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도피 그리고 또 한 번의 도피.
중학교 즈음 읽었던 만화책 중에 '아이들의 장난감'이라는 책이 있었다. 어린 친구들의 성장을 다룬 학원물 이었는데 이 이야기의 끝을 나는 보지 못했다. 당시 유행했던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 명작 '드래곤 라자'역시 마지막 권을 읽지 못했다.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이제 끝이라는 게 더 아쉬웠던 것 같다. 나는 아마도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했던 세상에서 마저도 도피를 택했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피하고 싶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겠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곧잘 친구들과의 약속에 말없이 안 나가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시 한번 수능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거의 대인기피 수준으로 발전하더니 원치 않는 대학을 다니면서는 게임에 나 자신을 완전히 숨겨버렸던 것 같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자신에게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웠던 나머지 세상에서 숨고만 싶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유 없이 날카롭고 모두에게 가시 돋친 그런 나였던 것 같다.
이런 병적인 도피 증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곳에 도달했을 때 드라마틱하게 고쳐졌다. 조금은 더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아니.. 환경이 마련되었다고나 할까. 원치 않는 상황이었지만 내가 만든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했을 때 다행히도 내가 만든 가짜 세상은 산산조각 났았고 완전히 아니 전과는 조금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피하지 않고 마주했을 때 얻게 되는 스트레스 뒤에는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과 실패했더라도 정면으로 부딪혔던 나에게 최소한의 위로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나는 점차 이야기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때마다 달라지는 나를 느낄 수 있었고 지금 또한 나는 내가 만든 벽을 깨부수고 있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다시 새로운 나를 만나고 또 다른 나를 갈구한다.
나의 이 보잘것없는 짧은 글이 당신이 새로운 당신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되길 바라며 잠 못 드는 새벽 나의 짧은 고백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