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진섭 Sep 04. 2023

나그네의 시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삶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다. 비가 그칠 만하면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며 수시로 울려대는 재난 문자를 정말 많이 받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장마에 피해를 입었던 주민들도 많았었고 안타까운 사연들도 뉴스를 통해서나마 많이 접했으며,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더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거세게 내리던 비바람을 피하던 사람들.

길거리에 사람 한 명 없었던 날들.

바람에 휘날리듯 날아다니던 나뭇잎들.

그 모든 것들이 찰나의 시간 동안 이루어지던 8월을 보낸 후 이번 한 달은 어떠했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유난히도 더웠었고, 비도 참 많이 내렸었으며, 사건 사고도 많았던 올해 여름.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이 시간들은 어떠했을까.



'시름''씨름' 버티다.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자영업자들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소통의 창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의 조언을 나누기도, 속상함을 토로하기도,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자문을 구할 수도 있는 그러한 공간. 업종은 다를지라도 '자영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업종에 관계없이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나도 이따금 한 번씩 들어가 보곤 했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걸까.'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이러한 의문이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들곤 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버티는 게 전부였었던 것 같다. 무더위에 금방 떨어지는 체력, 손님을 맞이한 뒤 숨을 고르던 시간들, '시름시름' 앓듯이 잠들던 시간들이 유독 많았다. 원래도 체력도 약하고 예민한 편이기에 작은 일 하나만 생겨도 밤을 새울 정도인데, 이 시간들을 견디기가 유독 힘들었던 것 같다. 몸살이 친구처럼 따라다니듯 했고, 언젠가부터는 체온 조절도 잘 안되어 에어컨 앞에서도 식은땀을 흘릴 때가 많았다. 해열진통제도 듣질 않았고 결국 몸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귀찮기도 했었고 무슨 큰 일이야 있겠어, 싶은 마음이 컸었기에 아파도 병원에 가질 않았었지만 매장 문을 열 기 힘든 지경까지 와서야 병원을 가게 됐다. 해열진통제도 한계인건지 더 이상 효과가 나질 않았고 고열과 오한은 떠나가질 않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붙들고 병원에 내원하여 원인을 찾기 위해 검사들을 받았다. 모든 검사수치들이 정상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뭔가 찝찝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런데 약을 처방해 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마치 뼈를 때리는 듯한 말이었다.

"몸을 좀 잘 돌봐야 해요. 식사도 제 때 하고, 잠도 좀 잘 자야 하고, 어렵더라도 시간을 내어 운동도 좀 할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우린 때론 작은 것을 놓치고 살아갈 때가 많은 것 같네요."

몇 달간의 내 모습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갔었던 것만 같았다.

'매장에서 밥을 먹으면 혹여 음식 냄새라도 날까 싶어 하루 종일 굶던 나.'

'화장실 간 사이에 손님이 오면 어쩌나 싶어, 물도 거의 마시지 않던 나.'

'잠을 못 이루는 날이면 출근을 못할까 싶어 아예 잠을 자지 않던 나.'

매장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건강을 그리 강조하고 때론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 싶을 만큼 잔소리(?)까지도 하던 나였었는데 정작 나는 나 스스로를 돌보고 있질 않았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아이러니컬한 상황인가. 정작 내가 무너져 내리면 매장이고 뭐고 의미가 없는 것인데 그 당연하고도 중요한 걸 나는 놓치고 있었고 그러하니 '시름시름' 앓다가 나 자신과 '씨름'을 하듯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아니,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



100세 시대란 말이 무색할 만큼 요즘은 그 이상의 시간들을 살아가야 할 만큼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고 한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00세까지 산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었지만 그만큼 건강을 관리하고, 몸을 돌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요즘은 정년퇴직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제2의, 제3의 삶의 여정들이 우리들에게 주어진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하나 누구나 누릴 수 없는 것. 왜일까. 요즘 들어 더욱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은 것 같다. 무언가에 열심인 것과 집착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내 '열심'과 내 '집착'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살아가다 보면 물질, 인간관계, 상황에 따른 대처방법 등 모든 것이 불필요한 것은 없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모든 것은 필요하지만 균형 잡히지 않은 채 어느 하나에 집착하게 될 때 사람은 제 갈길을 잃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매장을 처음 오픈하여 운영을 시작했을 때, 아니 오픈 전 준비과정에서부터 나는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결단한 것이 있었다.

'무조건 좋다며 판매하는 장사치가 되진 않겠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제품만을 판매하자.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손님에게도, 어떠한 법적, 세무적인 측면 등 어떠한 면에서도 정직함을 잃지 말자.'

어쩌면 너무 어리숙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지만 마치 융통성 없이 완고한 이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마저 들곤 한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매출이 올라가고 통장 잔고가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는 조금씩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욕심이 생겼고 어느샌가 물질에 집착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잔고가 조금만 비어도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시 조금 올라가면 헤헤 거리는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다시금 초심을 되새기며 다시금 결단했던 것 같다.

'그래. 어차피 잠시 머무는 인생. 이러한 것에 목매어봐야 큰 의미 없다. 짧은 인생가운데 내가 남겨야 할 것, 아니, 그 삶의 과정이 어떠한 가가 중요한 거야.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니.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며 정작 중요한 작은 것을 놓치고 있진 않은지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봐봐.'


나그네처럼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사람은 태어날 때 옷 한 벌 걸치지 못하고 태어나 그렇게 삶을 시작한다. 모태에 있을 때에야 스스로 호흡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나 태어나면서부터는 스스로 호흡을 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 첫 호흡을 하는 순간이 사람이 태어나며 겪는 가장 큰 난관이 아닐까. 홀로 호흡을 시작해도 보살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스스로 먹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기에 울음소리로 표현한다. 

'나 지금 배고파요.'

'나 지금 졸려요.'

'나 지금 아파요.'

아기의 울음소리에는 이러한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어머니는 그 울음소리만으로도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린다. 배고플 땐 허기를 달래주고, 졸릴 땐 품에 안아 잠을 재워주고, 아플 땐 밤이 새도록 옆을 지키며 아기가 최대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비단 아기만이 이러할까. 성인이 된 후에도,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을 양육하면서도, 노년에 이르러서도 많은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 상황들을 풀어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사람을 성숙하지만 그 시기마다 해결해야 할 과업들이 있고 그 과업들 또한 태어나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들 또한 많다 보니 매 순간 삶이 어렵다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들어가고 필연적으로 삶의 끝을 마주하게 된다. 

유목민들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상황에 따라 철에 따라 주어지는 대로 거하며, 먹고 살아가다 그때가 지나가면 다시 이동한다고 한다. 마치 나그네와 같은 삶이 아닌가. 내 것이란 없는 것이다. 그저 주어짐에 감사하고 떠나야 할 때 망설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것이란 어찌나 자유롭고 아름다운가.

어쩌면 나그네처럼 살아간다는 건 삶에 있어 진정으로 필요한 것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것을 걷어낼 수 있는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의 시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