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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Dec 27. 2022

대학로 단골가게; episode 1

익숙하지 못한 것에 낯섦





대학로를 10년이 넘게 다니다 보니 단골가게가 생겼다.

가게 주인은 몰라도 나만 아는 단골가게도 있고 주인도 나도 서로 알고 지내는 단골가게도 있다. 

단골가게가 되는 기준은 없다. 그냥 내가 가서 마음이 편하면 매주 들리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안 가게 되는 식이다. 


내가 편하다는 기준은 이렇다. 옷가게는 내가 들어가서 옷을 볼 때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가게를 불편해한다. 친절이 불편할 이유가 없겠지만 주인의 친절함은 물건을 꼭 사야 하는 의무감으로 연결이 되는 것 같아서 그렇다. 그렇다고 손님을 소닭 보듯 하는 것도 기분이 별로이긴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쩌란 것인지. 손님의 마음이 이 모양이니 손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가게 주인들의 맘고생도 클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가게는 "편하게 보세요"라는 한 마디와 함께 적당한 거리를 내어주는 곳도 있다. 


몇 번 그렇게 가게를 구경하고 나와도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매주 그 가게를 가는 것이다. 물론 그때마다 티셔츠 하나라도 꼭 손에 들고 나오게 된다. 가끔은 추운 겨울바람을 피할 마음으로 들리기도 하고, 가끔은 쏟아지는 비를 피할 목적으로 가게를 찾기도 한다. 





내가 그 가게 단골이 된 것은 바로 그날부터였다. 

두세 평 남짓한 가게는 공연장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옷가게였다. 매장 앞 옷걸이에 걸린 세일 상품을 책장에 꽂힌 책 고르듯 하나하나 뒤적이고 있었다. 공연 시작 시간이 한참 남았고 세일하는 옷들이 나름 맘에 들기도 했다. 매장 앞 세일코너부터 시작해 옷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게 주인은 "안녕하세요"라며 짧지만 푸근한 인사를 건네왔다. 그리고 그것이 다였다. 사지도 않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나를 두고 열심히 옷을 정리할 뿐이었다. 시간이 되어 가게 문을 나올 때까지 가게 주인은 작은 가게 안 공간을 오롯이 내게 내어주었다. 그다음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나는 매주 대학로를 갈 때마다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그 가게를 들렀다. 


4,5년 동안 내가 입었던 옷들은 모두 그 가게의 옷들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들리기도 했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가게를 들렀다. 공연 시간이 임박해도 그 가게를 거르고 가지는 못했다. 나에게만 유독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종알종알 나와 함께 수다를 떠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가게 주인은 가게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가게 세가 올라 도저히 계속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직 어디에 가게를 열 것인지는 모른다고 하셔서 겨우 연락처만 얻어 왔다. 아주머니는 가게를 열면 꼭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지만 그 후 연락을 받지는 못했다. 대학로 단골 옷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옷 가게가 두세 번 바뀌고 잠시 액세서리를 파는 곳이 되었다가 코로나 팬데믹 2년 동안 거의 비어 있었다. 지금은 또 다른 옷가게가 문을 열었다. 나는 한 번도 그 옷가게는 가보지는 않았다. 그냥 오랜 친구가 떠나고 그 자리에 낯선 이가 서서 나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익숙하지 못한 것에 낯섦은 길었다. 애착인형처럼 온몸에 감각을 공유했던 단골가게가 사라지고 나는 그 골목을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다. 진한 만남도 뭉클한 이별도 없었는데 늘 그 자리에 있던 그것의 부재는 아직 어색하다. 이별은 정말이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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