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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n 28. 2023

커뮤니티 속에 던져진 한 내향인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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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나는 집으로 오자마자 방구석에 박혀 울어 버렸다. 처음에는 찔끔찔끔 새어 나오던 눈물이 한번 터지고 나니 대성통곡의 지경까지 다다랐다. 

- 왜 울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 나 반장 안 됐어. 선생님이 다른 아이를 시키셨어.

학교와 선생님을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하셨던 엄마가 이유 불문하고 담임 선생님께 전화하신 것을 보면 내가 울어도 많이 울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나서야 정확한 상황을 알게 되셨다. 



보통 학기 초에 반장선거를 하는데 그때는 무슨 일인지 선거를 하지 않고 선생님이 지목을 하셨다. 나는 반 1등으로 새 학년이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선생님의 지목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른 아이를 반장으로 지목하셨다. 그리고 책상 의자를 올려놓고 청소를 하려다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물이 터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때 일은 흑백 사진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박혀 있다. 반장 선거를 한다고 해서 꼭 반장이 되는 것도 아니니 터져버린 눈물의 원인은 반장을 못해서 서러웠거나, 선생님의 선택에서 내가 제외되었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던 것일 거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낯을 많이 가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내성적인 지금의 나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남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고, 중고등학교에서는 방송제, 축제 사회를 맡을 만큼 무대를 좋아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내향인의 성향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난 것은 결혼 이후였다. 큰 아이가 신생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학부모회 임원을 맡게 됐다. 옆자리 엄마는 자신이 회장을 하겠다고 손을 들었고 옆자리에 앉은 나를 총무로 지목했다. 그 엄마와 나는 그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났고 인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자 차마 '싫어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학부모회 총무가 돼버렸다. 1년 간의 학부모회 생활은 28년 육아 기간을 통틀어 내가 이런 커뮤니티에 적당한 사람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본격적인 내향인의 삶은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내향인이란 말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으니 정식 표현이 아닌 게 맞다. 아마도 내향(內向, 마음의 작용이 자신에게 향함)과 인(人, 사람)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일 거다. '내향'과 비슷한 말에 '내성적'이란 말이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뜻의 '내성적'이란 표현 역시 '내성'이란 단어에 '적'이란 접두사가 붙어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어쨌거나 '내향'과 '내성'은 단어의 뜻에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의미상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말수가 적으며 타인과 어울리는데 서툰 사람들'을 통칭해서 '내향인'이라 부른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타인과 대면하여 교류하는데 시간이 걸리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내향인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는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온라인은 얼굴을 마주할 필요가 없고 내가 소통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은 왜 나타나지 않을까?'란 호기심을 갖는 사람이 없다. 반대로 내가 등장을 해도 크게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타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을 불편해하는 탓에 온라인 커뮤니티는 세상과 단절되지 않으면서 세상 속에 속해있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내향인인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잘 적응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처음 느꼈던 자유로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또다시 존재감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움츠러들었다. 누군가가 올린 글에 수없이 많은 댓글이 달리고 환호와 박수와 격려와 응원이 쏟아지면 나도 자동반사로 응원과 환호의 댓글을 달고 있었다. 거기에서라도 내 존재를 확인시키고 싶은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말이다. 댓글을 올리고 나면 그 댓글을 괜히 올렸다는 후회가 밀려와 '삭제하기' 버튼을 뚫어져라 보기 일쑤였다. 



거대한 커뮤니티란 공간에 던져진 내향인은 언제 터질지 모른 채 둥실 떠오르는 비눗방울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고 만다. 거대한 커뮤니티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은 뜻하지 않은 소외감을 만들어 냈다. 나는 핸드폰 속에 잠자고 있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사람씩 전화를 해본다. 전화를 받는 사람도 있고 연락조차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1년 만에 연락을 하고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다 전화를 끊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도 오프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나는 부적응자였다. 세상을 등지고 살 수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속하지 않고 '기타 등등'으로 살아갈까? 



카톡 알림음을 껐다. 다른 sns의 알림음도 함께 껐다. 매번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올라오는 사람들의 대화와 소식에 어떤 반응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커뮤니티만이 살길이란 세상에서 커뮤니티를 잠시 꺼두기로 했다. 대신 시간을 정해 들여다보고 댓글을 달고 확인을 하기로 했다. 나는 내 생각과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 소통이 돼야 남과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돌아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니 커뮤니티가 힘든 것은 내향인이어 서가 아니라 내가 나와 소통을 하고 있지 않아서였다. 로그아웃은 '아웃'이 아니다. 로그아웃은 로그인을 하기 위한 준비이다. 로그아웃을 해야 로그인도 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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