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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Aug 09. 2023

회복의 자리

베풂과 나눔의 삶

어린 시절,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평범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군대를 다녀온 후 취업을 한 뒤 아빠가 되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웃음이 나기도 할 때가 있다. 결혼보다 부모가 되는 것을 더 우선시했었다니. 아마 어린 시절이라 가능한 꿈이지 않았을까,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가다 보니 그다지 순탄하게 살 때보다는 삶이 내게 내어준 숙제들을 해결하느라 더 힘들 때가 많았지만 그 또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지금은 코로나와 더불어 사는 엔데믹 시대라 하고 전 국민의 90% 이상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항체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불과 내가 창업을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던 그러한 때였다. 사실 나는 내가 내 개인 사업이란 걸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적당히 티 나지 않게 월급쟁이로 사는 것이 마음 편하고 좋긴 했지만 그 시기에는 내가 가진 자격으로는 취업 또한 잘 되지 않았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취업지원사업에도 참여했었지만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하기란 너무 어려운 시기였다.

그렇다 하여 창업은 또 쉬운가.

위험부담으로 따지면 창업이 훨씬 더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금리와 줄줄이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들이 매일 뉴스에 실렸었고 그러한 소식들은 날 더욱 움추러들게 만들곤 했다. 그렇다고 계속 집에서 놀고 있을 수는 없고 이왕 결심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많은 갈등들과 고민들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견디어 냈던 것 같다.

상권이 좋은 곳은 임차료 부담이 너무 커서 엄두도 내지 못하였었는데 감사하게도 유동인구가 많은 자리에 저렴한 상가를 하나 얻어 인테리어부터 사소한 곳 하나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준비하는 기간엔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공급계약을 비롯하여 세무적인 문제, 향후 재무적인 문제까지도 평소에 해왔던 일이 아니기에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여의 준비가 끝나 오픈식날 아침 그 기억들과 수고들이 떠올라서였을까. 첫 손님을 맞기도 전에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보내왔던 지난 시간들과 사업장을 오픈하기까지 받은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마음속을 어루만지듯 슬픔과 감사함이 공존하는 그러한 일종의 양가감정이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회복되기를



내가 사업장을 준비하며 바랐던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어쩌면 바보 같을지 모르지만 많은 돈도, 명예도 아니었다. 내가 많이 아팠기 때문에 적어도 이 사업장에 오는 사람들 중 몸이 아픈 이도, 마음이 아픈 이도 있을 것인데 그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사업 아이템도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으로 정하였다. 대체로 어떠한 오프라인 매장을 가면 꼭 무언가를 사야만 할 것 같고 그 부담감에 제대로 된 물품을 사지도 못한 채 그냥 나오는 경우도 많고, 불필요한 것을 사기도 하고 그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 경우엔 그런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손님들에게 최대한의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 친절히 필요한 설명만을 하려 하였던 것 같다. 그러한 내 모습을 보며 주변으로부터 매장에 온 손님들에게 구매하는 제품보다 더 많은 사은품을 준다며 핀잔을 정말 자주 들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내가 처음 품었던 초심처럼 우리 매장엔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보다 넋두리하러 오시는 손님들이 더 많은 편이다. 가족들에게 받았던 상처들, 가까운 지인에게 하기 힘든 이야기들, 살아가며 누군가에게도 꺼내기 힘들었던 속이야기들. 

그러한 이야기들 듣고 있노라면, 지난 내 아픔들과 병원에서 근무했을 때의 경험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 당시에 환자들의 말을 경청하는 법을 배웠었고,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었고, 마음을 전하는 법을 배웠었던 모든 경험들이 이렇게 사용되는구나, 하고 말이다. 살아가며 배우는 것 중에 결코 헛된 것은 없다. 다만 배운 것이 사용되는 시기가 각자 다 다를 뿐이다. 

물론 넋두리하는 손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몸이 아파 오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오래된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혈액순환이 되질 않아 부종과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손님, 관절염으로 오랜 기간 절뚝거리던 손님, 면역력이 약해 호흡기가 약한 손님 등 다양했다. 그런 손님을 마음으로만 대하기란 어려웠다. 끊임없이 해당 질환을 공부하고 병원에서 일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복용 중인 약과 최대한 겹치지 않으면서 효과를 낼 수 있는 제품을 찾기 위해 계속 공부에 공부를 거듭했고 어느 날인가부터 얼굴빛이 참 기적이라 말할 만큼 증상과 불편함들이 많이 개선된 손님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뿌듯함과 감사함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웠다.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큰 위험부담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은 내게 많은 가르침을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첫째. 마음과 마음은 서로 전해지고 이어진다는 사실.

둘째.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줄 때 사람은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것.

셋째. 마음의 상처만큼이나 몸의 상처도 회복되기 위해 시간이 소요되며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어쩌면, 사업가로서의 나는 좀 부족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사람들의 얼굴의 밝아지고, 행복해하며 문을 나서는 것을 볼 때면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살아가는 데에 부족함 없이 필요에 따라 채워짐을 경험하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삶.

미래의 내가 이 사업장을 통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내일 날씨도 예상되지 않으니. 그러나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있어서는 축복과 같은 삶이라 생각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신념이 다르기에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본질은 베풂과 나눔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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