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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Feb 11. 2023

기업상담자가 느낀 조직과 개인

심리학자로 살아남기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진로를 결정해왔나요? 함께 일하는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모두 각자 욕구에 따라 결정하기도 또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데에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장면들을 선택해왔는데, 선생님은 주로 성인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성인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는게 직장생활이어서 기업이 목표가 됐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뚜렷한 목표보단 방향만 가지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장면을 찾아왔던 저와 달리, 자신의 욕구과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서 10년 이상 근속하고 계신 모습이 참 새로웠어요.


  오늘도 기업에서 상담자로서 느끼고 고민했던 점들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내담자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기


  요즘 내담자로부터 '모르겠다,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분이다'라는 반응을 연달아 듣고 나니 조금 마음이 무거워지더군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였거든요. 너무 성급한 공감, 연결, 해석을 했구나. 내담자의 마음을 차근차근 밟아가기보다, 설익은 상태로 '치료적인' 개입을 하고 싶은 나의 욕구에 휩쓸려갔구나. 상담이 효과가 있다고 내담자가 느껴야 한다고 조바심을 냈구나. 내담자를 궁금해하고 기다려주는 그 과정 자체가 치료적일텐데, '무언가를 해야' 치료적이라는 단순한 행위에 초점을 맞추었구나. 섣불리 개입을 해야 한다는 상담자의 욕구를 충분히 알아차리고 다시 내담자가 진정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머무르려고 노력해 봅니다. 바로 거기에 치료적 순간이 있으니까요.


Photo by Karsten Würth on Unsplash


조직, 환경의 문제가 분명할 때 상담자가 느끼는 압력


  특히 기업 장면에서는 조직, 환경의 문제가 분명할 때가 있습니다. 명백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든지,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원치 않는 업무를 지속하게 된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기업에서는 다양한 인사제도를 통해 이러한 부분을 해소하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사례들이 다 구제를 받기란 어렵습니다. 그리고 조직, 업무, 역할과 같은 현실적인 상황이 당장 바뀌기 어려운 경우도 왕왕 발생하죠.


  그러다 보면, 상담자는 내담자가 무엇을 얻어 가고 있는가 조바심이 날 수 있고, 상담자 스스로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서 상담자가 생각하기에 최선의 선택을 제시해 주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한다면 내담자의 감정과 생각만을 다루면서 개인의 문제로 다루게 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상담자는 상담이 내담자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나름대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자로서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고 제공해줄 수 있는가를 경계 짓지 않는다면 내담자도 상담자도 모두 혼란을 겪게 될 수 있으니까요. 상담자의 지향과 접근에 따라서 각자 조금씩 범위는 다를 수 있겠지만요. 요즘 제게 중요한 상담자로서의 범위는 ‘내담자의 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존재는 아니다’에 있고, 치료자 개입의 적절성은 ‘내담자의 자기감과 주체성에 도움이 되는가’에 있습니다.


  그런 다음, 내담자가 가져온 어려움을 단순히 조직의 문제로 혹은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으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한쪽의 문제로 보기 시작하면 한쪽으로 기우는 상담을 하게 되고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는 느낌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내담자가 처한 상황을 감당하게 어렵게 만드는 감정과 생각만을 다루다 보면, 결국 내담자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감각을 강화시킬 수 있어요. 거꾸로 환경의 문제로만 보고 그것을 탓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그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는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또다시 어려움이 발생할 때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고 개인의 내적인 성장이라는 상담의 가치와도 멀어질 수 있어요.


  정리해 보면, 상담자는 조직의 문제, 환경의 문제가 분명할 때라도 상담의 범위에서 다룰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경계를 세울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내담자의 어려움을 조직의 요소와 개인의 요소를 나누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고요. 실제로 개입을 할 때에는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천천히 들으며 따라가는 작업이 먼저 되어야, 자신이 이해받고 있고 들려지고 있다고 느낀 후에야, 상황을 모면하고자 감정에 휩쓸리듯 결정 내리기보다 여러 선택지들을 차분히 살펴보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상담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습니다


  대학과 병원에서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고 인지행동치료도 해왔지만, 본질적으로는 대상관계와 애착에서 파생되는 반복적인 대인관계 패턴, 감정 패턴을 내담자가 이해하게 되는 게 가치 있고 진정한 상담이라고 여겨왔나봅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상담 장면에서 내담자의 어려움을 재연되는 관계와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담에서 좌충우돌 하면서, 하나의 틀로만 내담자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정답이거나 진정한 상담이 아니구나, 그리고 깊은 이해가 과연 상담의 목적인가 질문해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내담자가 원하는 것은 '변화'이고, 변화를 위해 이해가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다다랐습니다.


  결국 내담자가 지금 말하고 싶은 어려움에서부터 진득하게 들어야겠구나, 그 사람이 상담에서 다루고 싶고 변화하고 싶은 부분으로 돌아가 귀 기울이게 됩니다. 지금 내담자가 호소하는 어려움의 밑에 깔려있는 순환의 고리를 상담자가 이해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겠구나 싶습니다. 상담자가 이해한 그 순환의 고리를 내담자가 꼭 이해해야 변화가 일어나는가, 그것은 상담자의 고고한 지적인 욕심은 아닌가, 하는 질문도 해봅니다. 그리고 내담자가 당장의 낙담에서 벗어나 나도 할 수 있다는 주체감을 느낄 수 있다면, 꼭 내담자가 원인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 해결중심상담에서 말하듯 어떤 미래를 소망하는지를 탐색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단기적인 개입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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