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
아름다운 아니 꼭 아름답지 않더라도 그 느낌을 머리 속에 담아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오늘의 한 순간이 나에겐 그러했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구름 그리고 항구도시의 변덕스러운 바닷바람은 지인들과의 바비큐 파티에 대한 나의 기대를 완전히 꺾는 것과 동시에 왠지 어설프게 지펴놓은 그릴 아래 숯의 열기마저도 확 꺾어버렸다.
바비큐 파티를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크나큰 좌절감에 휩싸인 채 대충 펼쳐놓는 텐트 안에 널브러져 있거나 죽어버린 숯에게 인공호흡하는 심정으로 바람을 불어넣으며 구워지다만 고기를 굽고 있었다.
빈약한 번개탄 때문에 숯이 제대로 안 달궈지는 것, 구름이 자꾸만 해를 가리는 것, 그리고 낮아져만 가는 온도 때문에 추워지는 것에 대한 우리의 슬픔은 호기심에 고른 캔맥주가 정말 맛없음을 느끼며 절정에 달했으며 새 숯을 사러 간 친구가 돌아올 때까지 모든 배경은 흑백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약 30분의 시간의 인공호흡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인정하고 익다 말은 고기에 사망선고를 내릴 때 숯과 번개탄이 든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든 우리의 구세주가 등장하였고 그즈음 흑백의 배경은 다시 각각 본연의 색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사나운 바람에게는 아까와 다르게 강력해진 번개탄이 열을 냈으며 불투명한 녹색에 가까웠던 방파제 주변의 바닷물에겐 구름과 구름 사이의 햇빛이 비추었다. 그리고 앞서 마셨던 쓰기만 했던 캔맥주의 뒷맛을 칭다오 캔맥주로 씻어내면서 비로소 우리는 처음으로 그날의 풍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날씨에 맥주에 번개탄에 짓밟혔던 우리의 여정은 그 한 순간으로 치유되었으며 나는 그 순간을 이렇게 머리 속에 담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