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붙여두는 기억 한 조각
어릴 때부터 유난히 무언가를 모으는 걸 좋아했다. 소소한 물건에 대한 집착이라면 집착이고, 애정이라면 애정일 수 있는 습관인 것 같기도 하다. 내 기억 최초로 무언가를 모으기 시작한 물건은 엽서였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떨결에 디즈니의 캐릭터들로 이루어진 엽서 패키지를 손에 넣게 되었다. 어릴 때였지만 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는 뭔가 메리트가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무언가 쉽게 구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물건을 처음으로 소장하게 되면서 수집이라는 것에 발을 들인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학교 근처 모닝글로리나 알파, 아트박스 따위를 돌며 새로운 엽서가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매주 체크했고 그렇게 엽서들은 얇디얇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천천히 늘어났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무언가를 모을 기회는 조금 더 많아졌다. 좋아하는 가수가 생겼고, 매일같이 함께 등교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가수의 앨범이나 친구들과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묶어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당시 좋아하던 어느 웹툰* 작가가 사용한다는 스타일의 다이어리를 구해 빼곡하게 일기를 쓰고 사진들을 붙이고 관람한 영화 티켓들을 붙였다.
당시의 웹툰은 요즘의 포털에서 웹툰을 제공하는 형식이 아니라, 웹툰 작가들이 각자의 웹사이트를 직접 구축해 홈페이지 형식으로 운영하던 때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웹툰 작가가 두 명 있었는데 하나는 '이다(2da)'라는 캐릭터를 필두로 하는, 뭔가 비뚤어진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담은 작가와 '성게군'이라는 캐릭터를 메인으로 하던 '마린블루스'라는 웹툰이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서 여러 웹툰을 포털사이트에서 모아 보거나 정식으로 연재를 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지만 당시에는 해당 사이트를 매일매일 직접 찾아 들어가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아두던 물건과 소품들은 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는데, 이대로 보관을 하다가는 내 소중한 추억들이 흩어져버릴 것만 같아서 (이사하다가 잃어버렸다는 그 흔한 얘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아서) 커다란 박스 하나를 사다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 소품 박스는 지금도 가끔 열어보는데, 학창 시절의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담긴 다이어리를 열어볼 때마다 소름이 끼치곤 하지만 그마저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함마저 들곤 한다.
이렇게 소품 박스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추억이 있다면, 전시해놓는 추억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냉장고에 붙여두는 마그넷과 진열장에 쌓여가는 스타벅스 머그컵이다. 예전에는 여행지를 갔을 때 기념품샵에서 팔던 냉장고 자석에 큰 관심이 사실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조악해 보이는 낮은 퀄리티에, 집에 가져온다고 해도 특별히 냉장고에 붙여두지도 않고 결국에는 쓰레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아무리 조악한 퀄리티라도 내가 방문한 그곳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값을 불문하고 사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마그넷은 가격대로 그리 높지 않아서 평균적으로 5천 원 내외로 구매할 수 있다는 큰 장점도 있다. 가격이 비쌌다면 모으는 것도 주춤 했겠지만 커피 한잔 가격으로 그 장소를 추억할 수 있는 소품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장점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모아 온 마그넷들이 벌써 냉장고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어딜 가든 기념품샵에서 마그넷이 없나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의 바람을 사람들이 들어준 것인지(?) 다행히도 최근에는 기념품을 만드는 곳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높은 확률로 마그넷을 만날 수 있고, 사찰이나 종교시설뿐 아니라 독특한 주제로 운영되는 각종 박물관 등에서도 마그넷을 판매하고 있다. 나 같은 참새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얼마나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만들었는지, 입장권과 별도로 지갑을 열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이번 제주 여행에서 구입한 마그넷이 열댓 개가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하나씩 뜯어보며 '그래, 우리 여기도 갔었지!' 라며 냉장고에 하나씩 자석을 붙이는 그 재미를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그렇게 나는 신혼여행으로 떠난 칸쿤도, 휴가로 떠난 시드니도, 지금 와있는 제주도도 모두 마그넷에 담아 가려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마그넷도 마그넷이지만, 또 하나 중요하게(?) 모으고 있는 게 바로 스타벅스 머그컵이다. 뭔가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 사람들 중에 꽤나 유행하고 있는 수집품 중에 하나인데 사실 그렇게 다양하게 모으지도 못했다. 주로 시티 머그라고 불리는 이 머그컵들은 해당 국가와 지역의 스타벅스 매장을 가거나 해당 국가의 공항에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인데 내가 해외에 나갈 일이 얼마나 있다고 그 많은 국가와 지역들의 머그컵을 모으겠느냔 말이다. 그렇다 보니 머그컵은 내 의지로 직접 모은 것보다는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의 힘을 빌려 모은 것들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마그넷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모으고 있긴 한데, 그럼 모으는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말도 더러 듣긴 하지만 그럼 뭐 어때, 모아져 있는 모습을 자체를 보는 게 좋아서 모으는 건데. 모으는 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냥 모아지는 걸 보는 행위 자체가 좋을 수 도 있다. 나처럼.
어쨌든, 나의 마그넷 수집은 여전히 멈추고 있지 않고 있고 또 새롭게 찾아갈 어떤 곳에서 마주할 귀여운 마그넷들을 떠올리면 제주뿐 아니라 모든 여행이 즐거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