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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 Apr 06. 2022

보고 담아두고 그리기

드로잉의 문장


#1. 보고 담아두고 그리기


드로잉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그리려는 대상(피사체)의 모습을 바라본 뒤 잊어버리기 전에 종이에 그리는 것입니다. 보고, 그리기. 그 과정이 우리의 몸을 거치게 됩니다. 몸에 잠시 담아둔 이미지가 종이에 그려지는 것이죠. 다시 눈으로 보고, 몸에 담아두고, 종이에 그리는 것이 드로잉의 과정입니다. 이 사이에 ‘생각하기’는 없습니다. 드로잉을 할 때 손은 마치 기록하는 지진계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눈으로 입력된 신호를 따라 손은 고스란히 종이에 전사하는 지진계처럼. 진동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기록하는 것이죠. 


드로잉 하는 순간에 여러분은 어디를 주로 보나요? 만약 대상을 관찰하는 시간보다 종이를 보는 시간이 길다면 머릿속에 아는 지식대로 그리게 됩니다. 대상을 다 이해하지 않고 그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드로잉이 끝날 때까지 ‘아직 다 모른다’라는 호기심을 잃지 않고 관찰합시다. 개성적인 그림은 진솔한 관찰 이후에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매일 가능하면 현실과 자연에 있는 대상을 찾아서 직접 보고 그리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타인이 찍은 사진이나 인터넷에 있는 이미지를 보고 그리게 되면, 타인에 의해 편집된 시선과 가공된 이미지를 답습할 뿐입니다. 보고 담아두고 그리는 드로잉을 통해 ‘아는 만큼 보인다’보다 ‘그린 만큼 보인다’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드로잉 입문자 가이드


1. 긴선으로 그려본다.

2. 겹쳐서 그려본다.

3. 종이를 보지 않고 그려본다.


초보자는 선이 짧습니다. 아직 눈으로 보고 감각해서 손으로 전달하기까지 낯설기 때문입니다. 손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을 짧게 긋고 종이를 자주 봅니다. 멈칫멈칫 발을 떼지 못하고 자전거를 처음 배우려는 상황과 같습니다. 앞을 보고 페달을 밟아야 하는데 땅을 보고 발을 떼지 못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종이를 봐야 할지 대상을 봐야 할지 시선 처리가 어렵고, 손이 미덥지 못하니 멈칫멈칫 긋게 됩니다. 


페달을 길게 굴러야 바퀴에 속도가 붙듯이, 그리는 대상을 한 번 볼 때 지긋이 오래 보고, 눈에 담은 이미지와 손을 믿고 종이에 선을 길게 그어봅니다. 긴 호흡으로 보고 길게 그어봅니다. 앞을 오래 보며 그리는 손을 잊기 시작했다면 주행에 성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에 정확하게 그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숙련된 작가도 매일 야구선수처럼 배팅을 휘둘러야 정확한 선을 긋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정확한 형태를 자신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리려는 현실의 대상을 작은 종이 안에 들어오기 위한 시행착오는 당연한 과정입니다. 탐색하며 시행착오로 남은 선들을 일부러 지우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머뭇거리고 형태를 더듬어본 선이 겹치면 드로잉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작가가 원하는 형태를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이 그림에 고스란히 남는 것 또한 드로잉의 매력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과 표현에 엄격한 편입니다. 그러나 작가에게 그런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주저함이 심한 사람은 연필과 지우개 대신  돌이킬 수 없는 굵고 진한 재료로 그려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드로잉은 우리가 잊고 사는 ‘보는’ 즐거움을 되살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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