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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Feb 24. 2020

장류진, <탐페레 공항>편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잊을 수 없는 것



‘나’에게는 먼 타국에 사는 시력이 약한 노인이 있다. 그는 ‘나’에게 언제나 자욱하게 있으며 간헐적으로 선명해진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노인이 내게 물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고 싶다고 했다. 노인은 어쩐지 크게 기뻐했다. 자기도 시력을 잃기 전에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나요?”

“글쎄요. 언제부터였을까요.”

(…)

나는 왠지 모르게 긴장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때만큼은 틀린 영어 문법을 쓰고 싶지 않아 오래오래 문장을 머리에서 굴리다 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왔다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오직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고.     


“사―랑에―빠졌―군요.”

“네, 사랑. 아마도요.>          



‘나’는 현재 식품회사의 경영지원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피디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에게는 ‘장래희망’란에 적을 직업이 아니라 ‘재직 중’인 일자리가 필요했으므로.     


어쩌다보면, 시작점을 찾기 위해 시간을 길게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오래된 꿈’을 가지게도 된다. 오래되었고 여전히 꿈이라는 점에서 ‘오래된 꿈’은 어딘가 처연한 구석을 지니고야 만다. 그런 만큼 진지하지 않기도 어렵다는 것이, ‘오래된 꿈’을 대할 때 불편한 부분이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동안 시간이 흘렀을 뿐이라는 간단한 서술에 비해, 그걸 받아들일 때의 표정은 훨씬 복잡해진다.

꿈을 키우다 보면, 그게 ‘내 인생에서 확실하고 유일한 사랑은 이것밖에 없다’는 식으로 막무가내의 지경이 되어버리는 때가 온다. 그 사랑을 완성해내고야 말 미래의 나를 아주 특별하고 고유하다고 생각한다. 그 일을 하기에 잘 어울리는 복장을 갖춘 나와, 그 일이 이루어지는 시공간 속에 버젓이 한 자리 지키고 있는 나. 그런 것에 심취해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과정’으로 치부하는, 그래, 치부하는 시절이 있다. 그러나 어떤 현실도 ‘과정’에 그칠 수는 없고, 더 정확하게는 모든 현실은 ‘과정’이 되기 전에 우선적으로 ‘결과’이고 ‘현재’이다. 당장의 것이다.

그걸 불현듯 직시하는 때가, ‘멋진 나에 심취한 시절’에 이어서 온다. 숙취의 시간이다. ‘다가올 미래’는 이미 올 만큼 온 것 같고, 이 다음의 미래라고 해서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그런 생각을 억지로 삼키거나 게워내면서, 관자놀이를 문지른다. 나는 아주 보통이고 평범하며 그런 내가 확실하고 유일하게 사랑하는 그것 역시 별스럽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다. 아니, 솔직히, 이제 와서는 사랑 같지도 않은 것이다.


             


<봉투 안에는 나의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노인의 짤막한 손편지, 오로라 사진이 인쇄된 빈 엽서, 그리고 내 사진이 들어 있었다. (…) 나는 책상 옆 두 번째 서랍을 열어 접착테이프를 꺼냈다. 손가락 길이만큼 잘라낸 테이프를 둥글게 말아서 책상 앞 창틀에 오로라 엽서를 붙여두었다. 그렇게 해두면 엽서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편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다음 날 치를 시험은 성적의 칠십 퍼센트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험이었다. 이 과목은 반드시 A를 받아야 평균 학점의 소수점 앞자리가 바뀐다. 편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집중해야 해. 나는 빠른 속도로 엽서를 떼어냈다. (…) 나는 편지 봉투를 꺼내 오로라 엽서를 다시 집어넣고 서랍을 닫았다.>     


<학자금 대출을 완납하던 날에는, 유명하다는 베이커리에서 작은 조각 케이크를 하나 샀다. 방문을 닫고, 불을 끄고, 노트북으로 ‘북극의 눈물’ DVD를 재생했다. (…) 혀끝에 닿은 생크림이 달았다.>


         

‘나’는 노인과 멀어지는 동안 다큐멘터리로부터도 멀어진다. 노인과 다큐멘터리는 어쩐지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그 구역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가 움직인 것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언제인가 꽤 긴 시간 ‘나’를 기쁘게 해준 것은 맞으나, ‘나’는 이제 슬픔을 피하는 일을 급선무로 여기고 있다. 그리하여 기대고 믿을 만한 것은 특근수당이다. 4대 보험, 상여금, 특근 수당, 의료 지원비 같은 것들이 바쁘게 걷고 뛰는 ‘나’를 지탱한다. 그러나 한편 ‘나’는 두렵다. 처음 봤을 때 이미 늙어있던 그가 오늘이 오기 전에 죽었을까봐 두렵다. 어쩌면 그 죽음은 이미 벌어졌다. 그런데 ‘나’는 엽서에 회신을 보내지 않고 오로라 사진을 떼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그의 죽음까지를 모른 척 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다.          


냉소의 허점은, 온전한 채로 지속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어떤 감정과 태도도 온전하기란 어렵고 지속되기도 어렵다. 때문에 온전히 지속되기란 역시나 어려운 법이다. 차가운 것은 왠지 상대적으로 단단해 보이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웬만한 냉소는 무너지는 편이 낫다. 그 점에서 그에게도 범상한 허점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진실에 가까운 것을 의도적으로 모르는 체하면서 쌓아올린 냉소가 길어진다면 늦어지는 것은 후회이다. 후회를 하려거든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안타깝기도 슬프기도 해야 하므로, 냉소와 더불어 넉넉히 후회하기란 어렵다. 중요한 점은, 일어나고 보면 일어나 마땅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들 중 몇 가지는 후회를 마친 뒤에야 시작될 수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노인에게 써야 할 답장을 6년을 미루고. 오로라 따위는 잊어버리려고 6년을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노인과, 오로라와, 진정한 사랑이 본인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했다. 먼 나라의 발광(發光), 시력을 잃어가는 노인, 오로라를 찍으러 꼭 돌아오라던 노인의 격려, 그러니까 ‘나’의 삶에서 오랜 제재였던 ‘다큐멘터리’를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것, 그것들에 냉소로 일관하는 일에, 한마디로 실패한 것이다.               




<Do not bend(Photo inside) 구부리지 마시오 (사진이 들어 있음)     


말 그대로 노파심이라는 게 이런 걸까. 사진이 지구 반대편 먼 길을 거쳐가는 동안 행여나 구겨질까, 노인은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나는 시리얼 상자를 가위로 자르고, 그것을 풀로 사진의 뒷면에 단단히 붙이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얀 밤, 태양이 뭉근한 빛을 내는 창가에 앉아 가위와 풀과 사진 그리고 편지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더듬거리는 노인의 쭈글쭈글한 손을.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구 부 리 지 마 시 오. 마침내였다. ‘나’의 후회가 시작된 것이다. 은퇴한 사진작가의 ‘버젓한 작가 정신’을 맞닥트린 ‘나’는 굉굉한 기분에 휩싸인다. 진실을 외면하던 마음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되는 순간이다. “글씨를 힘차게 쓰던 용감한 한국의 숙녀분께”로 시작하는 편지를 다시 읽어내려가며 문장들의 획수만큼 울음을 터트린다. 후회는 절절하게 이루어지고, 곧이어 후회를 마친 뒤에야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시작된다. 노인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그런 기회를 찾아낸 것이다.


‘나’가 눈물을 주섬주섬 닦으며 6년 된 편지에 답장을 쓸 때, 나는 그가 오로라를 찍으러,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것을, 여하튼 무엇이든지를 찍으러 다니는 장면을 상상했다. 노인은 아득하지만 분명한 곳에서 늦잠에 빠져 있고, 핀란드의 오로라가 내뿜는 광은 황홀할 것이고, ‘나’는 경제적 궁핍의 내피를 한 꺼풀 벗겨낸 기념으로 입에 케이크를 물고서도 「북극의 눈물」을 틀고 마는 사람이므로.


    

<Dear>.     



‘나’의 [디어]를 소리내 따라 읽으면, 우리의 수신지가 떠오른다. 명명한 사랑이었다가 뜯기고 남은 자국이었다가 아무래도 되돌릴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한, 우리 자신을 실어 보내고 싶은 그곳을, 문두에 적고 싶어진다. 잊지 못하는 …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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