걸 발견하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간이 되고 싶으므로.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실수를 할 수 있다면 밤에 잠들 때 뿌듯할 것 같다.


드루와!

실수!

실패!

시행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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