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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Mar 02. 2020

벵에돔 조림

2.



민수는 남자가 되물어주기를 기다렸다. 당신도 생선요리를 좋아하느냐고, 탱탱하게 익어서 양념이 베인 벵에돔으로 저녁식사를 하기 원하느냐고.


“잡은 건 동네에 있는 가게에 가져다 드리려고요. 전 냉동해둔 걸로 꺼내 먹을까 싶어요.”


하지만 남자는 정직하게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말을 마친 뒤 휘어지는 낚싯대를 빠르게 감아올렸다. 검푸른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주둥이를 걸린 채로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민수는 한 템포 쉬며 질문을 다시 골라보기로 했다. 조금 전과 달리 민수는 긴장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목소리가 의식되어 헛기침을 해 목청을 가다듬었다. 남자는 새로 잡은 물고기를 플라스틱 통에 던져 넣었다. 물고기는 광활한 바다가 한순간에 딱딱하고 미끄러우며 비좁은 파란색으로 바뀐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생선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운명을 깨닫지 못하다가 한 순간에 죽음과 함께 생선이 되어버리는 꼴이었다. 남자가 새로운 미끼를 집어 들었을 때 민수가 말했다.


“벵에돔이요,” 하고 말했다가 다시,

“냉동 벵에돔.”하고 덧붙인 다음 물었다.

“그거 맛있나요?”          



남자는 옥탑에 살고 있었다. 1층에 말끔한 식당이 있는 단층 건물이었다. 바깥으로 난 계단 스무 개 정도를 밟아 오르면 꽤 널찍한 옥상이 나타났다. 빨랫줄에 장화 한 켤레가 널려 있었다. 초록색 천을 씌운 둥그런 모양의 탁자 위에는 재떨이와 컵 하나가 올라가 있었다. 남자는 낚시 도구들과 플라스틱 양동이를 으차- 하며 내려놓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민수와 남자는 작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웠다. 옥상의 난간 너머로 해가 뉘엿거렸다. 파도가 밀려오듯 바람이 불었다. 비린 냄새가 났다. 민수는 자기 왼편에 앉은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냄새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자기가 사는 방식에 걸맞은 냄새를 입는 법이었다. 민수가 제 아무리 바다를 사랑해봤자 그의 몸에서는 시트러스 비누 향이 났다. 일상과 생활로부터 풍기는 냄새, 그 이상을 쉽게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담배를 먼저 비벼 끈 남자가 1층에 잠깐 다녀오겠노라며 파란 양동이를 들고 내려갔다가 빈손으로 올라왔다. 거래처냐고 묻는 민수에게 남자는 뭔가를 설명하려다 말고 ‘그런 거 비슷한 거’라고만 대답했다.


남자가 부엌에서 얼어있는 벵에돔을 손질하는 동안 민수는 서재처럼 보이는 남자의 침실에서 기다렸다. 한쪽 벽면이 온전히 책장이었다. 여백 없이 들어차 있는 책장을 맞닥뜨린 민수는 자신의 방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어부의 방에 어쩐지 서운했지만 얼른 마음을 추슬렀다. 배 위에서는 멀미 때문에 책 읽기가 어렵더라도 오늘처럼 항구나 방파제에서 낚시를 할 때는 독서가 제격이겠지 생각했다. 벽 너머로 도마 위에서 내는 칼질 소리가 들려왔다. 민수는 천천히 방안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바다, 그게 분명 이 방 어디에도 있을 것이다. 뱃사람이 고단한 몸으로 쓰러지듯 잠들고 깨어날 침대, 그것의 셰이프를 눈으로 쓸어본 후 부엌으로 발길을 옮겼다.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얼음물에 담그면 잡내가 빠지거든요. 식감도 좋아지고.”


남자가 민수의 인기척을 느끼고는 레시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반 간장만 쓰는 것보다는 사시미 간장과 진간장을 더해 조합하는 것이 소스의 맛을 좋게 한다고. 보통은 설탕이 네 큰 술 들어가는데 단맛을 줄이고 싶을 땐 두 큰 술 정도로 조절하면 된다고. 생강은 향이 금방 날아가기 때문에 야채들 중 맨 끝에 넣어야 한다고. 도마에 채소를 썰고, 가스 불의 세기를 높이고, 간장의 뚜껑을 열어 냄비에 따라 붓고 하는 소리들 사이로 드문드문 남자의 말소리가 이어졌다.


민수는 생선조림을 제 손으로 해먹은 적이 없다. 앞으로라고 뭐 달라질까 싶었지만 잠자코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벵에돔 조리법이 아니라 벵에돔을 조리하는 그의 뒷모양이었다. 부엌은 작았고 식탁이나 의자가 없었으므로 민수는 냉장고에 기대어 서서 그를 보고 있었다. 씻고 나온 남자는 목 늘어난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뒷목의 피부는 해를 많이 받은 탓인지 유난히 거칠어 보인다. 모자를 벗어놓고 보니 꽤 긴 머리카락을 가졌구나. 목덜미의 절반을 덮은 덜 마른 머리카락과 얼핏얼핏 보이는 옆얼굴을, 멍한 시선과 상세한 마음으로 본다. 해면에 이는 물결을 보며 그 아래를 상상하듯이, 지루하지 않게 남자를 상상한다.


생선 익는 냄새가 났다.

남자가 “배 고프시죠? 거의 다 됐어요.” 라고 말했을 때,

민수는 “맥주 있어요?” 하고 대답했다.





먼저 눈을 뜬 것은 민수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남자의 냉장고에는 맥주뿐 아니라 소주도 있었다. 둘은 찬장에 들어있던 싸구려 와인까지를 전부 비웠다. 남자의 이름은 강백. 외자냐고 묻자, ‘활동명’이라고 했던 것 같다. 스물여덟 이후로는 어디서든 그 이름만을 사용했다고. ‘활동명...?’ 민수는 침대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갔다. 샤워기를 틀어두고 물을 쐬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러 돌렸다.


*


벵에돔 조림은 남자의 말처럼 맛있었다. 짭조름하고 달콤한 양념과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의 생선살이 자꾸자꾸 입맛을 돋우었다. 맥주에도 소주에도 잘 어울리는 맛이었고, 민수는 부지런히 잔을 비웠다.


“요리 솜씨가 엄청 있으시네요.”


남자는 미소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쑥쓰러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뿌듯해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얼핏 보기에는 언짢아보이기까지 했다.


“칭찬인데.”     


민수가 생선살 한 점을 떼어 먹으며 퉁명스럽게 말을 뱉자, 남자가 가볍게 소리내 웃었다.     


“알아요. 고맙습니다.”


웃는 얼굴이 근사했다. 도회적인 인상의 어부였다. 민수는 맥주를 한 잔 더 마셨다. 턱을 괴고 그의 입에서 조금 더 긴, 무엇이든지 조금 더 긴 얘기들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렸다. 남자가 민수의 시선을 의식했다. 분명 그렇다는 것을 민수는 알 수 있었다. 남자가 낚시터에서와는 또 다르게 민수를 느끼고 있음이 느껴졌다. 남자는 귀 아래쪽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한번 쓸고는 말했다.


 “생선요리를 할 일이 꽤 있어요. 일층에 있는 식당에서 주방보조 일을 하거든요. 아까 거래처냐고 물어보셨죠? 거기서 일주일에 몇 번 일하고 있어요.”

“투잡이에요? 주방보조면 주방보조지, 자기가 잡은 물고기까지 갖다 줄 일인가요? 한 마리당 인센티브를 얹어주나.”


남자는 손끝으로 턱을 비비면서 음…하고 뜸을 들였다. 간단하게 설명을 마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벌써부터 이 남자 삶을 이루는 각계의 것을 꼬치꼬치 캐물을 필요는 없겠다고, 민수는 생각했다.     


“어부면 사람보다 물고기를 더 많이 만나나요?”


민수가 화제를 돌리자 남자는 선뜻 그 흐름을 따라왔다. 지금껏 낚으려고 노력했던 또는 낚아올리는 데 성공한 ‘귀한’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자가 스무 번째 어류의 이름을 말했을 때 민수가 끼어들었다. 술기운이 돌아 맹맹해진 목소리였다.


“알았어요. 물고기, 물고기, 물고기. 아까 제대로 보셨어요. 전 낚시에 관심 없어요.”     


남자는 이제 민수가 무슨 말만 하면 웃었다. 빙긋이 입꼬리를 올리거나 아니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최대한 많은 물고기를 만나는 게 일차적인 목표죠. 남자가 그렇게 말했을 때, 민수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을 것이다. 일차적인? 그럼 최종적으로는 낚시왕이라도 되려고 하나요?

  

*     


민수는 번쩍 눈을 떴다. 샤워기 헤드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로 얼굴을 씻어내던 참이었다.

강 백. 민수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남자의 활동명이 맞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그 이름으로 인터넷에 게시물이 업로드된다고 했다. 웹툰 작가, 남자는 웹툰 작가였다. 낚시왕이라도 될 작정이냐는 말에,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되물었던 것이다. 어떻게 아셨어요? 제 만화 제목이 ‘낚시왕’인데.


*


공대생이었던 남자는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졸업을 앞둔 해에, 디씨앤사이드 웹툰 갤러리 게시판에 연재하던 만화에 '컨택'이 들어왔다. 공대생들의 일상을 게임에 비유해 그린 코믹물이었고, 정식 플랫폼에서도 그런 대로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그린 두 번째 작품에는 혹평이 쏟아졌다. 대세를 따라 회사원의 애환을 다뤄보려고 했지만, 남자는 회사 문턱에도 가본 일이 없었다. 세 번째 것은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모여 작당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었는데, 무관심 속에서 연재 되다가 완결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 시점에 남자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 도리 없는 웹툰 작가였다. 만화 말고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나자 만화 그리기가 재미없게 느껴졌다. 사태를 방관하면서 삼 개월 정도를 흘려보낸 후에는 재미뿐 아니라 의미도 찾기 어렵게 됐다. 하고 싶은 얘기가 도저히 없었다. 웹툰 작가의 일상을 그려볼까 했지만, 웹툰을 그리지 않는 웹툰 작가의 웹툰이라니. 시작도 전에 힘이 빠졌다.


*     


“지금은 다시 그리시는 거예요? 아까는 어부라고 하셨잖아요.”


민수의 어투는 따지는 듯 했고, 얼굴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거의 배신감에 가까운 실망이었다. 남자는 젓가락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벵에돔을 집느라 여념이 없었다. 붉어질 대로 붉어진 그의 피부는 이제 거의 고동색처럼 보였다. 자기를 바라보는 민수의 눈빛에서 무엇이 사라져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할 것도 없고, 만화는 그리기 싫고 해서, 낚시를 다녔었는데, 재밌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 어부가 돼서, 물고기 잡는 만화를 그리자? … 서울에서 내려온 지는 얼마나 됐는데요?”

“이제, 대충, 1년 반?”

“아. 1년, 반.”


민수는 남자의 말을 짧게 되받고는 잔에 남아있는 와인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남자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후 의자에 등을 받쳤다. 방안을 대충 한번 둘러보고 민수에게로 시선을 굳혔다. 그윽한 눈, 민수는 그 안에 든 것이 바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막 알게 된 참이었다. 만화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숙소가 제공되는 식당에서 일을 하며, 감사의 표시로 싱싱한 생선을 잡아다주기도 한다는 것을. 남자는 일렁이는 바다를 들여다보며, ‘낚시왕’을 구상할 것이다. 바다가 주는 어떤 감회에 젖어들 때는 그것을 얼른 메모했다가, ‘낚시왕’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사로 써먹을 것이다. 남자의 말이 맞았다. 문양이 멋져서가 아니라 요리해놓고나면 맛있어서 그 물고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민수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남자에게 물을 ‘바다’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남자의 눈을 쳐다보는 동안 남자는 몸이 달아 어쩔 줄 몰라 했다. 민수는 식어버리기는 했어도 가시진 않는 취기를 느끼며 엄지손가락으로 남자의 아랫입술을 쓸어 만졌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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