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역. 3호선과 중앙선이 교차하며 강변북로와 내부순환로가 이어져 있는 이 동네는 교통이 참 쾌적하다. 동서남북 어느 곳으로 든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는 덕분에 간헐적인 서울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고요해지고 싶을 때면 안국역에 내려 국립현대미술관에 가거나, 이촌역에 내려 국립중앙박물관에 갈 수 있었다.
나에게 큰 물과 큰 숲에 대한 동경이 있음은 나이가 들면서 더 또렷이 알게 된 점이다. 산내면에 가면 마음이 편한 이유가 그렇고, 속초 바다에 가면 역시 그랬다. 아직은 그런 풍경을 앞에 두고 살지 못하니, 도시에서라도 뒷산의 숲이나 물을 찾았다. 아파트 단지마다 '포레스트, 리버' 라는 이름을 모두 가져다 쓰는 만큼 이런 욕망을 부동산 가치로 담아낸 곳에 도시인들은 자리한다.
횡단보도를 두어 번 건너면 한강에 갈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살 수 있었던 호사는 임대아파트에 당첨된 덕분이었다. 콧대 높이 비싼 신축 아파트 단지의 구석에 10평 남짓 작은 공간. 단지의 가장 바깥에 억지로 지어놓은 동에 한 공간을 배정받았다. 새집이라 깨끗했지만 딱 숙소로 쓰기에 좋지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이곳의 즐거움은 따릉이를 타고 한강에 나가거나 응봉산에 올라 한강을 내려다보는 시간이었다. 일부러 캠핑을 가지 않아도 눈둘 곳에 닿을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았다.
이사를 가게 되며 가장 아쉬운 건 풍경이어서 마지막 주말을 열심히 강변을 걷고 수면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풍경인 듯 하지만 가격으로 사유와 배제가 그어진 서울의 한강이다. 서울숲의 골목은 이제 유원지만큼이나 번쩍거려서 좋아하는 콩나물 국밥만 먹고 씁쓸하게 돌아보았다.
도시계획에 모두를 위한 녹지가 고려되지만 결국 사유화되며 배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세넷의 책<짓기와 거주하기>를 보며 더 선명하게 이해되었다. 그의 문장에는 '영원히 소속될 거 같지 않은 도시인'의 마음과, 그것이 삶의 조건임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의 책을 긴 호흡으로 읽으며 나의 삶을 담고 있는 형식인 도시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사한 곳에서 다시 한강에 닿기 위한 시간과 거리를 재본다. 아마 조금 번거롭게 강변에 도착하여 달리기를 하고, 열기를 식히며 가만히 수면을 바라보고, 다시 무언가를 타고 집에 도착하고 나면 새로운 삶도 적응하리라 낙관해본다.
번번이 매끄럽지 않은 이삿날을 꿀꺽 삼키고,
영원히 소속될 거 같지 않은 도시인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