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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한잔 Jun 01. 2016

책을 읽고 싶은 사람

무언가를 읽다.

스무 살 근처 어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대화의 맥락은 기억 안 나지만 친구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 넌 책을 별로 안 읽지? "


원래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하루키 / 아가사 크리스티 / 아서 코난 도일 소설에 푹 빠져있을 때기도 했고. 왠지 책을 안 보면 지식인이 아닌 것 같은 마음에 서둘러 많이 본다고 대답했었다. 며칠 뒤 그 친구의 소셜미디어에 나의 사진과 함께 짧은 소개가 덧붙여졌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의외로 책을 읽는 친구 A』


거짓말을 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 뒤로 책과는 매우 멀어지게 되었는데. 딱히 기피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인 나는 웃기게도 서점에서 시간 때우는 행위를 자주 한다.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책 냄새라던지.. 시끄러운 듯 조용한 그 느낌이 좋다. 『의외로 책을 읽는 친구 A』가 된 뒤로 10여 년이 흘러 현재가 되었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는 시간을 때우러 서점에 들러 소설 코너에 책들을 쭈욱 보았다.


책과 멀어지던 시절 한번 읽어볼까 하다가 주저했던 책을 우연히 발견해서 잡아들고는 선채로 1시간 정도를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과거보다 문장을 읽는 데 있어서 편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에는 활자들을 읽어 치우는데 급급했는데 읽는 속도는 느려졌지만 문장 / 문단을 느낄 수 있는 읽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책을 덮어두고 냉큼 집으로 달려와 『의외로 책을 읽는 친구 A』가 되기 전에 읽던 책들을 꺼내보았다. 그사이 꽤 많은 양의 책이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갔지만 일부는 고스란히 그 자리에 있었고 분실된 책들은 다시 채워놓은 경우도 있었다. 쉽사리 책을 채워놓을 수 있게 해 준 중고서점의 위대함에 박수를 보내며 떨리는 맘으로 옛 책들을 읽어 보았다. 읽다보니 신기하게도 옛날보다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고력이 높아진 건지 감성이 풍부해진 건지. '둘 다'이고 싶은 맘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10대와 20대는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기억조차도 선명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30대는 조금 더 선명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다. 그동안 태업 아니 개점휴업 상태이던 뇌를 깨우고 싶은 나의 몸부림에 뇌가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고 있다.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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