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MUST COM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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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당시 나는 퇴사를 하고 브런치에 올인했다. 그때 브런치는 론칭한 지 석 달 정도밖에 안 된 신생 플랫폼이었지만 내겐 확신이 있었다. 이걸 해보면 되겠다고. 이 확신은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당신의 글이 책으로 출간됩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사기꾼 입발림 같은 설레발 문구가 웬일인지 나를 사로잡아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당선돼서 작가가 되어야겠다, 이 일념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글을 써서 하루에 두 개씩 브런치에 올렸다. 하루하루가 행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게임에 중독된 사람처럼 글 쓰는 맛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석 달을 하고 브런치북 금상에 당선됐고, 이듬해 3월 나의 첫 책 <나를 지키는 말 88>을 출간했다. 그렇게 나는 작가로 데뷔했다.
당시를 행복했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지만 사실 절박함의 똥줄도 대단했다. 브런치북 공모를 위해 회사까지 그만둔 백수가 돈 벌 궁리를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당선될지 안 될지 모르는 브런치북인가 뭐신가 하는 것에 몇 개월을 매달린 건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용기였다. 그러나 2015년의 내가 옳았다. 인생에 한 번쯤은 설레발 같은 꿈 하나에 모든 걸 걸고 자신을 갖다 바치는 것도 근사하지 않나.
그리고 8년 후.
2023년 7월, 나는 그때처럼 다시 퇴사를 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브런치에 돌아오려 한다. 2016년 3월 내 첫 책이 나오던 그 달에 한 언론사에 입사해서 8년을 쭉 다녔고 그 회사를 며칠 전에 그만뒀으니 8년 만에 다시 백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2015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순수혈통의 찐 백수였고, 지금은 정통 백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새 내게 착 붙은 작가라는 타이틀이 찐 백수의 자격을 박탈했으므로. 브런치북 당선 이후로 나는 꾸준히 책을 썼고 지난 5월 나온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나 타고 다닐걸>까지 해서 총 네 권의 책을 출간했다. 작가라는 정체성은, 회사를 관두면 사라져 버리는 기자라는 타이틀과 사뭇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나는 직장과 상관없이 여전히 작가일 수 있음에, 어떻게 해도 다시는 찐 백수로 돌아갈 수 없음에 행복하다.
각설하고, 이 돌아온 탕자는, 너무 오랫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
이전 언론사 생활까지 합해 10년 동안 기자 일을 하면서 7천 개 정도의 기사를 썼다. 토해내듯 쓰고 또 써 내려간 10년의 멈춤 없는 아웃풋. 오후 6시까지 밥벌이로 내내 기사를 작성하고, 퇴근해서는 자아실현을 위해 내 책 원고를 쓰다 보니 브런치에까지 글을 올릴 시간과 체력이 자연스럽게 줄었고, 한때 죽고 못 살던 브런치는 그렇게 내 인생에서 조금씩 흐려져 갔다. 그럼에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브런치 라이킷 확인, 새 구독자 확인, 댓글 확인, 통계 확인을 하고 종일 시시때때로 이 확인을 반복하는 습관은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다.
사실 지금까지 아예 브런치를 방치한 건 아니고 기사로 쓴 인터뷰 글이나 노래 가사 리뷰 등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옮기는 '최소한의 양심 업데이트'는 해왔다. 하지만 그런 생명연장 목적 말고 이제는 2015년 그때의 열정! 열정! 열정!으로 다시 브런치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보고 싶다.
사실, 나라는 탕자는 브런치에 회의감을 느낀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 유튜브와 달리 수익화가 안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글로써 생계를 유지하며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가는 걸 목표로 해왔던 나로서는 그랬다. 애드센스를 붙여서 광고비를 받을 수도 없고, 브런치에서 이룰 수 있는 건 결국 출간인데 네 권의 책을 이미 출간한 나로서는 근래에 브런치에 글 쓸 동기부여가 잘 안 된 것이 사실이다.
이랬던 내가 다시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
이상하게도(!) 여전히 울리는 라이킷과 댓글 알림의 미스터리가 그 이유다. 브런치 알고리즘과 시스템 원리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하고 신기한 건 브런치는 다른 플랫폼과 다르게 예전 글도 잘 읽힌다는 점이다. '좀 더 완벽해지면 글을 쓰겠다는 당신에게', '나를 잃었을 때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다', '악플이 달려도 나는 계속 쓸 겁니다' 등등 내가 2021년에 올린 글들이 여전히 활발히 읽히고 있고, 매일 이 글들에 라이킷과 댓글 알림이 울리고 있다. 더 이전 글들도 마찬가지다.
아, 브런치에서는 내 글이 휘발되지 않는구나!
여전히 사람들이 내 글을 소비해주고, 잘 읽었다고 댓글로 마음을 전해오는 걸 보면서 내 글의 효용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다시 이곳에 글 쓸 동기가 살아났다. 물론 여전히, 프리랜서로서 밥벌이를 해보려는 지금의 나는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처럼 대중적 SNS를 성장시키는 데 1분이라도 더 쓰는 게 맞는 게 아닐까 헷갈린다. 하지만 브런치는 뭔가 다른 게 있다. 수익이나 인플루언서로서 명성 그 이상의 것이 확실히 있다.
내가 이 플랫폼으로 무엇을 얻을까 하는 계산을 떠나서 '순수하게 쓰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실 브런치는 가치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이상하게 쓰는 맛이 덜 난다. 덜 솔직해지고, 덜 묵직해진다. 브런치를 통해 다시 순수하게 글 쓰던 때, 글 그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기사를 써야 하니까, 새 책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니까, 부탁받은 기고를 줘야 하니까 쓰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찰랑거리는 말들을 밖으로 해방시켜 주려고 글을 쓰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8년 전, 브런치의 정갈한 빈 화면을 볼 때마다 간질간질 울렁거리던 때로
나 다시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