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사람에 대해 이해해 가다.
무더운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날.
'월요병'
직장인이라면, 사회생활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매주 겪는 증상.
더운 날씨에 무언가를 잘 못 먹었는지 주말 내내 위경련과 복통으로 고생을 하고 난 뒤, 감사하게도 월요일인 오늘 컨디션이 상당히 회복되고 위경련 증상도 많이 줄어들어 다행이다, 싶었다. 게다가 날도 화창했고 거실 커튼을 타고 흐르는 듯한 하늘 위 구름 위의 풍경이 마음을 다소 설레게 하였던 것 같다.
출근하는 길, 차에서 흐르는 잔잔한 음악과 다소 붐비는 도로였지만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 감사했다. 이 더위에 대중교통으로 출근해야 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매장이 위치한 상가 건물은 조금 노후한 편이라 자체 주차장이 없어 주변 인근의 골목에 주차하는 편인데 오늘따라 유독 많은 사람들과 건설 설비들이 즐비하고 있어 공사를 하는 건지, 건물 수리를 하는 건지 갸우뚱하며 잠시 차를 세워두고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나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차 앞에서 촬영을 하는 것을 보았다. 공사 관계자인가 싶어, 오늘은 차를 다른데 주차를 해야 하는가 하며 10여 분간의 통화를 마치고 내려 내 차를 촬영한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무슨 공사가 있나요? 잠시 통화하느라 정차하고 있었는데 차를 빼드리는 게 편하실 거 같아서요."
그런데 돌아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여기 불법주차 구역이잖아요. 신고하려고요. 그래서 찍었어요."
"네? 전 통화 중이라 잠시 세워두고, 저 안에 있는 거 보셨잖아요."
그 말을 하자마자 찰칵소리와 함께 다시 내 차량의 사진을 찍었다.
"여기 노란 선 있잖아요. 신고하려고 찍었다고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신고하겠다는 사람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휑하고 사라졌다.
무엇이 세상을 이리 각박하게 만들었을까.
알고 보니 불법주차가 아니더라도, 그 구역에 5분 이상 정차를 하면 과태료 부과대상이라는 것을 구청 직원과의 통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사진 한 장이 아닌 두 장이 필요했고 그 무더위 속에서도 내가 5분 이상 정차하는 것을 포착하려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기분 좋았던 출근길 내 모습이 초라할 만큼 속상함이 밀려왔다. 과태료는 둘째 치더라도 그렇게까지 해서 그 사람이 얻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까지 하는 것일까. 잠잠하고 설레었던 마음들이 속상함으로 바뀌고 나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이 지역은 주차하기가 힘든 지역인 걸 알기에, 주변 주민들이 불편과 고충들을 겪고 있는 것을 알기에 항상 주차를 할 때면 주의했고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지나가는 차량이 불편하지 않도록 나름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동안 여러 번의 과태료를 냈었고 오늘은 심지어 내 눈앞에서 신고하겠다며 촬영을 하는 그 사람을 보니 순간이나마 평정심이 흐트러지고 속상함을 넘어 화가 밀려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난 4월 지역 관할 구청에서만 해당 구간에서만 1,000건 이상의 신고가 들어갈 만큼 주차대란이 있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관할구청이 담당 공무원의 단속이 아닌 안전신문고를 통한 동네 주민들의 제보였었다. 나 또한 과태료를 두어 차례 납부했을 만큼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주변 공영주차장들은 늘 만차였었고 주차 정기권 또한 신청할 수도 없었다. 정말 출근생각만 일 때문이 아니라 주차를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었다.
우리 매장 근처에서 일하시는 약국 약사님, 안경원 사장님, 편의점 사장님 등 그 주변 상가 사람들이 정말 고생스러운 시기가 아니라 말할 수 없었다. 일주일에 6번의 신고에 수입보다 과태료 지출이 많다며 많은 사람들이 어둡고 울상이었던 그 시기는 코로나 못지않게 자영업자에게 있어 치명적이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깊은 한숨과 함께 소파에 주저앉았다.
신고하는 사람을 직접 목격한 것이 처음이어서였을까.
그 무더위에도 신고하려 시간을 재고 기다리던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기 때문이었을까.
아침의 설렘과 출근 후의 속상함이 공존하는 그 시간, 나는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세상을 각박하게 만든 것일까.
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살아가며 사람들은 크고 작게 죄를 짓고 살아간다. 사정이 급박하여 무단횡단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여러 범죄들에 이르기까지. 하나 죄를 일부로 짓고 싶은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 뉴스 기사에 등장하는 묻지 마 범죄의 깊은 내막까지 살펴보면 분명 모든 일의 깊은 곳에는 원인이 있고 그로 인한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 내 마음속에서는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였기는 해도 5분 이상 정차 금지라는 규정이 명백히 있었음에도 그것을 간과한 나의 잘못이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 사람은 그 모습 자체가 불쾌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
내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그러한 일들이 누군가에게 불쾌함이라는 감정을 초래한다면 그 또한 나의 잘못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내가 선하게 살아가려 노력할지라도 그 모든 것이 선이라 표현할 수 없듯이, 분명 그 상황 가운데 나는 나만의 사정과 감정이,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감정과 사정이 그 순간 공존하지 않았을까. 모든 상황에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진 않을까.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때론 그것이 선이 되기도, 악이 되기도 하는 것이 삶의 일부이기에, 매 순간 신중하게 행동하고 옳게 생각하며 판단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며 배워 나아가야 하는 삶의 숙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아직도 속상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직 속상하다 말할 것 같다. 하지만 아침의 그 순간만큼은 아니라고 동시에 말할 것 같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절대적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듬어져 가며 살아갈 때 비로소 누군가의 마음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매장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곤 한다. 가끔은 기가 쑥쑥 빨려나가는 손님을 마주하기도, 되려 내가 위안을 받기도, 내가 위안을 주기도 하며 말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 자신의 다름 또한 존중해 주며 내 스스로를 다듬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 그것 또한 자영업자로서의 할 일 중 하나이진 않을까.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라 전심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건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기에 매장을 운영하며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풀어내야 하는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