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건물 꼭대기 층의 다락방에 산다. 천장의 모양은 지붕을 따라 가운데가 가장 높고 양옆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세모꼴인데 그게 마음에 들어서 방을 본 날 바로 계약한 것이다. 말괄량이 삐삐였나 빨간머리 앤이었나가 사는 방이 이런 식으로 생겼었다. 동화 속 삽화가 그랬던 거였나. 여튼 그런 방에 사는 소녀들은 주로 대찼고 그러나 어느 한 편엔 상처가 있었고 그럼에도 우울로 몰락하지 않았다. 자기 인생에 있어서의 개척자 같은 그 소녀들은 뭐든 하나쯤을 훔쳐볼 만한 크기의 창이 있는 다락방에 살았다.
해의 위치가 맞는 시간에는 빛이 처들어와 낮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밀어내듯이 방 한가운데를 채우고, 밤이면 바람이 저이들끼리 부딪는 소리라든가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며 조심성 없이 재잘대는 목소리가 튀어오르고 잦아들기를 반복한다. 보통보다는 좀 더 춥고 좀 더 더운 여기에는 완벽하지 않은 안락이 있다.
이불을 당겨 안으면 설 익은 밥알 같은 애매한 기분이 되는 그는 풀린 눈으로 자기 방 천장의 경사각을 훑는다. 머리맡에 달린 크지 않은 창문을 떠올리며, 방안에 떠다니는 먼지 한 톨까지도 놓치지 않고 비추던 한낮의 해를 떠올리며, 말괄량이 삐삐인지 빨간머리 앤인지의 주근깨와 리듬감 있는 발걸음을 떠올리며. 나는 다락방에 산다- 는 문장을 생각으로 중얼거린다.
완결되지 않은 편안함, 온전하지 않은 희망. 그런 것들이 다락방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삐삐나 앤이 살기에 적당한 공간이었고 자신이 살기에도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막무가내의 낙관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고 기분 좋아질만 한 의미들을 밤마다 되새기지 않고서는 있던 낙관도 위태해질 때 그는, 나는 다락방에 산다- 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