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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Aug 16. 2023

자본주의 너머의 시선

가장 강력한 위로는 희망과 사랑이다.

광복절 휴일.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매장과 집을 출퇴근만 하는 나로서는 얼마만의 사적인 외출인지 기억이 아득할 정도였다. 마땅히 갈 곳도 없었고 날씨도 너무 좋긴 했으나 으악할정도로 뜨거웠기에 시원한 곳을 찾아 무작정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가다 보니 언제 가봤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백화점이 보였다. 딱히 필요한 건 없었지만 내 또래의,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주차를 하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정말 놀라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멈춰졌다. 백화점 메인 로비 중앙에서는 여름 이벤트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고 내 눈에 보이는 모든 매장들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여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분명 뉴스만 봐도 아니, 실제로 요즘 물가 오르는 것만 해도 사실 텅 비어있는 백화점을 상상했었던 내 상상은 순식간에 깨어지고 놀라움이란 감정이 찾아왔다.

비단 일반 매장뿐만이 아니었다. 잡화 하나에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관에도 사람들이 가득했었고 실제로 그 제품들을 사던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내 마음 한 편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정말 경제적인 여유가 되어 사는 것일까.'

그러한 사람들이 잘못되었다, 잘했다,라는 비판이 아니라 정말 궁금했다. 인터넷 기사를 보아도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가방을 사려, 신발을 사려 밤을 새우며 줄을 서 기다리던 흔히 '오픈런'이라는 그 기사들 속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타인에게 자신이 뒤쳐지기 싫은 욕심일까, 아니면 자신을 가꾸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까.


'자영업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제품 시착을 해보고 가격을 물었을 때(제품들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각 매장 직원들이 말해주는 가격을 듣고 난 뒤에는 에어컨 바람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순간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돈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그러한 제품들을 살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제품 가격을 알려준 뒤 해당 직원이 제품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이 제품을 사려면 나도 매장에서 이 정도는 판매를 해야 하고, 아 이건 이런 식으로 행사를 들어가면 좋을 것 같고, 아 그 제품은 묶음으로 판매해야겠다.' 등의 우리 매장 제품들을 어떤 식으로 판매해야 할 지에 대해서만 생각했었고 고민했었던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별 수 없는 자영업자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매장 직원이 나에게 그러했듯이 어떻게든 제품을 파는 것에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자본주의 사회이며 그 사회에 속한 우리에게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돈은 권력과 명예 등 많은 모습들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이 분명하다.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고, 주거공간을 비롯하여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영위할 수 있다. 뉴스 기사를 읽다 보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다수의 사람들, 가슴 아픈 안타까운 사고들 모두 이러한 자본주의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 또한 많다고 생각한다. 또한 뉴스 기사에 다 드러나지 않는 자본주의의 민낯 또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삶이 어렵고 팍팍하여 겨우 버티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게을러서, 일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12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일하고 투잡, 쓰리잡을 뛰며 살아가는데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 사회는 거대한 짐을 얹어준 것처럼 그 팍팍하고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 끝나지 않는 건 왜일까. 언젠가 누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진다.'

문득 그때의 그 말이 이제야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본주의, 그 너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그 돈이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남들 퍼줄시간에 팔아야지."

"너부터 좀 생각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줄곧 들어온 이야기들이다. 결코 내가 착해서도, 내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나에게는 나만의 신념이 존재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참으로 아이러니한 신념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매장을 운영하지만 어떻게든 많은 수익을 내려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을 더 행복하고 베풀 수 있음에 감사한 것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나이가 조금씩 찰 수록 깨닫게 된다. 내 몸 하나 가누고 내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많은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 그럴 수 있을까. 이건 내 능력 밖의 문제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 이상으로 나는 누군가가 힘든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더 괴롭다. 누군가는 이를 감정과잉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베풀 수 있다면,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내 삶이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태어나 살아가며, 죽을 때도 아무것도 짊어지고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려운 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꾸준히 나눠주고 살아가고, 내 욕심을 내려놓고 빚진 자가 아닌 나누는 자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강력한 힘에서 벗어나 베풂과 나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진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위로는 사랑과 희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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