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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한잔 Jun 18. 2016

열차를 눈앞에서 놓쳤을 때

비로소 찾게 되는.. 아저씨?

내가 출퇴근 시 주로 이용하게 되는 교통편은 지하철이다. 매뉴얼 또는 안내책자 텍스트의 힘을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나는 분기마다 발표되는 열차 도착시간 안내를 외우고 그 시간에 맞춰 빠른 걸음 또는 뜀박질을 하며 출근을 시작하곤 한다. 대게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잘 지켜지는 편이지만 그날의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컨디션 때문에 플러스 마이너스 30초~1분의 편차가 생기기도 한다.

최근엔 열차 도착시간 오차에 대한 감이 생겨서 쉽게 열차를 놓치지 않지만 전날 피곤했거나 음주를 한 경우 문제가 되곤 한다. 몸이 힘들어하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서 최선을 다해서 뛰어보지만 열차는 눈앞에서 출발하거나 도착 예정시간 8분이라는 전광판의 사인만 나를 반길 뿐이다.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돌리기 위해 플랫폼 위 벤치에 앉아 들숨 날숨을 반복하다 보면 웃음이 나온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한바탕 속으로 웃고 난 뒤에야 뭔가 할 것들을 꺼내곤 한다. 봄 즈음엔 게임을 했지만 요즘은 주로 책을 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머엉한 상태를 유지한다.

잠깐이라고 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지만 편안해지는 그 느낌이 좋다. 집 그리고 회사 또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것인데. 이런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는 고독감이다. 그런데 왠지 쓰고 싶지 않다. 더 적절한 단어를 찾아보고 싶어 진다. 고독감이란 단어는 나를 아저씨로 만들어 줄 것만 같다.

과거에는 이런 외로움이 나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서 필사적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매달렸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여유가 생겼달까? 더 기다리고 지켜볼 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외롭고 쓸쓸해서 힘들다'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지켜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순간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는 내 안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물론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극한의 상황이 오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허둥대고 누군가를 보챈다. 그럼 뭐가 달라졌나 싶겠지만.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내가 누군가를 보채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적절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사과하기도 하고 나를 어르고 달래기도 한다.

위와 같은 복잡하고 힘든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다시 평온한 나의 세계가 찾아온다. 스트레스의 크기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의 조급함을 버릴 수 있다. 다시 찾아온 나의 세계는 여전히 고요하고 아름답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즐겁게 아저씨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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