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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May 18. 2023

경력단절 5년차 여성의 구직 도전기

나는 간호사다. 신규시절, 대학병원 수술실을 3개월만에 뛰쳐나왔던 간호사. 그 이후로 간호사라는 업에 심히 부담감을 느껴 중소 한방병원을 다녔던 간호사. 그렇게 경력아닌 경력이 3년이 쌓였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과감하게 퇴사했던 간호사. 직장에 매이지 않고 프리랜서로 살고 싶었던 간호사.


그리고 지금은 아기를 양육하는 엄마다.


어차피 자녀 계획은 있었고, 언젠가는 거쳐야 할 일이다 싶었다. 그렇게 아이를 갖고, 낳아, 기르다보니 어느새 아이가 4살이다. 바꿔 말하면, 일을 못한 지 벌써 5년차가 되었다는 뜻이다.


일을 너무 하고 싶다. 그간 집중해온 엄마의 자리를 조금은 내려놓고 싶다. 더 나이들기 전에 무언가 시작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든다. 나보다 1년 늦게 수술실에 들어간 친구는 이제 막내 방장이 되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7, 8년차가 되었고 승진을 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나도 어떻게든 엉덩이 붙이고 버텼어야 했나? 모든 길은 나의 선택이었고, 사람마다 걷는 길이 다르다. 그렇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일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아이는 자주 아프고, 어린이집을 못 가는 날이 생각보다 많다. 그때마다 부모님과 시터를 불러 메우는 방법도 있지만, 이게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심지어 아이가 둘이다. 시터비와 내 월급이 비슷할 듯 싶다. 일을 시작하면서 포기해야 할 것은 돈 뿐만이 아니다. 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랑. 그 모든 것들을 일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남편과 함께 하면 잘 메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두려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아직 젊기 때문이다. 이제 30대 초, 나는 아직 젊다. 20대 때에는 30대가 되면 아주 할머니가 되는 줄 알았다. 이미 20대에 많은게 결정되어서, 30대에는 이미 완성되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하는건 굉장히 어려운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30대인 나는 여전히 20대 시절처럼 미숙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아이를 둘 낳아 기르면서 쌓인 인생 경험치도 있다. 겁이 없어졌다고 할까?


그렇지만 무슨 일을 할 지는 고민이 많다. 이상과 현실의 중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이렇다. 9시부터 4시까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나의 흥미를 끄는 일. 그래서 처음엔 재택 가능한 일을 찾았지만 일을 시작하기엔 나의 능력이 부족했다. 전공을 살려 보건소 계약직 아르바이트나 연구간호사 자리도 찾았다. 하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테마파크나 워터파크는 어떨까? 타이밍이 안맞는지 사람을 뽑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조건을 어찌 다 맞출 수 있을까. 둘 중 하나는 내려놔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이 상태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우연히 오래전 헤어졌던 친구를 만났다. 이전에 함께 일했던, 너무 반가운 친구였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 나의 고민을 들은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너, 그럼 이거 해볼래?"


살면서 이런 제안은 처음이다. 나는 단박에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주도면밀하고 신중하게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는 사람. 때로는 그 신중함에 잡아먹혀 기회를 놓치기도 하는 사람.


페이는? 시간은?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내가 일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필수적인 건 알아야 한다. 친구는 자세한 건 자기도 잘 모르니 물어보자고 한다. '어디에?' 하고 생각한 찰나, 친구는 이미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전화기를 바꿔주었다. 직진도 이런 직진이 없다. 새하얘진 머리를 붙잡고 고용주가 되실지도 모르는 분과 통화를 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내가 원하던 시간에 맞았다. 매일 출근할 필요도 없고 주 2-3회 정도 가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업무는 '강의'였다. 그렇다. 생각지도 못한 '강사직'이었다.


강사라...?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간호사로 진로를 정하기 전에는 선생님을 꿈꿨다. 그 이후론 잊고 살았지만. 근래 시작한 유튜브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에 대한 흥미가 올라가 있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일. 정해진 가이드 없이 비교적 자율적인 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직무는 설렜고, 기회는 무척 반가웠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니! 새로운 경험이 주는 설렘이 한차례 폭풍처럼 지나간 다음, 두려움이 찾아왔다. 


내가? 나 따위가? 누구를 가르쳐? 그걸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겠다고 하고 못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실력이 너무 별로면 어떡하지?


정말로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가늠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너무 두려웠다.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은 했지만 일을 시작할 준비는 되지 않았던 걸까? 그렇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내가 어디서 또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이틀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기회를 받아들여 새로운 시작을 해보기로. 무슨 일이든 한 것은 후회하지 않지만 안 한 것은 후회가 된다. 친구가 만들어준 기회를 잘 살려 멋진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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